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이승엽)] [include(틀:이승엽)] [목차] [clearfix] == 개요 == [include(틀:이승엽의 선수 경력)] [[이승엽]]의 커리어는 크게 [[대한민국]] 시절과 [[일본]] 시절로 구분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한국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상 최고의 홈런타자, 반면 일본에서는 3시즌[* 한 해는 당연히 2006년이고, 나머지는 시즌 30홈런을 치고 '''일본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2005년과 마지막으로 30홈런을 쳤던 2007년. 다만 같은 30홈런이라도 플래툰 출장 속에 투수친화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며 30홈런을 기록하고 일본시리즈에서도 대활약한 2005년이 더 고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2007년은 성적 하락의 분기점이 되는 해다.]을 빼고 명성과 기대보다는 떨어졌다고 할수있다.[* 일본생활 8년동안 그나마 좋았다고 할 시즌은 딱 3시즌밖에 없고 마지막 3~4년은 정말 망했다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8년 통산성적은 타율 .257, 연평균 홈런 약 20개(19.875), 통산 OPS .818로 의외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이는 2006년에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로 워낙 잘했던 것도 있었고, 부진하던 시기에는 2군에 많이 내려가서 1군기록을 누적하면 많이 완화되기 때문. 체감적으로는 한국팬들은 안 좋았던 시기를, 일본팬들은 좋았던 시기를 더 많이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 아마추어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chosun.com/200504190129_00.jpg|width=100%]]}}}||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착실히 실력을 쌓아오다 1992년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승엽은 1993년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12년만의 [[청룡기]]를 모교에 바치는데 일조했다.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한 것은 그의 활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다만 고3때는 팔꿈치 부상[* 이 부상이 군 면제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고교 때부터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었으며 실제로 프로 입단 이후 초창기에도 이 때 입은 팔꿈치 부상으로 상당히 고생을 했다. 과거 MBC에서 방송했던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도 언급된 내용.]으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 프로 경력 == ===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1기(1995~2003) === ||<#182132> [[KBO 골든글러브|[[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height=40]]]] [br] [[틀:KBO 골든글러브/1루수|'''{{{#b58a5d KBO 골든글러브}}} {{{#ffffff 1루수 부문 수상자 (1997~2003)}}}''']] || 이승엽이 있던 시절 삼성 라이온즈는 굉장히 [[타고투저]]의 경향이 심했다. 마운드가 약해서, 2001년까지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이승엽의 한국프로야구 1기 성적은 그야말로 어마무시 한데 1기 통산 OPS가 '''1.0이 넘는다.''' 그것도 [[서비스 타임]]인 95, 96년 성적을 합쳐서다. 남들이 1시즌에 OPS 1.0찍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승엽은 평균 성적이 OPS 10할 이상. 참고로 7년 연속 30홈런에 1기 9년 동안의 평균 홈런은 36개. ==== 1995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468/2015/06/03/l_20150604010001992000117225_99_20150603131602.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468/2015/06/03/l_2015060401000199200011721_99_20150603131602.jpg|width=100%]]}}}|| || '''1995년 신인 시절, 삼성 입단식에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log.samsung.co.kr/cfile23.uf.25479A3C515247A71EEDCE.jpg|width=100%]]}}}|| || '''1995년 데뷔 초기의 앳된 모습''' || 처음에는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가계약되어 있었으나, [[수능]]에서 '''총점 40점 이하'''를 기록[* 이 당시 수능 총점은 200점.]하며 대학 진학 자격을 상실하여 자연스럽게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된다. 이 당시 교육부의 규정에 따르면 체육특기자라 하더라도 수능시험 총점이 40점을 넘지 못하면 대학 입학이 불가능했다. 프로 입단을 위해 고의로 시험을 망친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본인 입으로 사실임을 밝혔다. 정확히는 '''37.5점'''을 맞았다고.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는데 선배들이 술을 엄청나게 권하는 바람에 본인이 생각한 대학생활은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1교시는 다 찍고 2교시부터 당구장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이 증언은 한양대 입학 동기가 될 뻔한 [[김건덕]]에게서도 나왔던 말이다. 둘 다 한양대 입학을 위해서 합숙소에 잡혀 있었는데, 여기서 일부러 못보기로 의기투합해서 김건덕은 37점, 이승엽은 37.5점이 나왔는데 실업계인 경남상고를 나온 김건덕은 수능 점수랑 상관이 없어서 결국 대학을 가야했다. 이후 [[김건덕]]은 어깨부상으로 결국 프로지명을 받지 못했다.[* 김건덕은 정말 비운의 선수였는데, 고교시절의 혹사로 인해 한양대 입학 후 1년 동안은 투수로 등판하지 않기로 했으나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시 공을 던지면서 부상이 악화, 투수로는 더 뛰지 못하고 타자로 전향하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다. 