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쵸소카베 가문 가신]][[분류:센고쿠 시대]][[분류:농부]][[분류:병과/고대~근세기]] [목차] == 개요 == 一領具足, 일령구족 일본 [[센고쿠 시대]]에 [[시코쿠]]의 [[쵸소카베]] 가문이 활용하던 반농반병 정책을 뜻한다. == 상세 == 이들은 매우 작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농민들로 평화 시에는 농민으로써 농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전시에는 [[다이묘]]의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항상 논밭 옆에 비치해놓는 갑옷과 무기, 병량 등을 챙겨 모이는 반농반무사들이다. 농사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신체가 건강한 이들이 많고, 또 협동심이 높기 때문에 군인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 특성상 농번기의 동원은 어렵고 전쟁이 길어질 경우 불리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농지에서 멀어지는 장거리 원정에 쓸 수 없다는 결점도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일반적인 '[[중세]]시대 [[유럽]]'의 반농반병과 별 다를바 없어보이고, 이런 반농반병의 결점을 타파하려는 [[오다 노부나가]] 등을 시작으로 유행한 병농분리책에 역행하는 쵸소카베 영지만 시행했던 구닥다리 정책이긴 했지만, 모토치카의 이치료구소쿠는 이들의 대우를 확실히 해서 대표자를 뽑아 격이 낮을지언정 자신의 가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아주었고, 회의를 할 때는 군인들의 의견도 함께 들어주었다. 아와 공략 당시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런 대우에 '이치료구소쿠'들의 충성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쵸소카베 쿠니치카]]가 고안하여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시코쿠]] 통일 전쟁에서 맹활약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의 패배로 [[쵸소카베 모리치카]]가 [[가이에키]]를 당하자, 쵸소카베에 충성하던 이들은 반발해 우라도 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모리치카 대신 토사를 지배하게된 [[야마우치 카즈토요]]에 의해 진압되었고 카즈토요는 이들을 학살하는 등 잔인하게 숙청했다. 이들은 이후 야마우치 가문의 하급 무사로 흡수되었다. == 평가 == 이치료구소쿠들을 수식하는 말은 '''생사조차 신경쓰지 않는 들 무사'''.[* 에도 시대의 소설 <토사모노가타리>의 표현이다. 원문은 死生知らずの野武士なり] 이치료구소쿠들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말이자 그들을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이들은 쵸소카베 가문 시코쿠 통일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의 트렌드였던 [[오다 노부나가]] 등의 병농분리에는 부합하지 않아 구시대적인 군대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 논란 == 이치료구소쿠는 당대의 사료나 쵸소카베 가문의 문서에서의 언급이 거의 없고, 주로 에도 시대 소설이나 가계도 등의 사료에서 언급이 되고 있다. 또한 쵸소카베 가문만이 운용하던 독창적인 제도였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다. [[http://naver.me/5wfBqUfU|관련 글 1]] [* 카페 게시글이라 로그인이 필요하다.] [[http://naver.me/xFVfudcs|관련 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