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옥천 전씨]][[분류:영동군 출신 인물]][[분류:1885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전기서(全基西) || || 본관 ||[[옥천 전씨]] || || 생몰 ||[[1885년]] ~ ? || || [[출생지]] ||[[충청북도]] [[영동군]] 양남일소면 공암리[br](현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아암리 공암마을)[* 인근의 학산리·박계리와 함께 [[옥천 전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전만표]]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전기서는 1885년생이며 충청북도 영동군 양남면 공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8년 음력 8월경 김흥서(金興西)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그해 8월 10일 남정순(南正淳)ㆍ이덕현(李德賢) 외 3명과 함께 영동군 양내면 모산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리고 9월 9일에는 양내면 의희동과 양남일소면 모산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1908년 음력 9월 26일에는 김흥서, 남정순 등 의병 수 명과 함께 무주군 북면 산의실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했고, 9월 30일에는 영동군 양내면 순양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또한 1908년 음력 11월 4일에는 영동군 양남이소면 묵정리와 남잉면 하묵정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09년 4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6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오히려 형기가 늘어나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전기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