그 후 삼성에서 연습생 신분으로 데려가서 경산 볼파크에서 훈련을 받던 도중 군입대 영장을 받아 군면제를 위해 체중을 늘리지만, 규정의 변화로 결국 현역으로 입대한다. 그 때 어려웠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산업체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당해 결국 프로 생활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추가로 부상으로 인해 산업체에서 일을 못하게 되면서 구청에서 추가로 공익근무를 해야 했다.) 그 후 야구배트를 파는 영업사원으로 있다가 춘천고, 부경고 코치를 거쳐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지내다가 2016년 11월 17일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교시절에는 이승엽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일이 안 풀려 비운의 선수로 남고 만 것이다.][* 김건덕의 대학행을 추진한건 그의 아버지였는데 이후 아들의 인생을 망쳤다며 한평생 자책하며 술만 마시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훗날 이 일화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가 대학로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경상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청룡기 대회에서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망한 투수여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할 때에도 좌완 투수로 입단했다. 좋은 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팀의 빈틈을 메꿔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등학교]] 시절의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척추분리증이 있는 선수이므로 이게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 이미 군 면제를 받았던 상태[[합법적 병역 브로커|였지만]][[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하지만 [[우용득]][* 이승엽뿐만 아니라 투수 유망주였던 [[이대호]]를 타자로 전향시킨 것도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의 작품이다. [[이대호]]도 어깨 부상이 있었다.] 감독과 [[박승호(야구)|박승호]] 타격코치는 이승엽에게 배팅 재능이 있음을 확인해[* 사실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던 청룡기 결승전에서는 결승홈런도 쳤었고, 1994년 세계청소년 대회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도 팔꿈치 부상으로 타자로만 활약해 홈런상과 득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돌연 타자로 전향시켜, 1년간 타자로 기용하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여기에 [[우용득]] 감독은 한 수 더 떠 전년도에 완전히 지명타자로 전향한 [[양준혁]]을 우익수로 이동시키고 검증도 안 된 고졸 신인을 1루수[* 타격에 비해 수비가 약했던 이동수가 1루수로 나올 때는 좌익수를 보기도 했다. 또는 [[양준혁]]이 좌익수를 서기도 했는데 1993년부터 주전 우익수로 복귀한 [[이종두]]가 어깨와 허리통증을 호소한 데다가 양준혁과 함께 또다른 1루수 요원에 속한 [[김성래]]는 1995년 시범경기 도중 장단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전년도에 1루수로 포지션을 바꾼 [[이만수]] 역시 당시에 노쇠 기미를 보여왔던 탓에 이승엽을 1루수로 전향시키기도 했으며 좌완투수가 선발에서 나올 당시에는 이만수가 1루수를 보기도 했다.][* 양준혁이 본인 유튜브에서 밝힌 일화로는 당시 양준혁이 외야로 전향 하면서 1루 자리가 비게 되었고, 당시 [[우용득]] 감독이 '''팀 사정이 좋지 않다. 1년만 타자를 해봐라 하다가 안되면 너가 원하는 투수를 하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말하게 되면서 타자로 전향을 하게 된거라고 일화를 언급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승엽도 잘 모를것 같다고 밝히기도 하였다.]로 박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nJshJXeT68, width=640, height=360)]}}}|| 대타로 데뷔전을 치른 이승엽은 LG 간판 [[김용수]]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때렸다. 1995년 데뷔 첫 시즌 타율 .285에 홈런 13개로 신인으로서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지만,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에게 밀려서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3062100074_0.jpg|width=100%]]}}}|| || '''1995년 5월 2일 광주 해태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치는 모습''' || ==== 1996 시즌 ==== 이듬해인 1996년 [[백인천]] 감독이 부임했는데, [[백인천]] 감독은 이승엽에게 외다리 타법을 전수해 주었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백인천]] 감독은 삼성에서 아주 큰 일을 해냈다고 할 수도 있다. “'''[[백인천]]이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야구로 먹고 사는 것의 8할은 이승엽 덕분이다.'''”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 나머지 2할은 82년 기록한 4할... ] 1996년 2년차 시즌은 조정기를 보냈는데 첫 3할 타율을 기록했지만 홈런은 9개로 되려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한국에서의 유일한 한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시즌이다.] 이 시즌엔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이만수]]와의 동시 기용을 위해 종종 좌익수로 나오기도 했다. 이만수가 지명타자, 이동수가 1루수를 보면 이승엽은 좌익수로 뛰는 식이었다. 