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신 타이거스 1라운드 지명선수)] ||<-2>
[[파일:한신 岩田 2020.jpg]] || ||<-2> {{{#ffffff '''이와타 미노루'''[br]'''(岩田 稔)'''}}} || || '''{{{#ffffff 생년월일}}}''' || 1983년 10월 31일 || || '''{{{#ffffff 출신지}}}''' || [[오사카부]] 모리구치시 || || '''{{{#ffffff 국적}}}''' || [[일본|[[파일:일본 국기.svg|width=26]]]] [[일본]] || || '''{{{#ffffff 학력}}}''' || 오사카 토인 고교[br]간사이 대학 || || '''{{{#ffffff 신체}}}''' || 179 cm / 95 kg || || '''{{{#ffffff 포지션}}}''' || 투수 || || '''{{{#ffffff 투타}}}''' || [[좌투좌타]] || || '''{{{#ffffff 입단}}}''' || 2005 희망입단 한신 || || '''{{{#ffffff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 (2006~2021) || || '''{{{#ffffff 프런트}}}''' || [[한신 타이거스]] 커뮤니티 앰버서더 (2022~) || || '''{{{#ffffff 등장곡}}}''' || ベリーグッドマン - ベリーグッド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T-Minoru-Iwata20110310.jpg]] [목차] == 개요 == 전 [[한신 타이거스]] 소속의 좌완 선발 [[투수]]. == 약력 == === 프로 입단 전 === 오사카 부 모리구치 시 출신으로 토인고교 시절부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 고교 동기로는 [[나카무라 다케야]]가, 1년 후배로는 [[니시오카 츠요시]]가 있었다. 그러나, 고교 2학년 겨울 때 [[1형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1형 당뇨병]]인데 자가면역질환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희귀한 케이스이다. 즉 그 몇명 없다는 1B형 당뇨병으로 통상의 [[1형 당뇨병]] 환자는 대부분이 자가면역질환으로 인한 1A형 당뇨병이다.] 3학년 때도 허리 문제로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에 얼굴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결국 지명을 받지 못한 그는[* 원래는 고졸로 사회인야구(실업야구) 팀에 들어가려 했으나 1형 당뇨병 때문에 입사 내정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으로 돌린 것.] 간사이 대학으로 들어가 야구를 계속했다. 대학에서도 부상으로 대학 통산 성적 6승 10패에 그쳤지만, 그래도 151km에 달하는 속구와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커브, 커터 등을 눈여겨 본 [[한신 타이거스]]가 2005년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했다. === 프로 입단 이후 === 입단 당시 이와타는 한신 레전드이자 영구결번 11번인 [[무라야마 미노루]][* 이와타의 대학교-프로야구팀 직계 선배다.]보다 열 배 더 잘하자는 의미에서 등번호를 21로 정했다고 한다.[* 이와타 이전에 이 등번호를 달았던 선수로 90년대 초중반 한신의 준주전 포수 및 외야수 [[세키카와 코이치]]가 있다. 그러나 세키카와는 포수로서는 영 못했고, 외야수 전환 후 포텐이 터지려던 찰나 [[주니치 드래곤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쿠지 테루요시]]와 같이 주니치로 보내졌으며, 그 대신 건너온 선수는 [[야노 아키히로]]와 [[타이호 야스아키]].] 그러나 2006, 2007년은 그냥 그저 그런 2군 투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8년엔 처음으로 풀시즌을 보내며 27경기 27선발 10승 10패 3.28의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2008년의 성적을 바탕으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에 뽑히는 영광을 안기도 했으나, 막상 어깨 부상이 대회 끝나고 발견되며 2009년은 16경기 등판에 그쳤다. 2010년엔 시즌 개막 전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어 2010 시즌을 통으로 날리게 되었다. 2010년에 그의 등판 기록이라고는 [[미야자키]] 피닉스 리그 등판이 전부였다. 2011년엔 부상 없이 1군에 올라와 25경기를 선발로 뛰었고 방어율도 2.29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막상 통일구 영향으로 팀 타선이 심각하게 물을 먹어 [[윤석민상|9승 13패]]에 그치고 말았다. 2012년에도 8승 14패를 기록. 그러나 12시즌 방어율은 전년도에 비해 1.5배 이상이 올라갔다. 13년엔 제구 불안이 심해져 2군에 오래 있어야 했다. 방어율도 거의 5점대에 근접하는 등 영 좋지 못한 모습이었다. 여튼 2014년엔 22경기 등판 9승 8패 방어율 2.54(리그2위)를 기록했다. 2014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2차전에서도 선발로 나가 7이닝 2실점에 타석에서도 상대 선발 [[사와무라 히로카즈]]를 흔들어 놓는 볼넷을 얻어내는 등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시즌 이후엔 메이저리그 올스타와의 경기에 일본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도 선발로 나서고 있으며 102.2이닝을 던졌지만 피안타가 이닝보다 많아(105개) 방어율이 3.24로 비교적 높다. 