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주한미군]] 주한미군사고문단(駐韓美軍軍事顧問團, United States Military Advisory Group to the Republic of Korea, 약칭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KMAG)은 [[대한민국 국군]]에 자문 역할을 하는 [[군사 고문단]]이다. == 개요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후 임시 미군사고문단이 국군의 교육훈련을 지원하였고 이후 1949년 7월 1일 주한미군사고문단으로 정식 창설되었다 국군 부대에 고문단원들이 몇 명씩 파견되어 국군의 교육훈련, 군수물자지원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고 지휘관과 간부들의 역량을 평가하는 일도 맡고 있었다. == 여담 == * 일단 1949년 즈음에는 [[김석원]] 같은 사단장들은 대령급이었다. 그런데 [[미군정]] 치하와 [[한국 전쟁]] 때 [[유엔군사령부|유엔군]], 특히 미군 도움을 주로 받으며 이들과 사이가 틀어지면 물자도 제대로 지원 안해주니 위관급 고문단원도 상석 대하듯 대해줘야 했다. * 당시 [[영어]] 할 줄 아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해 일부 단어나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그래선지 한국군 내부 사정을 알 듯 하면서도 모르는 일도 많았기에 1960년대까지는 현지 한국군이 군수지원을 요청하면 흔쾌히 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수룩하고 [[호구(유행어)|호구]]같은 면을 보여줘서 지금의 단어가 되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 한국군 담당자 : "우리 중대원들이 훈련 나갔다가 [[모포]]를 전부 다 잃어버렸소. 그리고 수통도 다 잃어 버리고 반합도 다 잃어 버리고 양말도 다 잃어 버리고 속옷도 다 잃어버렸소. 그래서 모포 100개, 수통 100개, 반합 100개, 양말 300켤레, 팬티 500장, 러닝셔츠 400장 청구 좀 넣어주시오." > > 미군 담당자 : "OK" 다음날... > 한국군 담당자 : "미안하게 됐소. 우리 중대원들이 어제 청구 했던걸 또 잊어먹었소. 그래서 이번에는 모포 80장, 반합 120개, 양말 500켤례 넣어주시오." > > 미군 담당자 : "OK" 즉, [[4달러]] 협상과 비슷하게 고문관은 담당자가 필요하다면 현황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다만 작정하고 감추고 요청하면 여기저기 들쑤시며 찾아다니거나 탐문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후자는 전술했듯 의사소통 가능자나 수단이 제한되었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죄다 갖다 바치다시피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성인군자]] 혹은 [[호구(유행어)|호구]]들을 놀리는 단어로 시작된 것이 지금의 [[고문관]]의 의미로 뿌리내린 것이다. 그래도 전투복, 모포 한장 제대로 만들기 힘들었던 당시 한국 실정상 이들이 과잉 보급해준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는 그대로 한국군의 창고에 쌓여 유사시에 쓰이기도 했고 좀 낡거나 남아도는 물자는 시중에 팔아 부대 자금으로도 쓰였다. 게다가 시중에 풀린 것들은 많은 피난민과 민간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일종의 비리인 셈이지만, 특별히 조사를 하거나 안 갖다준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민간에 생필품으로 흘러나가는 걸 알면서도 그냥 눈감아 준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이 없어진다는 '밑빠진 독'이라는 불만은 있었다. 하지만 미군 내의 잉여 물자들을 지원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필요없는 물자를 지나치게 지원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공사등 기지 건물 건설 때 이런 일이 빈번하였는데, [[리영희]]도 이 점을 자신의 회고록에서 지적한 바 있다. 리영희가 당시 통역장교였고 고문관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군사 고문단, version=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