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폐쇄된 교통시설)] || {{{+1 常紋信号場}}}[br] || {{{+1 Jōmon Signal Station}}} || ||<-3> {{{#!wiki style="margin: -0px -5px" [[JR 홋카이도|[[파일:JRH_Wlogo.svg|height=50&align=left]]]]}}}[[JR 홋카이도|{{{#d8d8d8 JR 홋카이도}}}]][br]'''{{{+2 {{{#d8d8d8 조몬 신호장}}} {{{#ffffff (폐역)}}}}}}'''|| ||<-3>[include(틀:지도, 장소=常紋信号場跡, 너비=100%, 높이=300px)]|| ||<-3> '''다국어 표기''' || || 일본어 ||<-2> 常紋信号場[br](じょうもんしんごうじょう) || || 영어 ||<-2> Jōmon Signal Station || ||<-3> '''주소''' || ||<-3> [[홋카이도]] [[키타미시]] 루베시베초 카네하나[br]北海道北見市留辺蘂町金華 || ||<-3> '''역 운영기관''' || ||<:>[[세키호쿠 본선|{{{#ffffff 세키호쿠 본선}}}]]||<-2> [[JR 홋카이도|[[파일:JR 홋카이도 로고.svg|width=180]]]] || ||<-3> '''개업일''' || ||<-3> 1914년 10월 5일 || ||<-3> '''폐지일''' || ||<-3> 2017년 3월 4일 || ||<-3> '''노선거리표''' || || [[신아사히카와역|{{{#000000,#e5e5e5 {{{#!html
신아사히카와 방면
}}}}}}]][[이쿠타하라역|이쿠타하라]][br]← 10.3 km || '''[[세키호쿠 본선]]'''[br]--조몬 신호장--[br]{{{#red,#ff0000 (폐역)}}} || [[아바시리역|{{{#000000,#e5e5e5 {{{#!html
아바시리 방면
}}}}}}]][[카네하나 신호장]][br]4.7 km → || || [[파일:조몬 신호장.jpg|width=100%]][br]2009년의 신호장 구내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 [[홋카이도]] [[키타미시]]에 위치한 [[JR 홋카이도]] [[세키호쿠 본선]]의 폐지된 [[신호장]]이다. 1914년에 조몬 신호소(常紋信号所)로 개업, 1922년에 신호장으로 승격되고 1951년에 가승강장을 건설하여 역으로 승격되었으나 1975년에 다시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 주로 [[증기 기관차]]가 [[스위치백]]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를 촬영하기 위해 전국의 [[철도 동호인]]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일본국유철도]]가 신호장에 가승강장까지 설치해가며 여객영업을 한 주된 이유이다. 물론 [[증기 기관차]] 운행이 끝난 뒤로는 신호장 업무도 중지되었고, 2017년 3월 4일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주변에는 숲밖에 없다. == 조몬터널 == 신호장이 역 북쪽의 조몬터널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여객영업을 하던 시기에 당직 직원이 심령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조몬터널은 건설 당시 가혹한 [[강제노동]]으로 악명이 자자하여,[* 당시 홋카이도에서는 [[https://ja.wikipedia.org/wiki/タコ部屋労働|문어방 노동(タコ部屋労働)]]이라 하여 장기간 노동자들의 신체를 구속하고 육체노동을 시키는 노동 착취가 성행했다. 현재는 일본 노동 기준법 5조에 의해 금지되었다.] 1912년부터 1914년까지 공사기간 36개월 동안 사망자가 100명 이상 나왔다. 병든 노동자에게도 일을 열심히 안 한다고 폭행을 가했고, 사망하면 현장 부근의 숲에 묻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개통 이후에도 열차가 터널 안에서 급정거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자 1959년 [[일본국유철도]]는 1 km 떨어진, 시신을 묻은 공터 앞에 위령 목적으로 조그만 석조 [[지장보살]] 입상 한 좌를 세웠다. 보살상 뒤편 공터에서 '''유골 50여 구'''를 수습했다고 한다. 더 무서운 사실은 현장 감독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삽으로 때려 죽인 뒤 본보기로 '''시신을 터널 벽에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일본어로는 히토바시라(人柱)라고 한다. 본디 히토바시라는 무너지기 쉬운 건축물에 인신공양을 바쳐 튼튼하게 하려는 주술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주술적인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완공 이후 전설처럼 구전되던 내용이었는데, 1968년 산리쿠 해역지진(三陸沖地震)이 일어나 터널을 수리하던 중 1970년 터널 벽 안쪽에서 '''두개골에 금이 간 해골'''이 발견되어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조사에서 시신 10구를 추가로 발견하여 마을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1980년에는 [[카네하나 신호장|카네하나역]] 앞에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4/J%C5%8Dmon_tunnel01.JPG|위령비]]를 세웠다. 이 위령비에선 망자들을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순직자'라고, 마치 공사 중 불의의 사고로 죽은 양 묘사했다. == 배선 구조 == 좌측이 조몬터널/[[이쿠타하라역|이쿠타하라]] 방면, 우측이 [[니시루베시베역|니시루베시베]] 방면이다. ([[http://doctortt.sakura.ne.jp/station/jomon.html|배선도 출처]]) [[파일:external/doctortt.sakura.ne.jp/jomon_animation.gif]] [[분류:일본의 폐지된 철도 신호장]][[분류:1914년 개업한 철도역]][[분류:2017년 폐지된 철도역]][[분류:세키호쿠 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