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2> '''안평강후(安平康侯)[br]{{{+1 崔鑒 | 최감}}}''' || || '''시호''' ||강(康) || || '''작위''' ||동려현자(桐廬縣子) → 안평후(安平侯) || || '''성''' ||최(崔) || || '''이름''' ||감(鑒) || || '''자''' ||신구(神具) || || '''부친''' ||최작(崔綽) || || '''출신''' ||박릉군(博陵郡) 안평현(安平縣)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북위]]의 관료로 자는 신구(神具). 박릉군(博陵郡) 안평현(安平縣) 출신. == 생애 == 최감은 문학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고 중서박사(中書博士)에서 시랑(侍郞)으로 전임되었다. 연흥(延興) 연간[* 471년 ~ 476년]에 조칙을 받들어 제주(齊州)로 파견되어 풍속을 관찰하고 연주(兗州)의 사무를 맡았다. 이후 공을 세워서 동려현자(桐廬縣子)에 봉해졌다. 이후 분위장군(奮威將軍), 동서주자사(東徐州刺史)로 전출되었다. 최감은 새롭게 북위로 귀순한 이들을 안심시키고자 연로한 백성들을 임시로 태수나 현령으로 삼도록 상주하여 윤허를 받았다. 또한 주에서 구리를 정련하여 농기구를 만들어 백성들이 이로움을 얻었다. 사후 관군장군(冠軍將軍), 청주자사(靑州刺史), 안평후(安平侯)로 추증되고 강(康)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분류:남북조시대/인물]][[분류:박릉 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