가끔 이승엽이 1루를 보는 대신 이동수가 3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 1997 시즌 ==== 그러나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타에 눈을 떠 [[홈런]] 제조기로 명성을 높이며 대폭발했다. 126경기 전 경기를 출전해 .329의 타율과 32홈런 114타점으로 특 A급 타자의 바로미터인 3할 30홈런 100타점을 모두 훌쩍 넘겼다. 170안타를 쳐내 최다안타 1위에 올랐으며, 홈런과 타점 또한 모두 1위. 또한 역대 최연소 홈런왕이었다. 타율만 2위였는데 이것도 1위였으면 일찌감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뻔한 굉장한 시즌을 보냈다. 이 때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화려한 타선의 중심축에 서게 되었다. 1997년 5월에는 대구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5:27'''이라는 역사적인 스코어를 포함하여 무려 3연전에서 '''49점'''을 내 LG를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 여기서 나온 논란이 '''부정배트 논란'''. 참고로 이때까지 이승엽의 별명은 [[신해철]]이 이끈 밴드 [[넥스트(밴드)|N.EX.T]]의 노래인 '[[날아라 병아리]]'에서 나온 얄리 혹은 스나이퍼였다.[* 1995년 팬북에선 얄리로 소개됨] 참고로 이 스나이퍼라는 별명은 [[스포츠서울]]에서 공모를 통해 선정한 별명인데, 3할을 쳐내는 정교함과 필요할때 마다 나오는 클러치 능력 등으로 인해 붙여진 별명이라고 소개되었으며 한동안 이승엽의 별명으로 애용되었다. 하지만 후술할 활약으로 라이온킹이란 별명을 얻으면서 이 별명은 사실상 묻히게 되었고 이후 스나이퍼의 칭호는 [[장성호|이 분]]이 가져가게 된다. 장타 포텐이 터진 1997년 이후 이승엽은 명실상부한 [[KBO 리그|한국프로야구]]의 홈런왕 신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1997년부터 일본 이적 직전인 2003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홈런 30개 이상을 쳐냈다. 1998년, 2000년을 제외하고 다섯 번의 홈런왕을 차지했다. 특히 1997년에는 앞선 3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던''' 삼성을 일약 포스트시즌에 복귀시킨 주역이 되었고,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의 중심타자로 활약하게 된다. ==== 1998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468/2015/08/12/2015081201000681000045822_99_20150812063014.jpg|width=100%]]}}}|| || '''1998년 7월 27일 대구 LG전에서 홈런을 치며 당시 월간 최다홈런 신기록(13개)을 기록한 이승엽.''' || 지난해보다 더 발전된 장타력을 보이며 38개의 홈런과 2년 연속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으나 우즈에게 밀려 홈런왕 2연패에는 실패했다. 대신 장타율왕과 득점왕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당시 92년 장종훈의 41개를 뛰어넘는 홈런 신기록 수립까지 예상되었으나 [[타이론 우즈|우즈]]가 맹추격하였고 홈런왕 경쟁 끝에 결국 우즈가 홈런 42개를 때려내며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자연스레 홈런왕과 MVP도 우즈에게 돌아갔으나 정작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이 수상하며 논란이 되었다. 이 수상은 아직까지 역대 최악의 외국인 차별 사례로 꼽힌다. ==== 1999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승엽 & 타이론 우즈.jpg|width=100%]]}}}|| || '''1999년, 전년도 홈런 경쟁을 펼쳤던 [[타이론 우즈]]와 함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01/2003/09/21/kp1_2030921r0734.jpg|width=100%]]}}}|| || '''1999년 9월 30일 광주 해태전에서 54호 홈런을 친 모습''' || 지난해 홈런왕 자리를 우즈에게 내주며 절치부심했던 그는 1999년 54홈런으로 1998년 당시 두산 용병이었던 [[타이론 우즈]]의 42개, 토종타자로서 [[장종훈]]이 세웠던 41개보다 무려 열 개 이상 많은 공을 담장 너머로 날리면서 그의 주가는 폭등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홈런왕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 1999년 5월이 특히 뜨거웠는데, 한 경기 홈런 3개를 밥먹듯 쳐내면서 순식간에 5월 말 합계 20개 중반대 홈런숫자를 기록했고, 8월 초에 [[장종훈]]과 우즈의 기록을 깨 버렸다. 그 해 [[왕정치]]의 기록을 깨뜨리고 60개 이상 칠 것이라는 추측까지도 나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홈런 기록을 새로 써나가던 이 시즌, 대구구장은 '''외야가 먼저 매진이 되고 사람이 더 많이 들어갔으며 [[잠자리채]]가 쫘악 깔려있었다'''.[* 2003 시즌도 마찬가지] 특히 1999년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 홈 마지막 경기에서는 '''홈런성 타구'''가 한화의 용병 [[제이 데이비스]]에 의해 잡히자 팬들이 항의 차원에서 '''물병 등의 쓰레기를 투척'''했고 데이비스는 '''우산을 쓰고 외야에 서 있기도 했는데''', 하필 그 시점에 이미 홈런 54개를 친 상태여서 더했다.[* 이 해 삼성과 한화는 매직리그 1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대구 마지막 홈 경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최후반부 경기였다. 따라서 한화는 이승엽에게 홈런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삼성이 최종전에서 한화를 이기고 1경기차로 앞선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당시 아시아 홈런 최괴록이 55개였고 타이기록을 눈앞에 둔 마지막 경기여서 관중의 난동이 거셀 수 바에 없었다.] 