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광산구 출신 인물]][[분류:1867년 출생]][[분류:1945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정동근(鄭東根) || || 생몰 ||[[1867년]] [[4월 22일]] ~ [[1945년]] [[1월 24일]] || ||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시|나주군]] 삼도면 양동리[br](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동) || || 사망지 ||[[전라남도]] [[나주시|나주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정동근은 1867년 4월 22일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 양동리(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7년경 뜻을 같이하는 [[김교락]]·[[양재홍]]·[[문재교]]·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맺고 우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다. 이후 이들은 나주, 함평, 화순, 순천 등 전남 일대에서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1년여 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천여 원의 군자금을 맏아냈고 조직 확대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얼마 후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8년 12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했으나 1919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1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45년 1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동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