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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계]], [[동교동계]]와 더불어 [[3김]]을 대표하는 계파의 하나이며, [[김종필]]의 정치적 사상을 따르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유래는 김종필이 거주했던 [[서울특별시]] [[중구(서울특별시)|중구]] [[청구동|청구동]][* 청구동은 상도동과 동교동과는 달리 [[행정동]]상으로만 존재하며, [[법정동]] 상으로는 [[신당동(서울)|신당동]]의 일부이다. 참고로 청구동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행정동명으로 쓰다가 이후 법정동명에 맞추어 신당4동으로 변경되었으며, 2013년부터 다시 청구동으로 환원되었다.][* 참고로 청구동 사저는 김종필이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초에 매각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899083|#]]]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3김 계파 중 가장 미약하고 인지도가 낮은데, 이유는 후술.[* 상도동계, 동교동계에 비해 계파가 느슨한 탓도 있다. 또한 김종필이 3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대통령]]을 못 해 본 것도 있고 말이다.] == 역사 == === 김종필계 === [[박정희 정부]] 설립 이후 처삼촌인 [[박정희]]의 후원 하에 2인자인 [[국무총리]] 자리까지 올랐고, 원조 실세 국무총리답게 꽤 많은 실권을 행사했다. 다만 아래 문단에서 볼 수 있겠지만 김종필이 거물로 떠오르고 김종필계가 커지는 만큼 당내외 타계파들의 반발을 불렀고, [[박정희]] 역시 김종필에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였다. 결국 박정희는 4인방 등 친위세력을 키우고 [[이기붕계]] 등 구 [[자유당]]/[[민주당(1955년)|민주당]] 합류세력과 소수 소장파를 밀어주며 김종필과 김종필계를 견제했다. 이러한 견제외 논란이 겹쳐 김종필은 외유를 많이 하게 된다. 1967년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당시 3선 금지 조항이 발목을 잡으면서 차기 대권 주자를 찾아야만 했고, 이 때 김종필이 민주공화당의 대권주자 1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러면서 집권하는 듯 싶었으나... [[3선 개헌]]과 유신헌법으로 좌절되었으며 박정희는 4인방을 밀어줘 김종필계의 입지는 좁아져가고 있았다. 시간이 흐른 뒤, 4인방이 너무 커져서 박정희는 또 위협을 느끼며 김종필계를 [[10.2 항명 파동]]을 계기로 복귀시키고 4인방 등 타세력을 숙청했다. 그러나 이 일이 끝난 뒤 [[민주공화당]]은 반대세력이 모두 소멸되고, 여당으로의 역할을 상실했다. 민주공화당을 장악한 김종필계의 입지 약화도 덤이었다. 거기다 친위세력은 [[유신정우회]]로 넘어갔으며, 김종필 본인은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했으나 김종필계는 소수 등용되는게 그쳤다. 이에 김종필계는 과거 정적이던 4인방과 연합해서 차지철 등을 견제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렇게 약화가 아닌 것 같은 약화를 거치던 중, [[10.26 사건]] 이후 신군부가 민주공화당을 강제 해산하면서 정치 활동 금지령을 받는다. === 공화계 === 이때 정치 규제를 받지 않은 잔류 공화계들이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을 창당했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쉽지만 일부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당선자를 내며 괜찮은 25석의 성적을 거두었다. 구 민주공화당의 영향력이 매우 많이 미쳤으며 김종필의 영향도 소수 있었다.[* 다만 이때 김종필은 정치활동에 규제가 있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20석을 거두며 경기도, 강원도, 전북도를 중심으로 당선자를 냈으나 [[신한민주당]] 돌풍 때문에 원내 제4당이었다. 다만 관제야당인 만큼 실제로 한 일이 있었다기 보단 그냥 구 민주공화당(유신세력)을 정당화한 단체였다. 1987년 3김의 해금 이후 김종필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한국국민당의 현직 국회의원 8명과 대부분의 당직자, 지역조직이 신민주공화당으로 넘어갔다. [[충청도|충청]]지방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 충청 지역주의는 ([[대경권|TK]]의) 군부세력과 상도동계의 영남(PK) 지역주의[* 상도동계는 영남 지역주의를 보였지만 사실상 지역 기반이 구 PK, 현 부울경이었다.], 동교동계의 호남 지역주의와 함께 3(4)대 지역주의로 떠올랐다.