결국 '99 이승엽은 출루율, 장타율, 홈런, 타점, 득점 5개 부분에서 1위를 달성해 총 '''5관왕'''으로 시즌을 끝마쳤다. 1999년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때는 홈런을 치며 활약했지만, 정작 자신의 동갑내기 [[임창용]]이 정규시즌 내내 너무 무리하게 등판한 결과 [[방화범(야구)|불을 지르면서]]... ==== 2000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portsmuseum.co.kr/leesy-1.jpg|width=100%]]}}}|| || '''2000년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홈런을 치고 난뒤.''' || 그러나 외다리 타법의 약점이 드러나자 2000 시즌에는 54개의 홈런에서 36개로 줄어들었고 타율도 전년도 .323에서 .293로 떨어지며 위기가 시작됐다. ==== 2001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4082801009_3.jpg|width=100%]]}}}|| || '''2001년 4월 6일 대구 한화전에서 자신의 윗대 홈런왕이던 [[장종훈]]의 통산 1000타점 기록을 축하해 주는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60110CNT00000388_M.jpg|width=100%]]}}}|| || '''2001년 6월 21일 최연소 200호 홈런을 기록한 모습''' || 전 시즌에 이어 외다리 타법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39개의 홈런을 기록했음에도 타율이 .276으로 더욱 떨어지며 위기가 계속됐다. 다만 OPS와 WAR은 오히려 전년도보다 올랐으며, wRC+는 전년도에 비해 2정도 하락했지만 그 하락한 성적도 [[펠릭스 호세]] - [[심재학]] - [[양준혁]]에 이은 4위였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김태균]]을 포함한다면 5위.] 물론 국내 최고의 타자에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타자가 되었으니 미래를 알지 못하는 당시로선 하락세라는 위기감을 갖기엔 충분했다.[* 시즌 중반 이승엽이 계속 부진하자 [[김응룡]] 감독이 이승엽을 6번타순으로 내리기도 하고,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에 이승엽 인기는 매우 높았기때문에 [[신윤호(1975)|신윤호]]를 상대로 1차투표에서 지고도 2차투표로 MVP를 수상한다. 당시 1차투표에는 신윤호가 우위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과반수가 투표를 안하면 1, 2위를 두고 재투표가 되는 규칙이 있어서 재투표했고 신윤호, 이승엽을 뽑지 않은 기자들이 죄다 이승엽에 투표해서 이승엽이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에 이승엽은 "이런 성적으로 MVP를 받아 부끄럽다."는 소감을 남겼을 정도로 이 시즌 이승엽의 MVP 수상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이후 타격폼 수정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 2002 시즌 ==== 2001년 전까지는 혼자서 홈런을 치던 타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다고 타자가 없던 것도 아닌게 1997년엔 [[양준혁]](30홈런), [[신동주(야구)|신동주]](21홈런)가 버티고있었고, 1998년에도 여전히 [[양준혁]]이 27홈런을 치면서 뒤를 받쳤다. 1999년, 2000년엔 [[찰스 스미스]](40홈런), [[김기태(1969)|김기태]] 등이 중심에서 버텼고. 그러다 2001년 [[마해영]]이 들어오고 2002년 [[양준혁]]이 친정팀으로 돌아오면서 공포의 '''[[이마양]] 트리오''' 타선이 구축되었다. 시즌 전 2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로 참여해 시범경기에도 출장했고, 11타수 3안타 2홈런[* 여담이지만 이 때 친 2개의 홈런 중 1개는 당시 [[애너하임 에인절스]] 소속 마이너리거이자 훗날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는 [[크리스 부첵]]을 상대로 기록했다.] 5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기고 귀국했다. 2002년 0.323의 타율로 정확성을 회복하면서 동시에 홈런 개수도 47개로 늘리며 홈런왕[* [[심정수]]와 홈런 46개로 공동홈런왕 수상이 유력했으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연장에 돌입 후 마지막 타석에서 47호 홈런을 쳐서 단독홈런왕을 차지했다.] 2연패에 성공했다. 또한 득점, 타점, 장타율 모두 1위에 오르며 '''4관왕'''에 올랐다. MVP까지 수상하며 '''2년 연속 MVP'''와 '''개인 4번째 MVP''' 수상에 성공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는 이승엽을 '''큰 무대에 강한 사나이'''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전년도 한국시리즈에서 375. 3홈런 7타점 WAR 0.56으로 맹활약했으나 두산 타선에 마운드가 무너지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6차전까지 '''20타수 2안타'''라는 극악의 타격 부진에 시달리던 이승엽이었지만 [[김응용]] 감독은 그를 믿고 계속 출전시키는 ~~그답지 않은~~뚝심을 보였고[* 이미 2000 시드니 올림픽때 그렇게 고집을 피워가며 절대로 빼지 않았다. 김경문의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실 어떤 감독이든 잠깐 못 한다고 홈런을 칠 수 있는 팀의 중심 타자를 갑자기 빼는 짓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결국 KS 6차전에서 이승엽은 LG의 [[마무리 투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을 무너뜨리는 '''동점 3점 홈런'''을 작렬시켜 우승으로 가는 발판을 놓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쓰리런.png|width=100%]]}}}|| || '''동점 쓰리런 홈런을 친 뒤 [[마해영]]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01/2002/11/10/kp1_2021110t0695.jpg|width=100%]]}}}|| || '''그 뒤에 나온 [[마해영]]이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경기를 끝낸 후, 그는 눈물을 보였다...''' || [[마해영]]의 회고에 따르면 동점 쓰리런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형 제발 끝내줘!'''"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마해영]]은 곧바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한국시리즈 역사상 길이 남을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정말로 시리즈를 끝냈다!!!]]''' ==== 2003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30822154657010000010100-001.jpg|width=100%]]}}}|| || '''2003년 홈런 라이벌 [[심정수]]와 함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승엽/삼성 라이온즈/2015.jpg|width=100%]]}}}|| ||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에서 [[김원형]]을 상대로 세계 최연소 300홈런[* 종전의 기록은 ~~약쟁이~~[[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만 27세 249일]을 기록하고 들어오는 모습.''' 