승패마진도 5승 4패. 전반기 끝난 시점까지 총 16경기를 선발로 뛰었다. 같은 좌완이자 팀 선배인 [[노우미 아츠시]] 보다는 비교적 나은 모습. 2015년 최종 성적은 8승 10패, 투구이닝 170 1/3, 119 탈삼진, 방어율 3.22로 준수했다. 2016년에는 그러나 제구 불안으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3패로 시즌을 마쳤다. 2017년에는 10경기(모두 선발 등판)에서 3승 2패를 기록했다. 2020년은 노쇠화 등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9월 21일 첫 등판을 땜빵선발으로 등판하였다. 당일 5이닝 3실점을 하며 좋지못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노디시전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2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다가 선수단내 코로나19 집단감염 등으로 선발진에 구멍이 생기자 10월 1일 승격 선발로 던지게 되었다. 6.2이닝동안 던졌으며 많은 삼진을 솎아내는 등 호투를 하며 무실점으로 주니치 타선을 틀어막았다. 6회말 주니치의 폭투로 인한 선취점으로 1:0상황에서 승리투수요건을 얻으면서 내려갔고 이후 에드워즈와 [[후지나미 신타로|후지나미]], 수아레즈의 호투와 [[우메노 류타로|우메노]]의 홈런으로 시즌 첫승을 달성했다. 2021년 1월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코로나에 매우 취약한 1형 당뇨 환자라는 점이 걱정거리. 그리고 10월 1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21년 10월 26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고시엔 시즌 최종전에 앞서 은퇴식을 열었으나, 막상 이 날 한신은 주니치에 4-0으로 패한 걸로도 모자라 리그 우승까지 실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가 시즌 마지막 경기던 한신은 이 경기를 무조건 잡은 이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잔여 3경기를 모두 패해야만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야쿠르트는 요코하마를 이겼고, 한신은 주니치에 [[고춧가루]]를 얻어맞으며 우승에 실패하였다.]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한 이후로는 [[한신 타이거스]]의 [[https://hanshintigers.jp/news/topics/info_7808.html|커뮤니티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 연도별 성적 == ||<-11> {{{#ffffff,#191919 역대기록}}} || || {{{#ffffff 년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이브}}}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사사구}}} || {{{#ffffff 탈삼진}}} || || 2006 ||<|14> [[한신 타이거스]] || 1 || 3 || 0 || 1 || 0 || 9.00 || 2 || 4 || 1 || || 2007 || 4 || 13⅓ || 0 || 1 || 0 || 5.40 || 15 || 10 || 6 || || 2008 || 27 || 159⅓ || 10 || 10 || 0 || 3.28 || 168 || 61 || 101 || || 2009 || 16 || 110⅔ || 7 || 5 || 0 || 2.68 || 99 || 35 || 103 || || 2010 ||<-9> 1군 기록 없음 || || 2011 || 25 || 169 || 9 || 13 || 0 || 2.29 || 121 || 53 || 133 || || 2012 || 25 || 153⅓ || 8 || [[윤석민상|{{{#red,#ff0000 '''14'''}}}]][br](1위) || 0 || 3.52 || 157 || 43 || 107 || || 2013 || 9 || 43⅔ || 2 || 5 || 0 || 4.95 || 43 || 17 || 25 || || 2014 || 22 || 148⅔ || 9 || 8 || 0 || 2.54 || 123 || 45 || 116 || || 2015 || 27 || 170⅓ || 8 || 10 || 0 || 3.22 || 168 || 54 || 119 || || 2016 || 6 || 20⅓ || 0 || 3 || 0 || 8.85 || 36 || 12 || 14 || || 2017 || 10 || 53 || 3 || 2 || 0 || 4.25 || 55 || 24 || 39 || || 2018 || 6 || 30⅔ || 0 || 4 || 0 || 3.23 || 25 || 12 || 29 || || 2019 || 14 || 77⅔ || 3 || 4 || 0 || 4.52 || 90 || 24 || 43 || ||<-2> '''[[NPB]] 통산'''[br](13시즌) || 192 || 1153 || 59 || 80 || 0 || 3.33 || 1102 || 394 || 836 || == 기타 == * 앞서도 얘기했듯이, [[1형 당뇨병]]이 있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한다. 것도 '''평생동안 하루에 네 번이나'''[* 이를 당뇨 치료에서는 4회요법이라고 칭한다. 