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다른 뜻, rd1=조조(동음이의어))]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ABoredAndUnequaledThing, 합의사항1=표제어를 '조조'로 하기)] [include(틀:중국 삼국시대 추존 군주)]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057 0%, #00008b 20%, #00008b 80%, #000057)" {{{#ece5b6 '''조조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5> '''[[후한|{{{#ece5b6 후한의 역대 위공 → 위왕}}}]]''' || || 신규 책봉 || {{{+1 ←}}} || '''조조''' || {{{+1 →}}} || [[조비]] || ---- [include(틀:한의 대장군)] ---- [include(틀:서원팔교위)] ---- [include(틀:조조)]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057 0%, #00008b 20%, #00008b 80%, #000057); color: #ece5b6" '''조위 추존 황제[br]{{{+1 조조 | 曹操}}}'''}}}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조 초상화.jpg|width=100%]]}}} || ||<|2> '''출생''' ||[[155년]] || ||[[후한]] [[삼국지/지명/예주|예주]] [[삼국지/지명/예주#s-8|패국]] [[초현]][br](現 [[안후이성]] [[보저우시]]) || ||<|2> '''사망''' ||[[220년]] [[3월 15일]] (향년 65세) || ||[[후한]] [[삼국지/지명/사례교위부|사례]] [[삼국지/지명/사례교위부#s-2|하남윤]] [[낙양]][br](現 [[허난성]] [[뤄양시]]) || || '''능묘''' ||[[조조묘|고릉]](高陵) || ||<|4> '''재임기간''' ||'''{{{#ece5b6 후한의 사공}}}''' || ||[[196년]] [[12월]] ~ [[208년]] [[8월]] || ||'''{{{#ece5b6 후한의 승상}}}''' || ||[[208년]] [[8월]] ~ [[220년]] [[3월 15일]] || ||<|8> '''재위기간''' ||'''{{{#ece5b6 후한의 비정후}}}''' || ||[[196년]] [[6월]] ~ [[196년]] [[9월]] || ||'''{{{#ece5b6 후한의 무평후}}}''' || ||[[196년]] [[9월]] ~ [[213년]] [[7월]] || ||'''{{{#ece5b6 후한의 위공}}}''' || ||[[213년]] [[7월]] ~ [[216년]] [[5월 29일]] || ||'''{{{#ece5b6 후한의 위왕}}}''' || ||[[216년]] [[5월 29일]] ~ [[220년]] [[3월 15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성씨''' ||[[조(성씨)|조(曹)]] || || '''휘''' ||'''조(操)''' || || '''부모''' ||부황 [[조숭|태황제]][br]모후 [[태황후 정씨|태황후]] || || '''형제자매''' ||6남 중 장남 || || '''배우자''' ||정실 [[정부인]], [[무선황후 변씨|변부인]][br]후궁 [[유부인(후한)|유부인]], [[두씨(삼국지)|두부인]] 등 || || '''자녀''' ||25남 6녀 || || '''아명''' ||아만(阿瞞), 길리(吉利)[* 아명은 아만(阿瞞)인데, 만(瞞)과 조(操)는 비슷하게 조작하다(날조를 뜻하는 조작(造作)이 아니라 조종한다는 의미의 조작(操作)), 속이다라는 뜻이 있다. 이름대로 조조는 간사한 간웅(奸雄)의 이미지로 잘 알려졌으며, 실제로도 교묘하고 복잡한 인물이었다. 또 다른 이름은 길리(吉利). 리(利)라는 글자도 교묘한 느낌을 풍기기는 마찬가지다.] || || '''자''' ||맹덕(孟德)[* 이름의 조(操)와 자의 덕(德)자는 순자가 쓴 글의 권학편에서 언급되는 덕조(德操)에서 따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일등공신이었던 순욱과 순유가 순자의 자손이다.] || || '''작호''' ||비정후(費亭侯) → 무평후(武平侯)[br]→ 위공(魏公) → 위왕(魏王) || || '''묘호''' ||[[태조]](太祖) || || '''시호''' ||무왕(武王) → [[무(시호)|무황제]](武皇帝)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후한]] 말의 인물. [[초한쟁패기|초한쟁패]] 이후 약 400년간 이어져 온 [[한나라]]의 마지막 [[승상]]이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삼국시대)|위나라]]의 초대 국왕.