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자히 하와스}}}[br]زاهي حواس[br]Zahi Abass Hawass'''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guardians.net/photo007_sm.jpg|width=100%]]}}} || ||<|2> '''출생''' ||[[1947년]] [[5월 28일]]|| ||[[이집트 왕국]] [[다미에타]]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이집트)]|| || '''학력''' ||[[카이로 대학교]][br][[알렉산드리아 대학교]][br][[펜실베이니아 대학교]] || || '''직업''' ||[[고고학자]] || [목차] == 개요 == 자히 하와스는 [[이집트]]의 [[고고학|고고학자]]로, [[고대 이집트]] 연구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 생애 == 1947년에 [[이집트]]의 [[다미에타]]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변호사]]를 지망했으나, [[알렉산드리아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고대 그리스|그리스]] [[고대 로마|로마]] [[고고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카이로 대학교]]에서 이집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http://www.drhawass.com/wp/bio/|#]]]. 이후에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유학하여 그곳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에 [[헤르모폴리스]] 발굴 작업에 참여했고, 1970년에서 1974년까지는 [[타라나]]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1969년에는 [[아비도스 사원]][* [[아비도스 사원의 헬리콥터]]라는 희대의 오해와 관련된 곳이다.]의 발굴 작업에, 1972년에서 1974년까지는 [[아부심벨 대신전]]에 대한 [[고고학]] 조사에 참가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에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관리자로도 일했다. 2000년대에는 [[카이로 박물관]]의 관장으로 일했고, 2002년과 2009년에 유물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1년에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하에서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나 [[2011 이집트 혁명]]으로 인해 실각했으며, 이때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많은 수의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다. == 업적 == [[고대 이집트]] 전문가이자 유물 수호자로도 불리며, 때문에 [[이집트]] 관련 고고학계와 여론에서는 인기가 높다. 그럴 만한 게 2000년대에 와서,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도난당한 파라오시대 고분벽화 5점을 돌려받았으며. [[영국]]의 [[런던 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던 석기시대 유물 등 2만 5천 점, [[미국]]이 보유한 3000년 된 목관 등 [[유럽]]과 미국에게 3만 점이 넘는 이집트 고대 유물을 되찾아오는 데 큰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반유대주의자]][*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중동전쟁]]을 벌였던 탓에 [[반유대주의]]가 국민감정마냥 퍼져 있다. 그는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배를 받고 그걸 빌미로 학살을 벌이자면, 세상에 그 정당성으로 무수한 나라가 과거 역사로 지배당해야 한다면서 그들의 역사는 더럽다고 혐오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문화재를 훔치는 건 [[나치]] 같은 놈들이라고 욕한 인터뷰를 한 걸 보면, 그도 나치는 혐오하는 듯하다.]이며 언플도 자주하는 등 정치적인 행동으로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래 봬도 [[고고학|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자타공인 최고의 [[고대 이집트]]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다[* 사실 학자가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선에서는 용인되는 부분인게, 이렇게해서 연구비를 따내거나 연구 과정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도를 확보함으로서, 향후의 연구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의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보이저(탐사선)|보이저 계획]]의 총책임자였을 당시에 '''"국민들의 혈세로 만든 탐사선이니, 이런 정치쇼도 해서 보여주는 게 예의다."'''라며 [[창백한 푸른 점|지구가 있는 방향으로 사진을 촬영]]해서 대중들에게 공개한 바 있고, [[영국]]의 [[물리학|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언론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미리 흘리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것이 지나쳐서 [[서민(교수)|서민]]의 경우처럼 본업에서 크게 이탈한다던가, [[로버트 키호]]처럼 기득권층에 붙어서 [[곡학아세]]하는 경우 내지는, [[황우석]]처럼 [[연구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점이다. 적어도 자히 하와스는 [[고대 이집트]] 연구에 문화재 보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유도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만든, 그의 [[네페르티티]]의 [[미라]]를 찾는 연구 과정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네페르티티 본인이거나, 그 친족일 가능성이 유력한 미라를 찾는데 성공한 모습이 나왔는데, 이 와중에 그는 각 미라의 안치 방식과 관의 형태 등을 보고 네페르티티의 생존 시기와 상관없는 미라들을 정확하게 판별해내는 위엄 넘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 기타 == 하와스는 [[고대 이집트]] 유물의 출입과 유적지 발굴을 허가하는 권한을 가져서, 국내외 관계자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유물과 유적지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작업하는 외국의 [[고고학자]]들은 발굴 결과를 공개하기 전에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추방당한다. 여하튼 문화재에 대한 애착은 엄청나서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몇몇 이집트 문화재가 도난당하자, 그야말로 분노하여 비난 인터뷰를 하고 도난 방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초고대문명설]]을 아주 싫어해서 [[사기꾼|관련 연구자]]들한테는 연구 허가도 내어주지 않는다. 이는 제대로 된 [[고고학자]]의 입장에서는 고대인들의 과학기술을 근거없이 까내리는 [[낭설]]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분류:1947년 출생]][[분류:이집트의 고고학자]][[분류:이집트학자]][[분류:카이로 대학교 출신]][[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