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제나라)] [Include(틀:관련 문서, top1=평로)] [Include(틀:중국의 역사)] ||[[파일:attachment/이정기/chichungbunjin.jpg|width=100%]]|| || [[http://c.ask.nate.com/imgs/qesi.tsp/9603019/1/1/A|당시 추정 영역과 당과의 충돌지점]] || {{{+1 齊 }}} 765~819(782~784) [목차] [clearfix] == 개요 == [[안사의 난]] 이후 세력이 약화된 [[당나라]] 중후기대([[만당]])에 등장한 [[번진]] 세력. 약칭은 '''이제(李齊)'''. [[고구려]]계 유민 출신 [[이정기]][* 이정기는 당나라에 살던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일부에서는 [[백제]] 유민으로 보기도 한다.사실 [[장보고]]부터가 구 백제 지역인 [[전라도]] 지역 섬 출신이지만 '신라인'으로서 중국 [[신라방]]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듯 여기서 말하는 '신라'는 [[삼국시대]]의 [[삼국]]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를 포함한 [[후기 신라]]를 말하므로, [[한반도]]와 맞닿은 중국 동해안에는 신라인으로 분류되었지만 출신을 따지고 보면 구 고구려, 백제 유민 출신이 많이 섞여 살고 있었다.] 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평로절도사|치청평로절도사(淄靑平盧節度使)]]'''로 임명된 765년부터 시작해 819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본다. 단 제나라라는 국명을 사용한 것은 [[이납]] 때의 782년~784년의 일시적인 일이고 존속 기간 대부분에서 치청평로절도사로 행세했다. 이정기를 비롯해 4대 55년 가량 지속되었다. == 역사 == 고구려 유민의 이정기는 [[안사의 난]]을 틈타서 [[요서]]의 평로 번진의 실권을 장악하고 이어 [[안록산의 난]] 와중 [[산동 반도]]로 이동하여 치청 번진의 [[치청절도사]]까지 아울렀으며 정식으로 [[평로치청절도사]]에 취임하여 평로치청 번진을 대대로 세습하게 되었다. 평로치청번진은 전성기에는 하북삼진(노룡,성덕,위박)과 하남이진(회서,평로) 중 최강의 반당 번진의 필두로써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부 15개 [[주(행정구역)|주]]를 점령했으며 [[서주(중국)|서주]] 등 [[대운하]]의 중추지를 점령하여 당을 위협하였으며, 대규모의 [[염전]]과 [[발해]], 신라 등과의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심지어 한때 [[시안(도시)|장안]]을 공격하려 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819년 당과 [[신라]][* [[헌덕왕]] 재위기 순천군 [[장군]] [[김웅원]]으로 하여금 3만 명의 군대를 거느려 파병케 하였다. 다만 이사도의 난은 819년 2월에 진압되었는데, 신라는 5개월 뒤인 819년 7월에야 구원군 파병 의사를 밝혔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기록에 [[오타]]를 낸 것이 아니라면, 신라군은 약속만 하고 실제로 출진은 하지 않았거나, 거리도 원격한데다 신속한 연락수단도 없었던 시대의 한계상 정보의 혼선으로 실제 [[토벌]]에 참여는 못하고 허탕을 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례로 즉위 축하 사절을 보냈는데 그 축하를 받을 [[왕]]이 사절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든지(...) 하는 사건도 있었다. 다만 젊은 시절의 [[장보고]] 등 당군 소속 신라인들은 별개로 이사도 토벌에 참여했다.]의 연합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사도]] 문서 참조.] == 역사적 평가 == 만당의 [[난세|혼란기]]라 그런지 단순한 독립 세력인지 국가인지 서술이 어중간하지만, 고구려 유민 출신 이정기에서 이어지는 고구려계 이씨 세력이 약 60년간 통치하여 일부 [[민족주의]] 사관이 강한 [[한국인]]들은 제를 [[한국사]]를 이야기할 때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 [[중국사]]의 [[중국사 역대 국명|국명]] [[제나라]]라는 국명부터 이정기가 과연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영 회의적 의견이 많다. 또한 당의 시점에서 '제' 는 어디까지나 '평로 번진' 이었을 따름이며, 개중에서도 가장 반항적인 번진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당덕종]] 전반기의 '[[사진의 난]]'의 중심세력으로 꼽히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당의 관직을 지속적으로 사실상 받아왔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국가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물론 평로절도사가 이정기 대에서부터 독자적으로 백관을 세우고 법제와 세제를 임의로 집행하는 등 거의 반독립국의 형태를 띈 것은 맞다. 또한 그 아들인 이납의 시대에 들어서는 782년 11월에 제나라로 [[국호]]를 정해 칭왕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칭왕은 다른 하북삼진들이 칭왕하자 따라서 하였던 것이며, 이마저도 [[절도사]]직 세습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784년 1월에 바로 취소했다. 즉, 엄밀히 말해 이 항목에서 다루는 제나라의 존속 기간은 '''1년 3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그 외 기간에는 늘 당나라 산하의 [[번진]] 세력이었다. 물론 [[민족주의]]적 사관의 평가와는 별개로 평로치청 번진의 제나라는 당시 당나라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활동하면서 정치적 세력을 형성했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의의가 충분하다. == 기타 == 지배선 교수가 전문적으로 고찰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한국에 나온 고구려, 백제계 유민 관련 서적은 거의 대부분 지배선의 저서이다. == 대중매체 == 대하소설 고구려를 위하여에서 민족주의적 관점[* 대표적으로 작중 [[라후족]] [[유사역사학/필수요소|고구려 유민 후예설을 채택했다.]]]에서이긴 하지만 고구려 유민들 및 이정기와 제나라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 역대 군주 == || 대수 || 왕명(시호) || 휘 || 재위기간 || || 1 || || [[이정기]](李正己) || 765년 ~ 781년 || || 2 || || [[이납]](李納) || 781년 ~ 793년 || || 3 || || [[이사고]](李師古) || 793년 ~ 807년 || || 4 || || [[이사도]](李師道) || 807년 ~ 819년 || == 같이보기 == * [[평로절도사]] * [[절도사]] * [[번진]] * [[당나라군]] * [[안사의 난]] * [[안록산의 난]] * [[사사명의 난]] * [[당나라]] * [[고구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제나라, version=117, paragraph=7)] [[분류:수당시대]][[분류:절도사]][[분류:9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