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황실을 장악하고 [[유비]]의 [[촉한]]과 [[손권]]의 [[오(삼국시대)|손오]]를 상대로 천하를 두고 자웅을 다투었다. 사실상 [[위(삼국시대)|조위]]의 기반을 만든 군주이며 [[춘추전국시대]]와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난세]]인 [[위진남북조시대]]의 시작을 알린 인물. 조조에 의해 기반이 만들어진 위나라가 멸망하고 이후 [[서진]]이 건국되어 최종적으로 천하를 통일하긴 했으나 [[사마염]]의 치세가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짐과 동시에 300년 이상 이어지는 혼란기가 도래했다.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며 사후 아들인 [[조비]]가 추증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왕에 오른 조비가 조조에게 무왕(武王)의 시호를 올렸으나, 황제가 되고서는 묘호와 존호를 더해 조조를 태조 무황제(太祖 武皇帝)로 추존하였다. 조조 본인은 황제에 오르지 않았고, 명목상으로나마 한나라의 신하로 죽었으나 [[선양]]을 받고 [[위(삼국시대)|위나라]]를 건국하여 황제가 된 아들인 조비에 의해 황제로 승격된 것이다.[* 물론 말년엔 [[제후왕]]까지 올랐었고, 공식적으로 [[선양]]을 받지 않았을 뿐 실질적으로는 이미 생전에 위나라의 기반이 만들어진거나 다름이 없었고 사후에 [[추존]]으로나마 황제가 되긴 했으니 위나라의 실질적인 건국 군주나 다름없었다. 또한 한나라는 조조가 사망한지 1년도 안 되어서 멸망했고 위나라가 건국되었다.] 고대부터 능력은 뛰어났지만 자신이 신하로서 모시던 한 왕조를 완전히 끝낸 역사적 행보 때문에 [[망탁조의]]의 한 사람으로 묶여 역적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이른바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소설 《[[삼국지연의]]》에선 이러한 [[영웅]]이면서도 [[간신]]인 면모를 잘 살려 [[조조 vs 유비|유비의 숙적]]으로 묘사했다. == 이름 == 조조(曹操)의 이름인 조(操)와 [[자(이름)|자]]인 맹덕(孟德)은 [[순자]] 권학편(勸學篇)의 구절 '덕조(德操)'에서 따온 것이다. 다음은 해당 내용. >是故權利不能傾也(시고권리불능경야) >그러므로 권세와 이익이 넘어뜨릴 수 없으며, >群衆不能移也(군중불능이야) >타인들의 압력이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天下不能蕩也(천하불능탕야) >천하도 흔들 수 없다. >生乎由是(생호유시) 死乎由是(사호유시) >살더라도 이 배운 것을 따르고 죽더라도 배운 것을 따르니 >夫是之謂'''德操'''(부시지위'''덕조''') >이것을 덕행(德行)의 지조(志操)라고 이르는 것이다. >'''德操'''然後能定('''덕조'''연후능정) >덕행의 지조 있은 뒤에는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고, >能定然後能應(능정연후능응)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뒤에는 능히 적응해야 하며, >能定能應(능정능응) >마음이 안정되고 적응이 되면, >夫是之謂成人(부시지위성인) >무릇 이것을 일러 성인(成人)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북경어 발음으로는 '''차오 차오(Cáo Cāo)'''. 고전 영문판 삼국지를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Cao Cao'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물론 [[상고한어|당시]] [[중고한어|중국어]]는 현대 중국어와 발음이 많이 다르니 이게 원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시 발음이었을 [[상고한어]]로는 ŋtsˁu tsʰˤawʔ(응쭈 차웋)으로, 같은 음절의 반복은 아니다. 현대 발음으로는 성조의 차이가 있다. 일본식 독음은 そうそう(소-소-)[*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는 さうさう. 아마 옛날에는 '사우사우'로 읽었을 것이나 후대에 철자는 남은 채 '소-소-'로 발음이 바뀌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좀 더 간단한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 교체되면서 そうそう로 쓰게 되었다.], 베트남식으로는 Tao Thao(따오 타오)라고 읽는다. 