그리고 이승엽은 같은 경기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301호 홈런을 쳐낸다. || 2003년에는 전년의 상승세를 이어받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3년에는 0.301의 타율에 '''당시 아시아 신기록이자 현재 한국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인 56홈런, 한 시즌 최다타점인 144타점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 '''[[심정수]]와 펼쳐진 불타는 홈런왕 라이벌리는 2002년의 월드컵 열풍과 맞물려 침체되었던 한국프로야구의 흥행요소였으며, 이 둘은 2년 연속(2002~2003)으로 3할-40홈런-100타점을 찍었다.''' 그러나 심정수는 세부 스탯에서 앞섬에도 홈런왕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콩라인]]이 되었고 이승엽은 홈런왕과 MVP 2연패에 성공함으로서 승자로 기록될 수 있었다.[* 다만 현재에는 2003년 한 시즌만큼은 심정수의 우위라고 보는 팬들이 대다수이다. 2003년 심정수는 2015년 에릭 테임즈와 함께 21세기 최고의 타격 시즌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것도 결과론인 것이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 격차는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10개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승엽이 56호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홈런도 거의 다 따라잡히고 세부스탯도 더 나빠지게 된 것이다.] 이 시즌에는 홈런 신기록에 임박하자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해 늘 관중석이 텅텅 비었던 최하위 롯데의 사직구장도 예외 없이 포함해서, 삼성의 원정경기에서도 관중들이 죄다 잠자리채를 들고 우측 외야부터 먼저 몰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4dF1TdQil8, width=640, height=360)]}}}|| || '''이승엽 고의사구 당시 난동이 일어난 사직구장의 모습''' || 그 절정은 2003년 9월 27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 경기. 당시 프로야구 침체기였던데다 [[8888577|한창 하위권을 달리던 롯데의 성적]] 때문에 사직 야구장은 주말에도 텅텅 비어있을 정도였는데[* 이 때 롯데의 관중 동원력이 얼마나 처참했냐면 전년도인 2002년 10월 19일 홈 최종전에 들어온 관중은 겨우 '''69명.''' 심지어 이날은 평일도 아니고 토요일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날은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이 나올 걸 의식해 간만에 만원 관중이 들어선 날이었다. 그런데 경기 종반이던 8회 초 이승엽의 4번째 타석에서[* 앞선 3번의 타석에서 이승엽의 기록은 삼진-뜬공-땅볼이었다.] 롯데가 승부처라고 판단해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내보내자 사직 관중들이 오히려 열이 받아 경기장에 불을 지르고 그라운드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난입하는 등 소요사태를 겪기도 했을 정도였다.[* 당시 경기가 무려 '''1시간 30분'''이나 중단됐고, 그럼에도 난동이 지속되자 전투경찰까지 출동하고 결국 당시 롯데 감독대행이던 [[김용철(야구)|김용철]]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관중들에게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롯데 구단은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 진짜 순금으로 만든 '황금 잠자리채' 모형을 선물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5021616264461006120.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eekly.chosun.com/2120_55_02.jpg|width=98%]]}}}|| ||<-2> '''2003년 10월 2일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홈런 신기록 (56호) 달성''' || [[https://m.sports.naver.com/kbo40/history/40|히스토리 39 이승엽 56홈런, 위대한 전설의 탄생]] 현재까지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및 [[동양인]]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며,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야구에서도 [[2013년]]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깨뜨리기 이전까지 최다였다. 3루 베이스를 돌고 있는 이승엽을 축하해주는 코치는 [[류중일]]이다. || {{{#ffffff 연도}}} || {{{#ffffff 홈런}}} || || 1997 || '''32'''[* 이 해 홈런왕을 처음으로 차지했다. 2위는 30개를 기록한 [[이종범]].] || || 1998 || 38[* 이 해 [[타이론 우즈]]가 기존 [[장종훈]]의 시즌 41홈런을 경신하여 42개를 쳤다.] || || 1999 || '''54'''[* [[타이론 우즈]]의 KBO 홈런 신기록을 '''바로 이듬해'''에 경신.] || || 2000 || 36[* 홈런왕은 40개를 날린 [[박경완]].] || || 2001 || '''39''' || || 2002 || '''47''' || || 2003 || '''{{{#ff0000,#ff0000 56}}}'''[* 이른바 "아시아 홈런 신기록". 자신의 KBO 신기록을 자신이 갈아치움. 이미 전반기 끝나갈 시점에 홈런 40개를 돌파했었다. 다만 2013년에 [[일본프로야구|NPB]]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57홈런을 치면서 아시아 홈런 신기록 타이틀은 발렌틴에게로 넘어갔고 아시아 최초로 60홈런을 돌파하면서 시즌을 마감하였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03_10.jpg|width=100%]]}}}|| [* 위 사진에 1993년도 트리오라고 적혀져있는 것은 방송 오타다.] 2003년 [[이마양]] 트리오는 합계 '''127홈런 356타점'''을 쳐내기도 했다. 