[* 군부세력은 딱히 언급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영·호남 지역주의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자신의 연고지에서 50% 내지 80~90% 이상의 몰표를 받았을 정도로 강력했던 반면, 충청 지역주의는 김종필이 충남에서만 1위는 했어도 과반은 못 했고, 충북에서는 영남계 보수정당에 밀릴 정도로 미약했다. === 청구동계 === 어쨌거나 이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면서 공화계 + 일부 민정계라는 청구동계라는 기반은 확고해졌으나, 김종필이 끝내 대통령이 되지 못함으로서 3김 중 가장 미약한 계파로 떨어졌다. 다만 위치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성적을 바탕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충청권을 비롯해 '원조보수' 정당으로 대경권과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도 당선자를 냈다. 이 52석을 기반으로 79석의 [[새정치국민회의]]와 [[DJP연합]]으로 연정에 성공하며 [[김종필]]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내각에 입성하며 김종필을 필두로 한 계파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좀 더 나은 성적을 거두며 기반이 확실하게 다져졌다. 그러나 [[DJP연합]]은 후기로 갈수록 갈라지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하고 충청권도 석권을 못하며 17석의 제3당으로 떨어졌으나 관계가 조금 회복되어 의원 꿔주기로 교섭단체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대북정책에서 이견을 보여 연정이 깨지고 다시 비교섭단체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 역풍으로 충남에서 4석, 경북에서 1석[* 자민련계 무소속], 비례에선 '''0석'''[* 비례대표에서 '''2.8%'''로 아주 아깝게 0석.]으로 원내 제5당, 제4야당으로 전락한다. 결국 김종필이 2004년 은퇴하면서 계파 자체가 사실상 파묻히는 듯 싶었으나... 잔류 청구동계가 대체정당인 [[국민중심당]]을 창당하면서 아직은 계파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이후 김영삼이 영입했으나 민정계의 지지를 받던 [[이회창]]이 가담해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면서 2012년까지는 청구동계가 그나마 힘을 발휘하였다. 즉 3김 계파 중에서는 그나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계파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2012년 [[새누리당]]의 돌풍으로 몰락했고, 설상 자유선진당도 [[선진통일당]]으로 개편되었으나 [[2012년]] [[11월 16일]] 새누리당과 합당함으로서, 이 계파도 사실상 죽었다. 현재는 상도동계나 동교동계처럼 그냥 잊혀진 계파일 뿐이다.[* 동교동계는 [[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사실상 사라졌고 상도동계 역시 [[1997년]] [[3월]] [[이회창]]이 대표가 되자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1998년]]~[[1999년]] 사이에 대다수가 정계 은퇴하거나 국민신당으로 탈당, 혹은 다른 계파로 흡수되면서 소멸했다.] == 김종필계, 공화계, 청구동계 == [[김종필]]이 계파의 수장으로 있는 계파는 3개, 김종필계, 공화계, 청구동계가 있다. 김종필계는 [[박정희 정부]] 수립 이후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라 구 정치인 등 여러 인물들을 비롯해 영입 인사들을 중심으로 생성된 계파였다. [[민주공화당]]은 2010년대 후반의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상황처럼 친김종필 vs. 반김종필[* 4인방 등 박정희 직속 친위세력, 구 [[자유당]]([[이기붕계]])/[[민주당(1955년)|민주당]], 소장파 등]으로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3선 개헌]]과 [[10월 유신]]을 지나며 김종필계를 비롯한 모든 주류는 숙청당하고 권력은 [[유신정우회]]가 가져가 거의 숙청당했다. 거기다 [[민주정의당]] 창당 이후 [[김종필]]을 비롯한 구 민주공화당 세력은 가택연금이나 정치활동 금지에 처해 거의 쓸려나갔다. 