상고한어와 마찬가지로 음절이 다르다. == [[/생애|생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조/생애)] == 가족 관계 == * 양증조부 [[조절]] * 양조부모 * 양할아버지 [[조등]] * 양할머니 [[고황후 오씨]] * 부모 * 아버지 [[조숭]]: 조덕과 함께 낭야에서 조조를 찾아가던 중 [[도겸(삼국지)|도겸]]의 부하에 의해 조덕과 살해당한다. * 어머니 [[태황후 정씨]] * 형제자매 * 남동생 [[조덕]]: 조숭과 함께 낭야에서 조조를 찾아가던 중 [[도겸(삼국지)|도겸]]의 부하에 의해 조숭과 살해당한다. * 남동생 조빈(曹彬): 조조의 아들 [[조균]]이 숙부 조빈의 뒤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남동생 조옥(曹玉): 조조의 아들 조휘가 숙부 조옥의 뒤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남동생 해양애후(海陽哀侯): [[하후형]]의 장인어른으로, '해양애후'라는 봉호만 알려져 있고 본명은 불명이라서 조조의 동생들 중 유일하게 봉호가 알려지지 않은 [[조덕]]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다. * 친척 * 조카 [[조안민]]: 완 전투에서 조앙과 전사한다. * [[조휴]]: 촌수로는 상당히 먼 것으로 추정된다. 대사마를 역임했다. * [[조진]]: 조위의 3대 황제 [[조예]] 때 군부 일인자로 활약한다. * [[덕양향주 조씨]]: [[조진]]의 누이이다. * [[조인]], [[조순(후한)|조순]]: 이 두 명은 형제로 조인이 형이다. * [[조홍]] * [[하후돈]], [[하후연]]: 다만 하후돈, 하후연과는 친척 부정설이 있다. 하지만 하후연의 경우 부인이 [[정부인]]의 누이라고 하니 동서 관계로 인척이긴 하다. * 처첩과 자녀들 * 처 [[정부인]]: 첫 번째 정실. 여성 편력이 화려한 그 조조가 유일하게 몇 번이나 재결합하자고 애걸복걸했음에도 재결합에 실패한 여성이다. * 첩 [[유부인(후한)|유부인]]: 정부인과 함께 조조의 최초 처첩이다. * 1남 [[조앙]]: 완 전투에서 조안민과 전사한다. * 2남 [[조삭]] * 1녀 [[청하공주]]: [[하후무]]의 부인이다. * 처 [[무선황후 변씨]]: [[조비]]의 모친이자 훗날 왕후가 되는 [[무선황후 변씨|변씨]]는 가기 출신이다. 정부인이 떠난 후 그녀가 두 번째 정실이 된다. * 1남 [[조비|고조 문황제 조비]] * 2남 [[조창]] * 3남 [[조식(삼국지)|조식]] * 4남 [[조웅]] * 첩 [[환부인]]: 조조의 [[서주 대학살]] 때 조조의 첩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1남 [[조충]] * 2남 [[조거]] * 3남 [[조우(삼국지)|조우]]: 조위의 마지막 황제 [[조환]]의 부친이다. * 첩 [[두씨(삼국지)|두씨]]: [[여포]]를 토벌할 때 [[관우]]가 여포의 수하 [[진의록]]의 아내 [[두씨(삼국지)|두씨]]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을 때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보니 미인인지라 조조 자신이 취했다.[* 호사가들은 관우가 조조를 떠난 이유가 두씨를 조조가 차지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허나 만일 그랬다면 관우가 조조에게 받은 은혜는 꼭 갚고 떠나겠다고 하진 않았겠고, 관우는 조조에게 받은 상을 다 봉한 채로 은혜를 갚고 떠났다. 애시당초 관우는 조조에게 받은 은혜를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안량 참살과 백마 포위 해제라는 큰 공으로 갚았다. 조조에게 앙심이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으려 하진 않았을 터이다. 다만 관우 성격에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니 조조를 유비보다 낮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됐을 것이다.] * 1남 [[조림(조위)|조림]] * 2남 [[조곤]] * 1녀 [[금향공주]] * 첩 진씨(秦氏) * 1남 [[조현(조위)|조현]] * 2남 조준 * 첩 [[윤씨(삼국지)|윤씨]]: 조비 등과 형제처럼 자라난 [[하안]]의 어머니 윤씨는 [[하진]]의 며느리였지만 조조의 첩으로 개가했다. * 1남 조구 * 첩 왕소의(王昭儀): [[조간]]의 양모이다.