여담으로 한창 홈런왕으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시절에도 "[[투수]]를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너는 한국 최고의 타자."라고 치켜세워주며 마음을 다잡아 준 사람은 前 [[KIA 타이거즈]] 감독 [[김기태(1969)|김기태]].[* 삼성에서 뛰었을 때 주장을 역임했으며, 이승엽이 그를 보스처럼 따랐다고 한다.] === [[이승엽/선수 경력/일본프로야구|일본프로야구 시절(2004~2011)]]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승엽일본.jpg|width=100%]]}}}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일본프로야구)]''' || ===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2기(2012~2017)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SZ5oH5Ti35s, width=640, height=360)]}}}|| || {{{#ffffff ▲ 이승엽 삼성 2기 시절 응원가}}} ||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옵션 3억을 포함한 총액 11억원에 계약했다. 2012년 복귀 첫 해 시범경기 성적이 타율 0.429 2홈런 7타점으로 거포에서 이똑딱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아주 긍정적인 성적이라 수많은 영양사들과 삼성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는 중. ==== [[이승엽/선수 경력/2012년|2012 시즌]] ==== ||<#182132> [[KBO 골든글러브|[[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height=40]]]] [br] [[틀:KBO 골든글러브/지명타자|'''{{{#b58a5d KBO 골든글러브}}} {{{#ffffff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2012)}}}''']]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1343553721.714079_PS12072900070.jpg|width=100%]]}}} || || 2012년 7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 '''한일 통산 500호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2012년)] || 한국 복귀 후 첫 시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통산 8번째 골든글러브와 10년만에 첫 KS MVP를 차지하였다. ==== [[이승엽/선수 경력/2013년|2013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이승엽/352grando.jpg|width=100%]]}}} || || '''2013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352호) 달성.'''[* 참고로 [[조인성(야구)|이 분]]은 [[2002년 한국시리즈]] 물론 [[2012년 한국시리즈]] 이어 이번에도 당했다.]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2013년)] || 352호 홈런을 때려내며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을 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부진하며 이승엽의 커리어에서 가장 좋지못한 성적을 기록한 시즌. ==== [[이승엽/선수 경력/2014년|2014 시즌]] ==== ||<#182132> [[KBO 골든글러브|[[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height=40]]]] [br] [[틀:KBO 골든글러브/지명타자|'''{{{#b58a5d KBO 골든글러브}}} {{{#ffffff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2014)}}}''']]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40911_093624000_99_20140912100809.jpg|width=100%]]}}} || || '''2014년 9월 11일 NC전에서 역대 최고령 30호 홈런을 기록하는 모습.'''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2014년)] || 복귀 첫 시즌에 비해 클래식 스텟은 향상됐지만, 리그의 타고투저 광풍에 견줘보면 실제 생산성은 2012시즌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나이 39세에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항.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이승엽/나이.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이승엽/나이2.jpg|width=100%]]}}}|| ||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이 형님도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말았다. 사진은 나이가 들어 샴페인을 못 따 무차별 세례를 받고 있는 이승엽.''' || '''시즌 종료 후, 9번째 골든글러브를 획득하며 KBO 역대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 [[이승엽/선수 경력/2015년|2015 시즌]] ==== ||<#182132> [[KBO 골든글러브|[[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height=40]]]] [br] [[틀:KBO 골든글러브/지명타자|'''{{{#b58a5d KBO 골든글러브}}} {{{#ffffff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2015)}}}''']]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117/2015/06/03/201506021848562220_1_99_20150603193203.jpg|width=100%]]}}} || || '''2015년 6월 3일 [[KBO 리그]] 개인통산 '''400홈런''' 달성의 순간.'''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2015년)] || >'''바로 지금. 이 위대한 순간의 증인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 > ㅡ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KBO리그 최초 개인통산 400홈런 달성 후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130976&redirect=true|정우영 캐스터의 멘트]] KBO 최초의 두 자릿수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었지만, 수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내의 해당 항목 참조. ==== [[이승엽/선수 경력/2016년|2016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승엽600홈런.jpg|width=100%]]}}} || || '''2016년 9월 14일 대구 한화전에서 {{{#blue 한일 통산 600호 홈런}}}을 기록하는 모습.'''