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진(陳)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599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 [include(틀:역대 진(규성) 군주)] |||||| '''{{{#ece5b6 진(陳)나라 19대 국군[br]{{{+1 영공}}}[br] 靈公}}}''' || |||| '''[[성씨|{{{#ece5b6 성}}}]]''' || 규(嬀) || |||| '''[[본관|{{{#ece5b6 씨}}}]]''' || 진(陳) || |||| '''[[휘|{{{#ece5b6 휘}}}]]''' || 평국(平國) || |||| '''{{{#ece5b6 아버지}}}''' || [[진공공(규성)|진공공]](陳共公) 규삭(嬀朔)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99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13년 ~ 기원전 599년 (15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의 제19대 [[군주]]. [[진공공(규성)|진공공]](陳共公)의 아들. [[진성공(규성)|진성공]](陳成公)의 아버지. [[하희]](夏姬)와 놀아난 것으로 유명하다. == 생애 == === 다소 평범했던 초, 중기 === 진 영공 원년(기원전 613년), [[노문공]], [[송소공]], [[위성공]], [[정목공]]과 [[진(춘추오패)|진(晉)나라]]의 대신 [[조돈]](趙盾)은 신성에서 회맹했다. 다시 회맹할 때는 초나라에게 순복하고 또한 [[주나라|주(邾)나라]]를 칠 것을 획책하였다. 진 영공 4년(기원전 610년), 진 영공은 공손 녕, 진(晉)나라의 순림보,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의 공달, [[정나라]]의 석초가 군사를 거느리고 [[송(춘추전국시대)|송(宋)나라]]를 쳤다. [[송문공]]이 송 소공을 시해한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진 영공 6년(기원전 608년),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의 왕 [[초장왕]](楚莊王)이 정나라와 함께 진(陳)나라를 쳤다. 덤으로 송나라도 쳤다. 진(晉)나라의 조돈은 진(陳)나라와 송나라를 구했다. 진 영공, 송 문공, 위 성공, [[조문공]]과 진(晉)나라가 비림에서 회합해 정나라를 치고자 했다. 진 영공 7년(기원전 607년), 진 영공은 진(晉)나라, 송나라, 위나라 삼국과 정나라를 쳤다. 진 영공 10년(기원전 604년), 초 장왕이 진(晉)나라를 따르는 정나라를 치자 진 영공은 초 장왕에게 강화를 청했다. 이때 진(晉)나라의 순림보가 정나라를 구하고자 진(陳)나라를 쳤다. 진 영공 11년(기원전 603년), 진(晉)나라, 위나라 양국은 진(陳)나라가 초나라를 섬겨 진(陳)나라를 쳤다. === 하희와 놀아나다. === 진 영공 14년(기원전 600년), 진(晉)나라의 순림보가 병사를 거느리고 진(陳)나라를 쳤다. 이때 진 영공과 대부 공영, 의행보와 진(陳)나라의 왕족 출신인 하어숙의 마누라이자 사마 [[하징서]]의 어머니 [[하희]](夏姬)와 정을 통했다. 그리고 하희의 [[겉옷]]과 [[속옷]]을 가지고 [[섹드립]]을 치자 대부 설야가 횡음무도한 짓을 하지 말라고 [[사망플래그|목숨을 걸고]] [[충신|간했으나]] 공영과 의행보가 진 영공의 묵인하에 설야를 [[살해]]했다.[* 이 일은 단순히 음란한 짓이나 간통이 아닌 이들의 마음을 사서 하징서를 보호하려는 발로로 보는 해석도 존재한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에는 군주의 체통이나 위엄이 중요했는데, 조정에서 공공연히 섹드립을 치는 것은 위엄을 해치는 행위였으므로 설야가 목숨을 걸고 간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정명 사상이라는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지만 은연 중에 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최후 === 진 영공 15년(기원전 599년), 진 영공은 공영, 의행보 3사람과 하징서와 술을 마시는데, 그 내용이 실로 가관이었다. "하징서는 과인과 닮았으니 하징서는 과인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공영과 의행보 또한 옳다고 하면서 각기 자신과도 닮았다는 [[패드립]]을 치니 하징서가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징서는 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매복시킨 궁노수로 진영공을 살해했다고 한다. 이에 공영과 의행보는 초나라로 달아났고, 진(陳)나라의 태자 규오는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다음 해 초 장왕은 하징서를 죽이고 진(陳)나라를 멸했으나 신숙시의 말을 듣고 태자를 세우니 그가 바로 진 성공이다. 그는 내란 평정 뒤 진 영공의 장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