기저인슐린 1회와 끼니마다 3끼씩 3회 대개 심각한 2형 [[당뇨병]] 환자, 혹은 [[1형 당뇨병]]환자가 받는 요법이다. 2형 당뇨병 환자는 증세가 호전되면 점차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끊게 하지만, 1형 당뇨병 환자는 주사를 끊으면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당뇨병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취지의 인터뷰도 한 적이 있었다. [[1형 당뇨병]]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 흔히 알려진 2형 당뇨병과는 달리 1형 당뇨병은 췌장 자체가 아예 파괴되어 기능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몸에서 자체적으로 인슐린을 전혀 만들어 낼 수 없는데다 췌장이식으로도 '''호전'''을 장담할 수 없는[* 치료가 아니라 호전이다. 이와타 미노루는 1B형 당뇨병이라 해당사항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1A형 당뇨병은 자가면역질환이기 때문에 췌장이 이식되는 그 순간부터 파괴가 시작되고, 면역억제제를 동원해서 최대한 췌장의 파괴를 막고 최소한의 인슐린 대사를 만들어 내는게 목적이다. 췌장이식수술을 받아도 위험이 좀 줄어들 뿐이지 여전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며, [[1형 당뇨병]]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췌장이식 자체도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거의 시술하지 않는다.] 치료가능성 자체가 0%에 수렴하는 불치병인데다 운동을 안하면 고혈당 합병증, 운동을 많이하면 저혈당 쇼크가 오는 진퇴양난의 질병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매 끼니마다 그람수까지 재어 만든 철저한 식단관리와 10분 단위로 혈당을 체크하며 운동을 하는 자기관리가 인간승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여담으로 롯데의 경우는 1군 라커룸에서 롯데산 간식(아이스크림 포함)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타는 1형 당뇨라서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해도 한 입 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롯데에 입단했으면 이것이 전혀 메리트가 아니었다(...). 참고로 2군에서는 이것마저도 배급제다.] * 13 시즌이 끝나고 보니 구단에서 본인 동의도 없이 [[오승환|돌부처]]에게 자기 번호를 넘기려 하는 것까지 봐야 했다. 물론 [[오승환|돌부처]]가 이와타 본인에게 실례라며 거절했고 때마침 후지카와 큐지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비어있는 백넘버인 22번을 달게 되었다. 결국 돌부처 본인도 후지카와 큐지처럼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자신이 달던 등번호 21은 2021년 은퇴 이후 [[아키야마 타쿠미]][* 본래 아키야마는 프로 초반에는 27을, 2017년 이후 46을 달았다. 27은 2021년부터 [[이토 마사시]]가 가져갔다.]가 달게 되었다. * 1형 당뇨병이지만 좋아하는 [[라멘]]이나 [[과자]]는 종종 먹는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이와타가 운동량이 많으니 가능한 것.[* 물론 전반적인 관리는 1형이 2형보다 훨씬 빡세지만 이와타의 경우는 운동량이 많다 보니 먹는 것도 많고, 1형 당뇨의 경우는 주사를 많이 맞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2형 당뇨보다 더 먹고 덜 운동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실제 1형 당뇨 환자들이 얘기하는 거에 따르면 먹는 양이 늘어났을 때 얼마나 더 주사를 놓아야 할 지를 눈대중으로 측정하는 게 힘들다 보니 실제로는 평소보다 더 탄수화물이나 당류를 먹으면 주사를 더 놓아도 고혈당이 자주 온다고 하기 때문에 똑같이 관리한다고 하면 2형 당뇨 환자들이 좀 더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는 것은 여전하다. 애초에 주사 맞는만큼 혈당이 딱딱 오차없이 조절된다면 1형 당뇨 환자들이 이렇게까지 고생할 리도 없고 2형 당뇨 환자들도 관리 안하고 주사를 놓고 사는 사람도 많었을 테니까...(식단 관리 및 운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 2형 당뇨인데도 매 끼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는 사람도 좀 있다. 이 경우 췌장 자체는 살아있기 때문에 1형 당뇨 환자에 비해서 혈당 관리가 더 잘 된다고는 한다.)] * 2019년 6월 22일 코시엔 구장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고교 동기생 [[나카무라 타케야]]에게 홈런을 맞았다. 1루로 뛰어가는 나카무라를 향해 걸어가면서 무언가 한 마디 한 건 덤. * 나카무라 타케야가 프로 통산 2,000삼진을 달성하자 나카무라의 고교 시절에 대해 술회했다. 고교 시절 나카무라는 '타격, 수비, 도루에 모두 능숙했다.''공격하지 않는 대포였고 컨택 능력이 좋으면서 삼진당하는 일이 드물었던 타자였다. 