苴羅侯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선비(민족)|선비]]족의 인물로 [[가비능]]의 동생. == 행적 == 220년에 위나라에서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견초]]를 사지절호선비교위로 임명하면서 창평에 주둔시켰는데, 이 때 선비 중에 위나라에 대항하는 지들이 있어 이들을 회유했다. 그런데 [[보도근]], [[설귀니]] 등이 가비능과 서로 틈이 벌어진 일로 견초가 보도근 등에게 이들을 타일러 가비능을 공격하자 저라후는 이 때 [[왕동]], 왕기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 창작물에서 == 소설 삼국지 촉한궐기에서는 가비능이 [[유선(삼국지)|유선]]의 책봉을 받아 그의 신하가 되자 유선에게 가서 인사를 올렸고, 촉이 보도근을 공격하라고 요청했지만 3달이 넘는데도 전과가 없는 것으로 인해 연회를 베푸는 것을 보고 술이나 마신다며 불만을 표했지만 [[위연]]이 위나라가 5만 명의 병력으로 보도근을 지원해 조심한다면서 촉에서 1만으로 2만의 병력이 있는 고노성을 함락한 것을 이야기한다. 저라후가 촉을 돕지 않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아서 안문관을 공격할 때 포를 이용하기 위해서 포를 제조할 재료를 마련할 수 있도록 벌목을 하도록 했는데, 촉의 지시로 만 명을 파견해 벌목을 하도록 하면서 나무와 돌을 채집했다. 촉이 공성장비를 제조한 것에 대해 부하들이 고작 나무 조각 몇 개만 제조했다고 불만을 터뜨리자 우리가 캔 돌덩어리들을 멀리 던질 수 있는 공성장비라고 믿기지 않는다며 어떻게 던지냐면서 의혹을 표했다. [[분류:선비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