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才]][[士]] == '재주가 뛰어난 남자'를 뜻하는 말로 남성에게 쓸 수 없는 단어인 '재원(才媛)'을 남자에게 쓸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 [[齋]][[舍]] == 재사(齋舍)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건축물이다. 주로 [[안동]]과 [[예천]]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 많이 남아있으며, '태장재사', '희이재사', '서재지사', '송석재사', '남흥재사', '금계재사'등 유교건축으로서는 드물게 중층으로 지어진 건축물도 많이 존재한다. == [[고구려]]의 현자 극재사 == ||<:> '''주군''' ||||<:> 동명성왕 || ||<:> '''의복''' ||||<:> 마의(麻衣) || ||<:> '''[[성씨|성]]''' ||||<:> 극씨(克氏) || ||<:> '''[[이름]]''' ||||<:> 재사(再思) || ||<:>'''생몰년도''' ||<:> ? ~ ? || 克再思. [[고구려]] [[동명성왕]] 때에 고구려의 개국을 도운 현자로,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이 [[오이(고구려)|오이]], [[마리(고구려)|마리]], [[협보]] 등과 함께 엄사수를 건너 [[부여]]를 탈출하여 모둔곡(毛屯谷)이라는 곳에 이르었을 때 만나는 세 명의 현인들 중 한명이다. [[동명성왕]]과 만났을 당시에 재사는 마의(麻衣)를 입고 있었으며,[* 이 마의는 말 그대로 [[삼(식물)|삼]]으로 지은 옷으로 여겨진다.] 다른 두 명의 현인인 [[무골]]과 [[묵거]]는 각자 납의(衲衣), 수조의(水藻衣)를 입고 있었다. 이들을 범상치않게 여긴 동명성왕은 세 사람에게 각기 성씨를 내려주고 신하로 삼고는 "나라의 기틀을 열 현인들을 얻었다."라고 말하며 무척 기뻐했다고 전한다. 재사는 이때 극씨(克氏) 성을 하사받았으며~~[[극세사|극제사]]~~, 재주에 맞는 직위를 얻었다. 그리고 나서는 [[무골]], [[묵거]] 등과 함께 동명성왕을 따라 졸본천 지역으로 가서 [[고구려]]의 건국을 도왔다고 한다. 기록에서는 확실히 묘사되지는 않으나, 동명성왕이 이들을 신하로 삼고 기뻐했다는 대목을 보아할때 단순히 현명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무골]], [[묵거]] 등과 함께 모둔곡의 세력가였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이러면 대체 무얼 믿고 살던 곳을 떠나 동명성왕을 따라갔는지 의문이 생긴다.] 한편, 중국 측 사서에서는 이들의 인상착의만 언급될 뿐 이름과 성씨가 누락되어 있으며, 중실과 소실보다 먼저 부여된 것으로 추정된 대실이라는 성씨가 [[대무신왕]] 시기 [[추발소]]에게 부여되어 후대의 일이 상대로 투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주몽(드라마)]]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파일:재사(주몽).png]] [[차광수]]가 연기했다. 마리와 함께 고구려의 브레인 역할을 맡아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고구려]]의 왕족 고재사 == * [[고재사]] [[분류:동음이의어]][[분류:한자어]][[분류:동명이인]][[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