그러나 민주화 후 모두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리고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으로 모인 인사들과 규제에서 풀린 구 민주공화당 인사들이 [[김종필]]을 중심으로 뭉치며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신민주공화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8.1%만 득표했으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충청 지역주의를 이용했으며 유신정권[* 아이러니인 것은 김종필을 비롯한 신민주공화당 참여 인사들은 유신때문에 숙청당했다.]에 향수를 가진 일부 수도권, 대경권, 강원권에서 당선되며 다시 세를 확장했다. 이후 1990년 [[민주자유당]]으로의 [[3당 합당]] 때 구 신민주공화당 인사들이 공화계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995년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한 공화계와 일부 민정계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한 인사들이 청구동계로 불린다. 대략 정리하자면 1963~1980년에는 김종필계, 1987~1995년에는 공화계, 1995년부터 지금까지 청구동계로 불렸다. 그러나 성격도 약간 변했는데, 김종필계는 민주공화당, 잔류 구 민주공화당 인사 + 민주자유당 합류 구 민주공화당 인사는 공화계, 청구동계는 공화계/일부 민정계와 충청권 인사들 중심이었다. == 구성 == 보스는 당연히 [[김종필]]이다. 흔히 충청 지역주의라고 하듯이 충청권 출신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오히려 충청권 출신이어도 출신 계파는 다른 경우가 많다. 일단 [[이인제]]의 경우 충청권 출신으로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어서 청구동계의 한 종류로 볼 수는 있으나, 정작 본인은 [[김영삼]]에 의해 영입된 상도동계의 하나이며, 이후 기존의 상도동계에서 다소 이탈해 청구동계에 끼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계파의 마지막 좌장으로 꼽히는 [[이회창]]은 출신 자체가 [[황해도]]다. 허나 황해도는 분단으로 인해 [[북한]] 땅이며, 월남한 본인은 선대의 선영이 있는 충청도에서 사실상 기반을 다져왔으므로 종종 충청권 인물로 보기는 한다. 그러나 영입한 사람은 김영삼이고, 출신 정당은 [[신한국당]]이며, 당 내의 [[민정계]]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이회창은 어디 계파에 속하지 않고 [[이회창계]]라는 단독 계파가 있기에 협력 관계 정도지 직계로 분류되진 않는다. 한때 [[자유민주연합]]의 원내총무였던 [[이완구]] 역시도 청구동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한 [[성완종]]도 청구동계로 분류된다. [[심대평]]은 대다수 청구동계와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한 기록도 있고 [[자유선진당]] 내에서 청구동계 리더 노릇을 했기에 청구동계로 분류된다. 이외에도 [[자유한국당]]의 전 원내대표였던 [[정우택]]의 경우 [[부산광역시]] 출신이며[* 다만 본적은 충북 진천으로, 부산은 부모가 [[6.25 전쟁]] 당시 잠깐 피난갔던 곳이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서 출발했지만, 충청권의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냈고 통일국민당 해체 이후 [[자유민주연합]]에서 활동했으므로 청구동계의 일원이기는 하다. 현재 충남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국민의힘]] 5선 의원 [[정진석(정치인)|정진석]]의 경우 [[자유민주연합]]에서 활동했으며 [[김종필]]에게 정치를 배운 측근이었으므로 마지막 청구동계 정치인으로 볼만하다. == 주요 인물 == 청구동계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민주공화당]] 시절 김종필계: [[한태연]], [[이정우(정치인)|이정우]], [[박종태]], [[오학진]], [[예춘호]], [[구범모]], [[고재필]], [[김달수(1917)|김달수]], [[김택수(1926)|김택수]], [[정태성(1926)|정태성]], [[서인석(정치인)|서인석]], [[서상린]], [[윤주영]], [[윤천주]], [[이돈해]], [[문형태]], [[김창규(군인)|김창규]], [[김종하(정치인)|김종하]] 등. 