[[분류: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분류:춘천시 출신 인물]][[분류:전주 최씨]][[분류:1932년 출생]][[분류:1968년 사망]][[분류:6.25 전쟁/군인]][[분류:전쟁 사망자]][[분류:총기에 죽은 인물]][[분류:춘천고등학교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출신]][[분류:동아대학교 출신]][[분류: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분류:태극무공훈장]][[분류:순직 경찰]] [include(틀:다른 뜻1, other1=1953년생 정치인, rd1=최규식(1953))] [include(틀:태극무공훈장)] ||||||<-2>
<#0054a6>
'''{{{#FFF 대한민국 경찰[br]{{{+1 최규식}}}[br]崔圭植}}}'''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최규식 경무관.jpg|width=80%]]}}} || ||<|2> '''출생''' ||<(> [[1932년]] [[9월 9일]] || ||[[강원특별자치도|강원도]] [[춘천시]]|| ||<|2> '''사망''' ||<(> [[1968년]] [[1월 21일]] (향년 35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 ||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 || '''본관''' ||[[전주 최씨]]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부모''' ||아버지 최정헌, 어머니 정경덕 || || '''배우자''' ||유정화 || || '''서훈''' ||태극무공훈장 || || '''학력''' ||[[춘천중학교]][br][[연세대학교]] {{{-3 (신과대학 / 중퇴)}}}[br][[동아대학교]] {{{-3 (법학 / 학사)}}}[br][[부산대학교]] 대학원 {{{-3 (정치학 / 석사)}}}[* 1968년 2월, 사후 석사학위가 수여되었다.] || || '''경력''' ||육군단기장교후보생[br]포병소위 임관[br]군사기지사령부 정보장교[br]충청북도경찰국 정보과장[br]부산시경 정보과장[br]서울용산경찰서장[br]서울종로경찰서장 || || '''최종계급''' ||경무관[* 사후 추서, 생전 최종계급은 총경] ||}}}}}}}}}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이다. 본관은 [[전주 최씨|전주]](全州).[* 한성판윤공파.[[https://m.blog.naver.com/2008jsl/221311844416|#]]] == 생애 == 1932년 9월 9일 [[강원특별자치도|강원도]] [[춘천시|춘천군]] [[신북읍|신북면]] 우두리(현 [[춘천시]] [[우두동]])에서 아버지 최정헌(崔廷憲)과 어머니 [[초계 정씨]] 정경덕(鄭慶德)[* 정필선(鄭弼善)의 딸이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춘천고등학교|춘천중학교]](당시 5년제)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4월 1일 단기 장교후보생으로 입대하여 훈련을 수료하고 9월 1일 [[대한민국 육군]] [[포병]] [[소위]]로 비로소 임관했다. 이후 2차례에 걸쳐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오기도 했다. 1960년 [[육군군수사령부|군수기지사령부]]에서 [[정보장교]]([[대위]])로 근무하면서 [[박정희]] 당시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의 부관으로 있었고 이듬해 [[5.16 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근무하였다. 같은 해 경찰공무원이 되었고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7년 10월 [[서울특별시]] [[서울종로경찰서|종로경찰서장]]으로 부임하였다. 1968년 1월 21일 [[1.21 사태]] 당시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인 [[김신조]] 일당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정부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를 기습하였다. 사건 당일 무장공비 일당이 [[대한민국 국군]]으로 위장하여 [[종로구]] [[신영동(종로구)|신영동]] 168-6번지 [[세검정]]을 거쳐 [[청운동]] 산1-1번지 [[창의문]]을 지나다가 형사 2명에게 검문을 당했다. 최규식 서장은 형사들의 보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무장공비들에게 직접 수하를 하며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하였으나 무장공비들이 먼저 총격을 가하여 제일 앞에 있던 최 서장은 그 자리에서 순직했다. 당시 자하문검문소를 근무했던 [[정종수(경찰)|정종수]] 경사 역시 총격으로 순직하였다. 사후 이튿날 [[경무관]]으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8012200209203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1-22&officeId=00020&pageNo=3&printNo=14236&publishType=00020|특진했으며]], 1월 25일 [[무공훈장|태극무공훈장]]을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8012500329203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1-25&officeId=00032&pageNo=3&printNo=6858&publishType=00020|추서받은 뒤]] 당일 [[국립서울현충원]] 제3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 앞([[청운공원]] 부근)에 그를 기념하는 [[https://naver.me/FbRkhDCJ|최규식경무관동상]]이 세워져 있다. [[경찰대학]] 내에도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102017578275835|'김신조 사건' 순직 故최규식 경무관 동상 48년만에 재정비]] 경찰박물관에 그가 순직 시 착용했던 근무복과 점퍼, 기동모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비록 전쟁 때문에 중퇴하긴 했지만 당시 [[연세대학교]]를 다닐정도로 수재였으며 경찰관이 되고 나서도 그때 학업을 미쳐 마치치 못한 것에 대한 한 때문인지 부산시경 재직 중에도 [[동아대학교]] 야간반을 다니며 틈틈히 공부하여 결국 졸업장을 따냈다. 서울로 발령받은 후에도 [[부산대학교]] 교수들이 서울까지 상경해 가며 도와준 덕분에 논문을 발표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1.21 사태로 순직하여 학위 수여는 그의 미망인이 받게 되었다. [[육영수]] 여사가 그를 상당히 신뢰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그의 일하는 모습이나 인품 등을 자주 칭찬했었고 경찰 임관 7년만에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경찰서]]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추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자 매우 안타까워했고 최 서장의 아내 유정화 여사에게 육 여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울면서 부고를 알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