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5대 국회의원/전라남도)] [[파일:external/tv.pstatic.net/chosun_400011923.jpg|width=150]] 朱燾允 1922년 12월 28일 ~ 2018년 2월 12일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1922년 전라남도 [[무안군]](현 [[신안군]] 지역)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변호사 시험, 사법관 시험 실무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리하여 광주지방검찰청 본청 및 목포지청, 부산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1953년 수뢰 혐의로 긴급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이 때 긴급구속의 남용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무안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유옥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대 후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입당하였고 신파에 속하였다. 그리고 1959년 [[자유당]]이 날치기로 신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자 이에 무효화를 요구하며 항의하기도 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무안군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3.15 부정선거]]에 가담한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기 위한 [[대한민국 국회]] 공민권 심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1963년)|자유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무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배길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6년 [[민중당(1965년)|민중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되었다. 1970년 [[신민당(1967년)|신민당]]에서 인권옹호위원장이 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신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판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진산]] 체제에 반발하여 신민당을 탈당하고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통일당 당기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민주회복국민회의 [[서울특별시]] 대표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권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서]] [[서대문구 갑|대]][[서대문구 을|문구]]-[[은평구|은]][[은평구 갑|평]][[은평구 을|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한국당]] [[손세일]] 후보와 [[민주정의당]] [[윤길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2년 민권당 인권옹호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신안군 출신 인물]][[분류:1922년 출생]][[분류:2018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주오대학 출신]][[분류:법조인 출신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