범 김종필계: [[민관식]][* 다만 이 사람은 백남억, 박준규, 김재순과의 관계로 인해서 4인방계와도 친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직수]], [[유재흥]], [[노재현]], [[이세호]], [[김계원]], [[김학렬]], [[박종규]], [[오원철]], [[김치열]][* 다만 이 사람은 4인방계와도 절친했다.], [[류혁인]], 장동운, [[송필만]], [[최희송]], [[김정렴]], [[오정근]], [[김원기(1924)|김원기]], [[송요찬]][* 송요찬도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황산덕]], [[김현옥]][* 불도저로 불린 그 서울특별시장이 맞다.], [[전예용]], [[정구영]], 신상철, [[강창성]], [[윤흥정]][*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으로 임명되어서 초기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그 사람 맞다. 동생도 군 장성인 윤흥기 소장이다.], [[오명(정치인)|오명]], [[최광수]], [[홍성철]][* 범 김종필계이나 4인방계와도 두루 친했으며, 민정계 인사들과도 상당히 친했다.], [[이규호(정치인)|이규호]][* 전두환 정부 정책의 틀을 세운 사람이며, 본래는 민정계였다.], [[허문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쓰리허 중 한 명이었으며 민정계 인사로도 분류되었다.], [[이봉성]][* 사위인 [[최환]] 전 부산고검장이 자민련 공천을 받아서 출마를 한 적이 있으며 본인도 김종필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 법무부장관으로 있으면서 내각에 같이 있었다. 그러나 본래는 4인방계하고도 꽤 친했었던 사이였다. 그러나 사위인 최환은 공안검사였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밝혀내는데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봐서 민주계 인사들과도 꽤 친한 것으로 보인다.], [[배명인]][* 본래는 민정계였다.] 등. [[신민주공화당]](공화계): [[김동근(1930)]], [[이희일]], [[이진용(1920)|이진용]], [[권오석(1923)|권오석]], [[김영병]], [[김용태(1926)|김용태]], [[김원규(1925)|김원규]], [[김재식(1923)|김재식]], [[노진환]], [[박병선(1925)|박병선]], [[백두진]][* 백두진은 본래 4인방계 인사이기에 민주공화당 시절 김종필계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심현직]], [[손승덕]], [[최재구]], [[오치성]], [[정간용]], [[김인곤]], [[김종식(1935)|김종식]], [[김우경]], [[김홍만]], [[윤재기]], [[박충순]], [[신진수]], [[신철균]], [[연제원(정치인)|연제원]], [[옥만호]], [[조일제]], [[이건일]], [[설송웅]], [[노철래]], [[최후집]], [[배길랑]], [[김제태]], [[김호일]], [[김시명]], [[정순주(정치인)|정순주]] 등. [[자유민주연합]](공화계+일부 민정계+영입 인사): [[이병희(1926)|이병희]], [[이태섭(1939)|이태섭]], [[정석모]], [[김칠환]], [[김용환(1932)|김용환]], [[이인구(1932)|이인구]], [[이상현(1945)|이상현]], [[김종학(정치인)|김종학]], [[이의익]], [[허남훈]], [[이양희(1945)|이양희]], [[김의재]], [[박종근(1937)|박종근]], [[김두섭]], [[류종수]], [[김선길]], [[오용운]], [[함석재]], [[이재창]], [[조종석]], [[김화남]], [[이근영(정치인)|이근영]], [[이상만]], [[변웅전]], [[박신원(정치인)|박신원]], [[어준선]], [[원철희]], [[정일영(1944)|정일영]], [[김범명]], [[권수창]], [[갈봉근]], [[강경식(1940)|강경식]], [[신오철]], [[조영재(1942)|조영재]], [[유기수(1941)|유기수]], [[박형규(정치인)|박형규]], [[양순직]], [[양찬우]], [[최용안]], [[김광수(1925)|김광수]], [[이종근(1923)|이종근]], [[구자춘]], [[문창모]], [[노차태]], [[노인환]], [[김한선]], [[김규원(정치인)|김규원]], [[김고성]], [[김용채]], [[김학원(1947)|김학원]], [[김허남]], [[이택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조부영]], [[이재선(정치인)|이재선]], [[이명수]], [[박석우(정치인)|박석우]], [[최영철(1935)|최영철]], [[김낙성]], [[류근찬]], [[구천서(정치인)|구천서]], [[최상용(1938)|최상용]], [[김현욱(정치인)|김현욱]], [[송업교]], [[정상구]] 등. 범 청구동계: 민정계 출신인 [[박준규(1925)|박준규]][* 본래는 4인방계 출신이었다.], [[박태준]], [[이한동]], [[이택석]], [[김종호(1935)|김종호]], [[강우혁]], [[조영장]], [[배명국]], [[이기원(정치인)|이기원]] 등. == 같이 보기 == * [[상도동계]] * [[동교동계]] * [[민정계]] * [[이인제계]] * [[이회창계]] [[분류:대한민국의 계파]][[분류:김종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