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조비가 황제가 되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 첩 손희(孫姬) * 1남 조상 * 2남 [[조표(조위)|조표]] * 3남 조근 * 첩 이희(李姬) * 1남 조승 * 2남 [[조정(삼국지)|조정]] * 3남 조경 * 첩 주희(周姬) * 1남 [[조균]] * 첩 유희(劉姬) * 1남 조극 * 첩 송희(宋姬) * 1남 조휘 * 첩 조희(趙姬) * 1남 [[조무(조위)|조무]] * 첩 진씨(陳氏): 조간의 친모이지만 조간이 어릴 때 죽었다. * 1남 [[조간]]: 조조가 환갑을 넘어서 본 막내로[* 조조가 60대 중후반에 사망했으니, 조간은 조조가 죽기 몇 년 전에 얻은 늦둥이다.] 조비와는 30살이나 차이 나서 조비를 보면 [[형]]이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불러 조비가 "난 할아버지가 아니라 형이다."라고 고쳐줬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조카인 [[조예]]보다도 10살 이상 나이가 어렸다. * 생모 미상 * 딸 [[조헌(삼국지)|조헌]] * 딸 [[헌목황후 조씨]](조절): [[후한]] [[헌제]]의 두 번째 황후. 후한의 마지막 황후. * 딸 [[조화(삼국지)|조화]] * 딸 [[안양공주]]: 순욱의 아들 [[순운]]과 결혼했다. * 양자 * [[진랑]]: 조조와 재혼한 [[두씨(삼국지)|두씨]]가 데려온 아들이다. * [[하안]]: 조조와 재혼한 [[윤씨(삼국지)|윤씨]]가 데려온 아들이다. == [[조조묘|조조의 무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조묘)] == [[/평가|평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조/평가)] === [[/업적과 능력|업적과 능력에 대한 평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조/업적과 능력)] === [[조조 vs 유비|vs 유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조 vs 유비)] == 어록 == >{{{+1 [ruby(寧敎我負天下人休敎天下人負我, ruby=영 교 아 부 천 하 인 휴 교 천 하 인 부 아)]}}}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칠지언정, 다른 사람들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게 할 수 없을 것이오." 정사에선 '천하' 대신 '다른 사람'이었는데 연의에서 약간 각색된 것이다. 난세의 간웅이란 정체성을 지닌 조조라는 인물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홍길동전]]의 판본 중에는 “천하가 나를 저버릴지언정, 내가 천하를 저버리지 않겠다.”라는 대사로 패러디 됐는데, 이 대사는 중국에서 만든 [[신삼국]] 삼국지 드라마판에도 [[조조]]의 반대편에서,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유비(삼국)|유비]]가 하는 대사로 나온다.] >---- >《[[삼국지연의]]》에서 [[여백사]]를 살해한 조조에게 [[진궁]]이 왜 그랬는지 묻자 조조가 답한 후 이어서 한 말.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奸賊)이요, 난세의 영웅(英雄)이라. >---- >인물 평론가인 [[허소]]가 조조에 관상에 대해 한 평.[* 조조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는 평범한 관리 시절 때였다.] == 기타 == >갑(𢂿, 모자)은 위나라 무제가 만든 것이다. 군중에서 복장의 간편함을 위해 만들었으며, 또한 오색의 갑(𢃫)을 만들어 방면(方面)을 표시했다. >---- >고금주 『여복』 >위나라 무제는 [[마노]]석으로 만든 말 재갈과 거거(車渠)[* 커다란 조개껍데기, 꽤나 비싼 사치품이라고 한다.]로 만든 술 사발을 만들었다. >---- >고금주 『잡주』 >봉(棒)은 최정웅(崔正熊,최표崔豹)의 주註에서 이르길: 거폭車輻이다. 한나라 때 집금오(執金吾)의 금오(金吾) 또한 봉이다. 구리로 만들고 황금으로 양 끝을 칠했기에 금오라 하였다. 어사대부, 사례교위 또한 그것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을 수레바퀴에 끼웠기에 거폭이라 하였다. 한편으로는 그 모양이 수레바퀴살과 비슷해서 거폭이라 했다고도 한다. 위나라의 조조가 낙양북부도위로 있을 때 문에 오색 봉을 걸어 호활(豪猾)들에게 위엄을 보였다. >---- >중화고금주 >위나라 무제는 일찍이 골짜기에서 검을 하나 얻었는데 금가루로 맹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무제는 늘 그것을 착용했다. >---- >도검록 * [[춘추시대]]의 어느 나라를 조조의 종씨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주나라]] 왕실 종친이다. * [[사물기원]]의 설명에 의하면 최초로 전하(殿下)로 불렸다고 한다. 