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의 [[경성부]]에 세워졌던 [[일본]]식 사찰.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와는 다른 절이다. 현재의 [[동국대학교]] 위치에 있던 [[절(불교)|절]]로 당시 그 지역를 대화정[* 해방 이후 필동으로 개칭되었다.]이라고 불렀다는 것 때문에 대화정 조계사(大和町 曹溪寺)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동국사]]처럼 한국에 들어온 일본식 사찰이었다. 당시 조계사 소유 부지는 현 [[동국대학교]]뿐만 아니라 장충단공원, 앰배서더 호텔, 그리고 지금의 하숙촌과 [[대한극장]] 앞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면적이었다고. 바로 옆인 현 [[서울신라호텔]] 자리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세운 절 [[박문사]]가 있었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철거된 듯하다. === 건축 === ==== 정각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정각원, 문단=1)] [[파일:external/3.bp.blogspot.com/20170225_152801.jpg]] 이 조계사의 본당은 원래 [[조선]]의 궁궐이었던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건물이었다. 총독부가 매물로 내놓은 [[경희궁]]의 전각을 1926년에 사들여 조립했던 것. 해방 이후 대화정 조계사의 부속 건물들은 철거되고, 조계사 부지에 [[동국대학교]]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본당인 숭정전만 남았다. 그리고 숭정전이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이동된 후 [[정각원]]으로 바뀐 것이다. 경희궁 복원 당시 환원하는 것이 논의되었지만 숭정전 건물의 내부 변형이 너무 심해 [[경희궁]]으로 환원되지 못했다. 그리고 경희궁에는 새롭게 복원한 숭정전 건물이 생겼다. ==== 황건문 ==== [[파일:attachment/HGgate.jpg|width=500]] [[동국대학교]]의 황건문. 훼손이 심하다. 황건문(皇建門)은 원래 [[평양시|평양]]의 궁궐인 [[풍경궁]] 정문이었다. 크고 시원하게 뻗은 기둥들의 아름다움으로 이름이 높았다. 1925년에 일본사찰이었던 경성 대화정 조계사에서 이 문을 사들여 산문으로 쓰게 된다. 1926년 8월에는 폭우로 인해 황건문 지붕이 반이 붕괴되어 당시 돈으로 2천만원의 피해가 났다. 해방 이후 이 대화정 조계사 자리에 [[동국대학교]]가 건립되고, 황건문은 동국대학교 정문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71년 학생회관이 옆에 신축되면서 현대식 건물과의 부조화와 유지보수부실로 인해 학교당국에서 해체/철거하였다. 이후 주춧돌마저 도서관 근처로 치워지고, 현판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게 유일한 풍경궁의 건축은 우리 손으로 폐기물이 되어 사라졌다. 동국대학교의 [[흑역사]] 중 하나. 참고로 옆의 [[박문사]]에는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가져와서 산문으로 삼았고, 이후 흥화문은 박문사 자리에 들어선 [[서울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쓰이다가 복원된 경희궁으로 반납되었다. 한편 박문사가 뜯어온 [[경복궁]]의 [[선원전]]은 어디갔는지 알 수 없고, 박문사를 건설한 업체가 신라호텔을 건설했다는 주장이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759982|포스팅]] ==== 구 조계사종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구 조계사종)] 대화정 조계사에 있었지만 폐사된 뒤 태고사[* 현 [[조계사]]]로 옮겼다. [[광복]] 이후 국보에서 해제되면서 위작이냐 진품이냐를 놓고 논쟁이 뜨거웠지만 현대의 조사 결과 [[신라]]시대 범종이 맞다는 설이 대세. 그러나 국보 재지정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에 소장 중이다. === 같이보기 === * [[경희궁 숭정전]] * [[동국사]] * [[박문사]] * [[조선신궁]] * [[풍경궁]] [각주] [[분류: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