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2016년)] || >'''"[[1995년]] [[5월 2일]] 통산 첫 번째 홈런, 7806일의 기다림! 담장을 넘었다는 600번째 외침! 이제 대한민국에도 [[이승엽|600홈런 타자]]가 있습니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전설로]]에서 전설로 가는 600호 홈런을 쏘아올린 전설의 타자 국민타자 이승엽, 우리는 이승엽의 시대를 함께 살았습니다!"''' > - 김민수 [[SPOTV]] 캐스터(9월 14일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 홈런 후 멘트) ==== [[이승엽/선수 경력/2017년|2017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80414_045059.jpg|width=100%]]}}} || || '''2017년 10월 3일 은퇴식에서'''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2017년)] || '''이승엽의 현역 마지막 시즌''' == [[이승엽/선수 경력/국가대표|국가대표 경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승엽 국가대표.jpg|width=100%]]}}}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승엽/선수 경력/국가대표)] || == 주요 기록 == === 기록 달성 === * [[1997년]] * 당시 역대 최연소 MVP[* 이 기록은 9년 후 [[류현진]]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면서 경신한다.](만 21세) * [[1999년]] * 대구 현대전, 최연소 통산 100홈런 * 만 22세 8개월 17일, 상대 투수 3회 [[정명원]], 기존 - 한화 [[장종훈]], 23세 5개월 * [[2000년]] * 인천 SK전, 최연소-최소경기 통산 500타점 * [[2001년]] * 대구 한화전, 최연소 통산 200홈런 * 만 24세 10개월 3일, 상대 투수 8회 [[김정수(1962)|김정수]], 기존 - 한화 [[장종훈]], 28세 4개월 * [[2003년]] * 대구 SK전, 세계 최연소/최단 경기 통산 300홈런 * 만 26세 10개월 4일/1075경기, 상대 투수 8회 [[김원형]], 기존 - 한화 [[장종훈]], 32세 5개월 26일, 1565경기 * 한 시즌 최다 홈런 한국 최고기록(56개) * '''56호 상대투수 2회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 [[2006년]] * 8월 1일 일본 도쿄돔 한신전, 한/일 통산 400홈런 달성 * 만 29세 11개월 13일, 상대투수 1회 [[이가와 케이]] * [[2012년]] * 5월 8일 사직 롯데전 한/일 통산 2,000안타 달성[* 기록의 50%이상을 KBO에서 기록한 선수기준으로 네번째. 현재 국내 최고기록은 양준혁의 2318안타.] * 상대투수 [[송승준]] * 6월 29일 대구 넥센전 최소경기 1,000타점 달성 * 7월 29일 목동 넥센전 한/일 통산 500홈런 달성 * 만 35세 11개월 11일, 상대투수 4회 [[앤디 밴 헤켄]] * [[2013년]] * 6월 14일 최연소/최단기간 개인 통산 350홈런 * 만 36세 11개월 27일/1320경기, 상대투수 5회 [[찰리 쉬렉]], 기존 - 삼성 양준혁, 40세 1개월 18일, 2057경기 * 6월 20일 개인 통산 최다 홈런(352개) * 상대투수 3회 [[윤희상]] * [[2015년]] * 6월 3일 포항 롯데전 한국프로야구 최초 400홈런 * 상대투수 3회 [[구승민]] * [[2016년]] * 8월 24일 통산 최다타점(1,390타점) * 상대투수 [[김광현]] * 9월 7일 최고령, 최소경기 KBO 통산 2,000안타 * 상대투수 [[이창재]] * 9월 14일 대구 한화전 한/일 통산 600홈런 달성 * 상대투수 [[이재우]] * [[2017년]] * 5월 2일 통산 최다득점(1,300득점) * 상대투수 [[이용찬]] * 5월 21일 통산 450홈런 * 상대투수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 * 7월 29일 통산 4,000루타 * 상대투수 [[김성민(1994)|김성민]] * 9월 1일 통산 최다2루타(459 2루타) * 상대투수 [[윤희상]] * 10월 3일 대구 넥센전 역대 최초 은퇴 경기 홈런 & 연타석 홈런 * 상대투수 [[한현희]] == 수상 내역 == === [[KBO 리그]] === ||<-2> {{{#!wiki style="margin: -3px -10px"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width=3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2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74ca1 50%, #074ca1 50%)" '''{{{#fff 이승엽의 KBO 수상 경력}}}''' }}} || || [[이승엽/선수 경력#s-3.1.3|'''1997''']] || '''KBO MVP'''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안타 1위 / 홈런 1위 / 타점 1위 || || [[이승엽/선수 경력#s-3.1.4|'''1998''']]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장타율 1위 || || [[이승엽/선수 경력#s-3.1.5|'''1999''']] || '''KBO MVP'''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홈런 1위 / 타점 1위 / 득점 1위 / 장타율 1위 / 출루율 1위 || || [[이승엽/선수 경력#s-3.1.6|'''2000''']]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득점 1위 || || [[이승엽/선수 경력#s-3.1.7|'''2001''']] || '''KBO MVP'''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홈런 1위 || || [[이승엽/선수 경력#s-3.1.8|'''2002''']] || '''KBO MVP'''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홈런 1위 / 타점 1위 / 득점 1위 / 장타율 1위 / 출루율 1위 / '''한국시리즈 우승''' || || [[이승엽/선수 경력#s-3.1.9|'''2003''']] || '''KBO MVP'''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 홈런 1위 / 타점 1위 / 득점 1위 || || [[이승엽/선수 