전하라는 호칭은 원래 한나라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위왕으로 봉해진 조조를 두습이 전하로 호칭한 것이 전하라는 존칭의 시초라고. [[전하(호칭)|전하]] 문서 참고. * 조조가 끈질기게 등용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한 인물 두 명이 있다. 바로 [[관우]]와 [[태사자]]였다. 둘 다 무예로는 당대급 수준이었는데 관우는 일시적으로 부하로 두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얼마 못 가 조조를 떠나버렸다. 태사자에게는 조조가 직접 [[당귀]]를 선물하며 등용을 시도했으나 태사자는 잠시 보류하고 있다가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키자 실망해 조조를 거부했으며 나중에 [[손책]]의 휘하로 들어갔다.[* 삼조시문역주에 따르면 [[제갈량]]도 회유한 적이 있다.] * 젊은 시절에 [[하후돈]], [[하후연]] 형제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놀고 먹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 객잔에서 [[무선황후 변씨|가기]]를 겁탈하려는 취객을 막으려다 그 취객을 살해해버렸다. 이것 때문에 관군에게 잡힐 위기에 몰렸는데 그 가기가 조조의 검을 빼앗아서 하후연에게 쥐어준 뒤 조조를 도피시켰다. 이후 하후연은 체포당했고 조조는 집에 가서 돈을 많이 들고 관가로 찾아와서 하후연을 체포한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하후연을 데려왔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고 조조는 그 객잔을 다시 찾아가서 그 사건에 연루된 가기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이후 계속 같이 살았다. * 조조의 성인 조씨는 원래 그의 성은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인 [[조숭]]이 [[환관]] [[조등]]의 [[양자(가족)|양아들]]로 들어가면서 얻은 성씨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원래 성씨는 [[하후]]씨라 하며, [[하후돈]]이나 [[하후연]]과는 친척 형제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조조의 원래 성씨가 하후씨인지 정말로 하후돈과 하후연이 친척 형제인지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숭]] 항목 참조. * [[도굴]]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아 평생 도굴에 신경썼고, 부장품으로 군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주요 수입원이기도 해서, 조조 휘하 부대에는 항상 도굴 전담 부대가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무덤을 만들 때도 도굴당할 것을 염려해 위나라 영토 각지에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조묘 관련 의문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 * 현대에 와서는 주로 일본 창작품의 영향을 받아서 미남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위서에 '키가 작지만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당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키가 작았을 것이다. 일본 미디어에서의 조조=[[오다 노부나가|직전신장]] 공식에 의해 조조를 한나라를 부정한 혁명가, 개혁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는 한나라를 부정하기는커녕 협천자를 칭하며 한나라의 권위에 기대어 등골까지 쪽쪽 빼먹었지만 말이다.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의 조조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의 모습과 거의 같다. 