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간쑤성의 행정구역)] [목차] == 개요 == [[중국어]] {{{+1 成县 }}} [[영어]] Cheng 중국 서부 [[간쑤성]] [[룽난시]]의 현. [[한중]]과 [[톈수이]] 사이의 분지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25만명이다. 시가지는 자링강의 지류인 칭니강 양안에 형성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남중국 세력의 농우 지역 교두보였다. [[촉한]], [[후촉]], [[남송]] 등이 점유했고 [[토번]]도 한세기간 지배했다. 이러한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천년 가량 성주 (成州)의 치소였고, 한때는 동경부 (同慶府)였다. 다만 명청대에는 감숙-사천 일대가 안정되어 성현으로 격하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현재 청현은 감숙성의 주요 밀 생산지로, 농우양창 (陇右粮仓)이라 불린다. 철도는 지나지 않지만, 동북쪽 5km 지점에 룽난청셴공항이 있다. == 역사 == 상고대에 서융 (西戎)의 땅이었고, [[전국시대]] 백마저 (白马氐)가 살았다. [[진나라]] 시기 농서군 (陇西郡)에 속했고, [[전한]] 시기 무도군 (武都郡) 소속 하변도 (下辨道)가 설치되었다. [[후한]] 시기 무도군의 치소 하변도로 이전되었다. 219년 [[유비]]가 [[한중]]을 정복하자, [[조조]]는 무도군 주민들을 부풍군 (扶风君)으로 철수시켰다. 이후 농서-무도군 일대는 [[촉한]]의 영토가 되었다. [[북위]] 시기인 446년, 무도군은 구지진 (仇池鎭)으로 개편되었고 451년에는 거주 (渠州)를 거쳐 504년 진주 (秦州)로 바뀌었다. [[서위]] 시기에는 성주 (成州)로 개칭되었고, [[수나라]] 시기인 605년, 성주는 한양군 (漢陽郡)으로 개편되었다. [[당나라]] 들어 성주로 환원되었고, 742년 동곡군 (同谷郡)이 되었다가 758년 성주로 돌아왔다. [[안사의 난]] 직후 [[토번]]이 일대를 점령하여 한세기 사량 점유하다가 870년 경에야 당나라가 회복하여 성주 산하 동곡현 (同谷縣)을 두었다. [[후량]] 건국 후, [[주전충]]의 부친 [[주성]]의 피휘를 위해 성주는 문주 (汶州)로 개칭되었다. 후량 말엽인 916년, --촉한을 본받아-- [[후촉]]이 일대를 점령하였다. [[북송]]이 후촉을 멸한 후, 재차 성주가 설치되었다. [[남송]] 시기 성주는 [[금나라]]에 대한 최전선으로써 사천경략안무사 (四川經略安撫使)가 배치되었고, 1225년에는 동경부 (同慶府)로 승격되었다. 다만 [[원나라]]의 정복 후, 성주로 환원되었다. [[명나라]] 시기 성주는 성현 (成縣)으로 격하되어 농서에 기반한 공창부 (鞏昌府)에 직속되었다. [[청나라]] 시기 성현은 계주 (階州)에 직속되었다. [[분류:간쑤성의 행정구역]][[분류:중국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