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조선]] 후기 [[정조(조선)|정조]] 22년(1798) 이만영(李晩永)이 편찬한, 오늘날로 치면 [[백과사전]]의 일종으로 8권 4책이다. == 상세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과 [[장서각]]에서 소장한다. 표지엔 만물보(萬物譜)라 씌였다. 천(天)ㆍ지(地)ㆍ인(人) 삼재(三才)와 만물(萬物)의 옛 이름 및 별명(別名) 등을 모아서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 4집(集)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권1은 태극(太極)ㆍ천보(天譜)ㆍ지보(地譜), 권2∼5는 인보(人譜), 권6∼8은 물보(物譜) 등으로 구성되었다. 항목 하나하나에 [[각주]](脚註)를 붙이고, 필요에 따라 [[한글]] 해석도 달았으며, 한국 역대의 제도(制度)와 문물(文物)도 실었다.[* 네이버 백과 사전 참조.] == 택견 관련 == [[택견]]계의 관심을 받는 책인데, 이 책에 "卞 手搏爲卞 角力爲武 苦今之탁견"[* 탁견은 [[한글]]로 표기되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에 나오는 '[[탁견희]]'는 한자인 반면 여기는 한글 표기임이 특이하다.]이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 문헌에서 확인되는 탁견(택견,태껸)의 최초 어원이라 주목받는다. 구절을 풀이해보면, "[[수박(무술)|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 오늘날의 [[씨름]] 정도로 풀이되는 모양.]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 인데, 이 구절을 근거로 택견계에서는 택견이 삼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수박을 계승했다고 보고 있다.[* 수박 자체는 조선 초까지 행해졌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허나 이 책 외에는 교차검증 가능한 사료가 없어서 신빙성을 100% 보장할 순 없다. 특히 재물보같은 전근대의 백과사전류 서적들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민간 속설들을 자주 싣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당시 사회의 대중문화와 연결지어 추측해보면, [[수박(무술)|수박]]의 인기가 시들해진 조선 중후기 무렵 여전히 인기가 일정부분 유지되던 [[씨름]]을 참고해 손과 발을 이용한 넘기기 위주의 [[택견]] 형식이 정립되고[* 재물보를 참고하면 늦어도 18세기 무렵에는 그 형태가 정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전통]] 이런 말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사료]] 말고 실질적으로 그 [[형태]]가 장기간 보존되어 내려온 [[무술]]들은 세계적으로 봐도 많진 않다. 중국무술만 하더라도 그 형태가 전해지는 현존 권법 중 가장 오래된게 [[태극권]]으로 17세기에 나왔다. 복싱 등도 근대 와서 지금의 형태가 정립된거지 고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난다. 당시만 해도 무술은 신체 단련 겸 놀이, 호신술 개념이지 무슨 역사성, 형태 보존 이런 개념 따윈 희박했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게 점점 씨름과 구분되고 발 기술 위주로 발전하면서 서울에서 유행했을[* 다만 발로 까고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는 등 유사한 무술, 유희는 택견 외에도 제법 있었던 모양으로, 왕십리의 까기나 평양의 날파람, 경상도의 깔래기나 잽이, 제주도의 발찰락 등등 그 명칭은 전해지고 있다.] 가능성도 있겠다. [[분류:택견]][[분류:조선의 도서]][[분류:훈민정음]][[분류:100대 한글 문화 유산]][[분류:장서각 소장품]][[분류:규장각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