코에이 사의 역사 시뮬레이션이 인물 개개인의 매력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 만큼, 여러 인물들의 특징적인 면들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일이 왕왕 발생하는 것. 코에이를 비롯한 일본에서 씌여진 2차 창작에서 조조와 오다 노부나가를 등치시키는 면이 상당히 강하다. 일본에서 조조를 '냉혹한 초인'으로 묘사한 것은 나쁠 것 없는 캐릭터 해석이었다. 중화권의 삼국지 컨텐츠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코에이 게임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 삼국지 팬덤의 현실상 코에이 게임의 이미지 메이킹, 특히나 그 정점에 선 캐릭터인 조조의 이미지는 한국 삼국지 팬덤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근래에 이르러 사서에 기록된 조조의 만행들이 속속 알려짐에 따라 삼국지 독자들 사이에서 조조를 한 글자로 합쳐서 '쬬'라는 별명이 붙었고, 조조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별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삼국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 조조를 비하하는 별명을 부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고우영]]은 호색하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조조를 가리켜 '[[좆]]조'라고 놀렸다. * [[원소(삼국지)|원소]], [[원술]], [[채모]], [[허유]] 등이 조조의 친구들이다. 하지만 원소는 어른이 되고 난 이후 [[관도대전|절교해서 불구대천이 되었으며]], 허유는 너무 오만무례하게 구는 바람에 조조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고 결국 꼬투리가 잡혀서 조조에 의해 처형당했다. * 이상하리만큼 유부녀와 관련이 깊은데 이 탓인지 대중매체에서의 조조는 유부녀 취향으로 그려지는 일이 잦다. 아버지만큼이나 유부녀에 심취한 아들 조비도 함께이다. 아마도 '''남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이라는 측면이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다. 고대 중국의 상류층 가십거리인 <세설신어>에서 어릴 적 원소와 짜고 남의 집 신부를 납치하려다 발각되어 달아난 적이 있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면 이미 오래 전부터 조조가 유부녀를 좋아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세설신어>는 정식 사서가 아니라 이것저것 돌아다니는 얘기들을 주워담은 소설이기 때문에 이걸 근거삼아서 조조가 실제 그랬으리라고 판단하는 건 무리다.] 그 전에 조조가 호색한이었다는 것은 당대부터 유명한 평가였다.[* 만화가 고우영은 이런 조조를 좆조라고 놀렸다.] 다만 당시는 난세였기 때문에 남편이 일찍 죽은 아내와 적에게 약탈당한 아내도 많았으며 결혼 연령도 현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았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워낙 난세이다 보니 온 나라에 [[과부]]가 넘쳐났고 크게는 호족들 간의 [[정략결혼]], 작게는 국력을 위해 과부들이 수절하기보다는 개가해서 건강한 씨를 받아 애를 낳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기 때문에 개가하는 사례는 많았다.[* 이슬람에서 정실을 4명까지 허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부족사회로 전란이 끊이지 않는 중동 상황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했다간 여자들이 굶어죽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더 어려웠던 유목민족들은 [[형사취수제]]와 같은 풍습이 있었다.] == [[/기타 창작물|대중매체에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조/기타 창작물)] == 둘러보기 == [include(틀:위서)] ---- [include(틀:전삼국문)] ---- [include(틀:삼조)] ---- [include(틀:망탁조의)] ---- [include(틀:18로 제후)] ---- [include(틀:삼국지)] [각주] [[분류: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