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Giuseppe Casari.jpg|width=100%]] || || 이름 ||주세페 카사리[br](Giuseppe Casari) || || 생년월일 ||[[1922년]] [[4월 10일]] || || 사망년월일 ||[[2013년]] [[11월 12일]] (향년 91세) || || 국적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28]] [[이탈리아]] || || 출신지 ||[[이탈리아 왕국]] 마르티넹고 || || 포지션 ||골키퍼 || || 신체조건 ||173cm || || 소속팀 ||[[그리온 폴라]] (1942-1943)[br][[아탈란타 BC]] (1943-1944)[br][[칼초 레코 1912]] (1944-1945)[br][[아탈란타 BC]] (1945-1950)[br][[SSC 나폴리]] (1950-1953)[br][[칼초 파도바]] (1953-1956) || || 국가대표 ||6경기 (1948-1951)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 생애[*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 === 선수 생활 === ==== 클럽 ==== [[베르가모]]의 마르티넹고(Martinengo)에서 태어난 카자리는 인근의 축구 클럽인 [[아탈란타 BC]]에서 유스 생활을 하다 1944년에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1947-48 시즌에 아탈란타는 [[세리에 A]] 5위의 성적을 거뒀는데 이는 아탈란타가 지금까지 거둔 리그 성적 중 가장 좋은 순위였다. 카자리는 1950년부터 [[SSC 나폴리]]에서 3시즌, [[칼초 파도바]]에서 3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카자리는 1954-55 시즌에 칼초 파도바를 세리에 A로 승격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카자리는 [[1948 런던 올림픽/축구|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해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는 첫 경기에서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을 9:0으로 이겼지만 두 번째 상대였던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덴마크]]에 3:5로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카자리는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그에게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1승 1패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결선 리그|결선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카자리는 1951년에 대표팀의 4차례 친선 경기에 더 참가했다. == 플레이 스타일 & 평가 == 카자리는 민첩성이 뛰어난 골키퍼로 유명했으며 경력 전체에 걸쳐 바른 행동과 리더십으로 좋은 거인(Il gigante buono)로 불렸다. [각주] [[분류:1922년 출생]][[분류:2013년 사망]][[분류:1942년 데뷔]][[분류:1956년 은퇴]][[분류:롬바르디아 주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골키퍼]][[분류:아탈란타 BC/은퇴, 이적]][[분류:칼초 레코 1912/은퇴, 이적]][[분류:SSC 나폴리/은퇴, 이적]][[분류:칼초 파도바/은퇴, 이적]][[분류: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분류:이탈리아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48 런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