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VN19892053-00_01392811.jpg]] [youtube(wjwUpuIRuPk)][* 영상 중 59초 부터 두대의 구급차가 찌그러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고버스인양 도중 크레인이 넘어져서 인근 구급차가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목차] == 개요 == 1988년 4월 1일 [[서울특별시]] [[천호대교]] 중간 지점에서 승객과 운전기사 등 50여 명을 태우고 [[ 성동구]][* 당시에는 성동구에서 [[광진구]]가 분구되기 이전이었다.] 광장동에서 [[강동구]] 천호동 방면으로 주행 중이던 시내버스가 교량 난간을 들이받고 한강으로 추락하면서 19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이다. 공교롭게도 [[만우절]]에 일어난 사건이라 더 주목을 받았다[[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08101_29513.html|#]][[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678962|#]]. == 사고 상세 == 사고 당일 오후 5시 50분 쯤, [[송파상운|수도교통]][* 현 송파상운.] 소속 572번 시내버스[* 사고버스는 아시아자동차의 마지막 프론트엔진 모델인 [[기아 AM버스#s-2.5.1|AM907]]. 사고차량은 1983년에 출고된 모델이라 1983년 당시의 도색은 마린블루 도색이었으며, 출고 후 1985년에 보라색 도색으로 재도색한 차량이었다.]가 주행 도중 갑자기 차체에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 편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한강으로 추락하였다. 한강 둔치 부근의 강물로 추락하여 사망자 19명에 부상자 35명이라는 인명 피해를 냈고, 사고 이후 현장에서는 시신 인양 및 생존자 구조 작업을 밤 늦게 까지 계속 실시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버스가 천호대교 위에서 과속으로 주행하던 도중, 앞 바퀴에 펑크가 나게 되면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다리 난간을 부수고 그대로 강물로 추락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더구나 사고가 일어난 시간대가 퇴근길 및 하교길이었던 터라 사상자들 중에 직장인 및 학생들이 많았으며, 과속의 여파 및 추락 사고의 충격으로 차체가 심하게 파손된 데다, 아직 추운 기운이 가시지 않은 강물로 추락하는 바람에, 구조 당시 중상을 입고 사투를 벌이다 결국 사망에 이른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 사고 원인 === 결정적인 사고 원인은 운전기사의 과속 운행과 조향 구실을 하는 앞 바퀴의 펑크로 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의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우선, 사고 버스의 파열된 타이어는 '''[[재생타이어]]'''로 밝혀졌다. 당시 사고버스는 물론, 대다수의 시내버스에는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재생 타이어를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었다. 재생 타이어란, 이미 마모 한계선에 도달하여 수명이 다 된 타이어의 접지면을 가공하여 새 트레드 패턴 고무를 덧붙여 압착 시키는 형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정상적인 신품 타이어보다 저렴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필연적으로 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리고 운전기사의 안전 불감증에 따른 과속 운행이 사고 피해를 키우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 사고 이후 === 결국 이 사고는 도를 넘은 버스 회사의 원가 절감 끝판왕인 정비 실적의 미비와 정비 불량, 그리고 승객의 안전을 무시한 운전자의 직권 남용, 부실한 회사 운영 등이 부른 대참사로 기록되었다[[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08146_29513.html|#]]. 사고 이후, 당시 수도교통 대표자와 임원 등이 무더기로 형사 입건 되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8040300239115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4-03&officeId=00023&pageNo=15&printNo=20614&publishType=00010|#]]. 신문을 통해 수도교통 측이 공식 사과 성명을 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804030023910801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4-03&officeId=00023&pageNo=8&printNo=20614&publishType=00010|#]]. 한편, 사고를 일으킨 버스 기사는 1989년 2월 22일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가 직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노후된 [[재생타이어]]의 펑크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버스에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재생 타이어의 위험성에 대한 뉴스들이 보도되면서[[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08148_29513.html|#]] 그 위험성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고 이후, 수도교통은 상호를 [[송파상운]]으로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분류:1988년 교통사고]][[분류:강동구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