나카무라가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카무라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삼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타구의 비거리를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흔들림없는 정말 무서운 타자였고 거의 항상 자신의 타이밍에 스윙을 했으며 조금이라도 실투가 들어가면 홈런을 맞았다. 2,000삼진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이 숫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오랜 기간동안 홈런을 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인터뷰했다. * 고교 1년 후배인 [[니시오카 츠요시]]는 2021년 10월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이와타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와타 선배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을 보았고 이와타만이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1형 당뇨병에 걸린 이와타의 투병을 니시오카가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였다. * 이와타는 2021년 10월 26일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 및 은퇴식에 이와타, 나카무라, 니시오카 등을 지도한 니시타니 코이치 오사카토인고교 감독을 초대했다. 니시타니는 2001년 1월 새해 첫 연습을 마친뒤 모든 선수들을 모아놓고 3학년 승급을 앞둔 에이스 투수 이와타를 질책했다. 이와타가 동료 선수들에게 오래달리기에서 뒤쳐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던 감독은 "에이스가 이런 연습으로는 다른 팀을 이길 수 없다"고 꾸짖었다. 감독은 "이와타는 커브는 좋았지만 제구력이 좋지 않았고 내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그가 팀의 에이스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타는 스승의 가르침에 응답하듯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와타는 감기 같은 증상을 계속 겪고 몸이 좋지 않았다. 체중이 급격히 줄고 수분을 보충해도 바로 갈증을 느꼈다. 니시타니 감독은 "병에 걸리는 것도 자기 관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병원에 문의하자 "아마도 제1형 당뇨병일 것이고 지금 당장 큰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것 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성인의 평균 혈당 수치는 약 100인데 이와타는 900에 가깝게 측정됐으며 일반인이었으면 의식 장애를 일으킬 수준이었지만 매일 체력 단련을 하고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고 이와타는 술회한다. 니시타니 감독은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제1형 당뇨병이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치료가 필요한지 파악했고 "괜찮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고 그렇게 심각한 병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당뇨병의 완전한 치료를 위한 의료기술은 없었고, 남은 생애 동안 계속 주사를 맞아야 했다. 니시타니의 격려에 힘입어 이와타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기로 결심했고, 퇴원 후 매일 운동에 전념했다. 고교 졸업반 시절 사회인 야구팀 입단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제1형 당뇨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팀에서 계약을 철회하자 분노했다. 니시타니는 본인의 모교인 간사이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하였으나 이미 오사카 토인고교에서 스포츠 특기생으로 입학하기로 한 야구부원 1명이 있었고 원칙적으로 같은 고교에서 특기생 2명을 받기는 어려웠다. 결국 일반 학생에 할당된 추천서를 한 개 빼앗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며 감독은 학년 교사들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간청하여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와타의 학업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가능했다. 감독은 이와타가 저혈당에 빠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연습 프로그램 내용 구성, 연습 시간 조절, 식사 시간 조정 등에 특히 신경썼고 냉장고와 콜라를 제공했다. 감독은 '이와타의 사례는 언제든지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르쳐 주었지만 배우고 계획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고 회상했다. [[분류:1983년 출생]][[분류:모리구치시 출신 인물]][[분류:좌투좌타]][[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칸사이대학 출신]][[분류:좌완 투수]][[분류:한신 타이거스/은퇴, 이적]][[분류:2006년 데뷔]][[분류:2021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