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1년/사건사고]][[분류:1912년/사건사고]][[분류:이탈리아-리비아 관계]][[분류:튀르키예-리비아 관계]][[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오스만 제국의 역사]][[분류:리비아의 역사]][[분류:아프리카의 전쟁]] [include(틀:이탈리아의 대외전쟁)] [include(틀:오스만 제국의 대외전쟁)] [목차] == 개요 == {{{+1 Italo-Turkish War}}} [[1911년]] [[9월 29일]]부터 [[1912년]] [[10월 18일]]까지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었던 [[페잔]]과 [[트리폴리타니아]] 일대([[오스만령 트리폴리타니아]])를 두고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 배경 ==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은 무능한 술탄들의 연이은 즉위로 쇠약해져 망국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미 북아프리카와 [[이집트]], [[키프로스]]를 상실하였고, 발칸 국가들은 사실상의 독립 상태에 있었다.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의 패배로 한동안 혼란에 빠졌던 [[이탈리아 왕국]]은 국내 혼란을 잠재우고 팽창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령 리비아를 노리게 된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재를 통해 리비아를 차지하려 했으나 오스만 제국이 거절하자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 진행과 결과 == [Youtube(n8VAGVdu-Qs)] 이탈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해안에 쉽게 상륙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오스만 제국군의 연이은 저항에 막혀 내륙 지역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교착 상태가 계속되어 전쟁이 1년째 지속되었지만 이탈리아가 전쟁 중에 획득한 지역은 몇 개의 해안 지대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당시 이탈리아군의 병력이 오스만군의 2배였다는걸 생각해보면...]] 사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으나 졌단 점을 고려해볼 시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중 발칸전쟁이 발발하지만 않았다면 이탈리아의 패배로 귀결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리 당시 오스만이 유럽의 환자로 골골댔어도 에티오피아보단 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 등 중요 강대국들의 비호를 받았던 에티오피아와 달리 오스만 제국은 강대국들이 뜯어먹기에 바빠서 비호는 커녕 이들이 지원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의 동맹국이자 나름 우방국에 속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전통적으로 오스만 제국과 적대관계였기 때문에 리비아가 뜯어먹히는걸 방관했으며 제일 사이가 괜찮은(정확히는 이해관계가 겹치지 않아서 오스만 제국과의 관계를 잘할수 밖에 없는) 오스트리아까지 방관한 상황에서 혼자 목소리를 내도 별 수 없기에 그대로 리비아를 넘어가게 내버려두었다. 이탈리아 왕국은 이 전쟁을 끝내기위해 [[도데카니사 제도]]를 점령하는걸로 계획을 바꾸었고 당시 [[발칸 전쟁]] 중이었던 오스만 제국은 어쩔 수 없이 리비아 전체를 이탈리아에 할양하기로 결정한다. 원래 협정에서는 [[도데카니사 제도]]를 오스만 제국한테 반환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져버린 탓에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쭉 접수하게 된다. == 매체에서 == [[하츠오브아이언4]]의 [[제1차 세계 대전|The Great War]] Redux 모드에서는 [[이탈리아 왕국]]이 중점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찍어 이 전쟁을 시작한다. 오스만 제국으로 플레이할 경우, 중점 채택과 동시에 리비아의 도시들이 이탈리아에 점령된 상태로 시작하는데, 미리 주변 지역에 사단들을 배치해두었다가 역으로 포위하면 매우 쉽게 이길 수 있다. 만일 진다면 도데카니사 제도가 할양되어 협상국과 싸울 때 매우 골치아파지니 주의해야 한다. 반면 이탈리아 왕국으로 플레이할 때에는 해군을 풀어 제해권을 잡고 이집트 태수국과 오스만령 리비아의 국경에 사단을 상륙시킨다. 그 후 오스만 사단을 포위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 관련 문서 == * [[이탈리아령 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