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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관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파일:oeiwjnFKre1sqk8veo7_r1_540_2.jpg|width=70]] '''1999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s-2]] MVP''' || ---- ||<-5> '''{{{#fff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등번호 35번}}}''' || ||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br](1986~1998) || {{{+1 →}}} || '''{{{#fff 장준관[br](2000~2003)}}}''' || {{{+1 →}}} || [[진필중]][br](2004~2007) || ||<-5> '''{{{#fff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등번호 27번}}}''' || || [[최향남]][br](1997~2003) || {{{+1 →}}} || '''{{{#fff 장준관[br](2004~2006)}}}''' || {{{+1 →}}} || [[박명환]][br](2007~2012) || ||<-5> '''{{{#fff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등번호 62번}}}''' || || [[서용빈]][br](2005~2006) || {{{+1 →}}} || '''{{{#fff 장준관[br](2007~2008.5.31.)}}}''' || {{{+1 →}}} || [[김태군]][br](2008.6.~2011) || }}} || ||<-2> [[파일:external/file.thisisgame.com/707l.png|width=100%]] || ||<-2> '''{{{+2 장준관}}}[br]張準菅 | Jun-Kwan Jang''' || ||<|2> '''출생''' ||[[1981년]] [[4월 14일]] ([age(1981-04-14)]세) || ||[[대구광역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대구중앙초등학교|대구중앙초]] - [[경상중학교|경상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s-3.2|2000년 2차 1라운드 ]] (전체 3번, [[LG 트윈스|LG]]) || || '''소속팀''' ||[[LG 트윈스]] (2000~2008) || || '''지도자'''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 LG 트윈스의 투수. == 선수 경력 ==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출신으로 [[2000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후보로 유력한 선수였는데, 대구상고 시절에는 '''당시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의 [[투수]]인 [[배영수]]보다도 더 뛰어난 선수였다.'''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로 [[1999년]] 대구 개막전에서 고교야구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시구를 했고,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1년 후배 [[이정호(1982)|이정호]]와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고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잠재성을 높이 평가한 배영수를 1차 지명했으며 LG 트윈스가 그를 2차 1순위로 지명했다.[* 장준관은 고등학교 내내 좋은 기량을 선보였고 최정상권 투수로 활약했지만 고3 때 계속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을 한 점, 계약금을 올릴 목적으로 미국행을 추진한 점, 배영수의 딱 벌어진 어깨, 면담 시 보여줬던 배영수의 강한 의지와 정신력 등을 높게 평가해 배영수로 선회했다고 한다. 프로야구 스카우터들은 완성형과 소재형 선수를 놓고 고민하는 데 제구력은 형편없지만 구속이 좋은 원석이고 그런 원석을 발굴하는 건 스카우터, 원석을 갈고 닦는 건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결과적으로 스카우트의 판단이 옳았던 셈. [[마쓰자카 다이스케]]나 [[류현진]]처럼 프로야구에 데뷔해 당장 1군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완성형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북일고에서 에이스 놀이하던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가 폭망한 게 그 예다. ] 계약금도 2억 8천만 원으로 배영수보다 3천만 원을 더 받았다. 하지만 첫 해부터 1군 20경기 2승 평균자책점 5.14로 부진하면서 이후로는 1군에 올라와도 계투로나마 간간히 등판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2007년]] 1군에서 겨우 3경기 등판한 게 1군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 오버핸드에서 사이드암으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별 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2008년]] 6월에 [[신윤호(1975)|신윤호]], [[박석진]] 등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 은퇴 후 == 은퇴 후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2014년 경 [[LG 트윈스 갤러리]]에 본인인증을 했다. == 여담 == 당시 LG 트윈스의 상위픽 흑역사 선수 중 하나로 LG는 1996년 [[이정길(야구)|이정길]], 1997년 [[김민기(야구)|김민기]], 1999년 [[김상태(야구)|김상태]], 2000년 [[최경환(야구)|최경환]], 장준관 2002년 [[김우석(1975)|김우석]], 김광희, 2004년 [[장진용]], 2005년 [[박병호]], [[정의윤]], 2006년 [[김기표(야구선수)|김기표]], [[신창호]] 2007년 [[김유선(야구선수)|김유선]], ~~2008년 [[이형종]][* 그나마 이형종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프로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등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차~2차 2라운드로 지명한 선수들을 보면 [[박용택]]이나 2009년 1차 지명 [[오지환]] 같이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망한 사례가 많다. 이 외에도 2012년 [[조윤준]], 2013년 [[강승호]], 2014년 [[임지섭]]등등 많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81년 출생]][[분류:2000년 데뷔]][[분류:2008년 은퇴]][[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MBC 청룡-LG 트윈스/은퇴, 이적]][[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