경력/2012년|'''2012''']] ||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 '''한국시리즈 우승''' / '''한국시리즈 MVP''' || || [[이승엽/선수 경력/2013년|'''2013''']] || '''한국시리즈 우승''' || || [[이승엽/선수 경력/2014년|'''2014''']] ||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 '''한국시리즈 우승''' || || [[이승엽/선수 경력/2015년|'''2015''']] ||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 === [[NPB]] === ||<-2> {{{#!wiki style="margin: -3px -10px" [[파일:NPB 로고.svg|width=15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2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 50%, #fd5a1e 50%)" '''{{{#fff 이승엽의 NPB 수상 경력}}}''' }}} || || [[이승엽/선수 경력/일본프로야구#s-2.2|'''2005''']] || '''일본시리즈 우승''' / 일본시리즈 우수타자상 || || [[이승엽/선수 경력/일본프로야구#s-3.4|'''2009''']] || '''일본시리즈 우승''' || === 국가대표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width=250]]}}} || ||<-2><#09539d> '''{{{#fff 이승엽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 || [[이승엽/선수 경력/국가대표#s-2.2|'''2000''']]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 || [[이승엽/선수 경력/국가대표#s-2.3|'''2002''']]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 [[이승엽/선수 경력/국가대표#s-2.5|'''2006''']]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 || [[이승엽/선수 경력/국가대표#s-2.6|'''2008''']]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 연도별 주요 성적 == * '''{{{#blue,#0000ff 푸른 글씨}}}'''는 KBO 최다, '''{{{#red,#ff0000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16> {{{#ffffff 역대기록}}}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ffffff OPS}}} || || 1995 ||<|9> [[삼성 라이온즈|삼성]] || 121 || 365 || .285 || 104 || '''29'''[br](2위) || 1 || 13 || 73 || 55 || 0 || 37 || .458 || .354 || .812 || || 1996 || 122 || '''459'''[br](3위) || .303 || 139 || '''32'''[br](2위) || '''6'''[br](2위) || 9 || '''76'''[br](3위) || 57 || 4 || 39 || .477 || .345 || .822 || || 1997 || 126 || '''{{{#red,#ff0000 517}}}'''[br](1위) || '''.329'''[br](2위) || '''{{{#red,#ff0000 170}}}'''[br](1위) || '''{{{#red,#ff0000 37}}}'''[br](1위) || 3 || '''{{{#red,#ff0000 32}}}'''[br](1위) || '''{{{#red,#ff0000 114}}}'''[br](1위) || '''96'''[br](3위) || 5 || 55 || '''.598'''[br](4위) || .391 || '''.989'''[br](5위) || || 1998 || 126 || '''477'''[br](5위) || .306 || '''146'''[br](3위) || '''32'''[br](3위) || 2 || '''38'''[br](2위) || '''102'''[br](2위) || '''{{{#red,#ff0000 100}}}'''[br](1위) || 0 || '''83'''[br](3위) || '''{{{#red,#ff0000 .621}}}'''[br](1위) || '''.404'''[br](3위) || '''1.023'''[br](3위) || || 1999 || 132 || 486 || .323 || 157 || '''33'''[br](5위) || 2 || '''{{{#red,#ff0000 54}}}'''[br](1위) || '''{{{#red,#ff0000 123}}}'''[br](1위) || '''{{{#red,#ff0000 128}}}'''[br](1위) || 10 || '''{{{#red,#ff0000 124}}}'''[br](1위) || '''{{{#red,#ff0000 .733}}}'''[br](1위) || '''{{{#red,#ff0000 .458}}}'''[br](1위) || '''{{{#red,#ff0000 1.191}}}'''[br](1위) || || 2000 || 125 || 454 || .293 || 133 || '''33'''[br](2위) || 0 || '''36''' [br](4위) || 95 || '''{{{#red,#ff0000 108}}}'''[br](1위) || 4 || '''87'''[br](4위) || '''.604'''[br](5위) || .404 || '''1.008'''[br](5위) || || 2001 || 127 || 463 || .276 || 128 || '''31'''[br](3위) || 2 || '''{{{#red,#ff0000 39}}}'''[br](1위) || 95 || '''101'''[br](2위) || 4 || '''108'''[br](2위) || '''.605'''[br](2위) || .412 || '''1.016'''[br](3위) || || 2002 || 133 || '''511'''[br](3위) || '''.323'''[br](3위) || '''165'''[br](2위) || '''{{{#red,#ff0000 42}}}'''[br](1위) || 2 || '''{{{#red,#ff0000 47}}}'''[br](1위) || '''{{{#red,#ff0000 126}}}'''[br](1위) || '''{{{#red,#ff0000 123}}}'''[br](1위) || 1 || '''{{{#red,#ff0000 104}}}'''[br](1위) || '''{{{#red,#ff0000 .689}}}'''[br](1위) || '''.436'''[br](2위) || '''{{{#red,#ff0000 1.125}}}'''[br](1위) || || 2003 || 131 || 479 || .301 || 144 || 23 || 0 || '''{{{#blue,#0000ff 56}}}'''[br](1위) || '''{{{#red,#ff0000 144}}}'''[br](1위)[* 당시기준 KBO 1위, 이후 [[박병호/선수 경력/2015년|박병호]]에 의해 깨지게 된다.][* 물론 당시의 박병호가 경기수가 더 많아서 최소경기 최다타점이다.] || '''{{{#red,#ff0000 115}}}'''[br](1위) || 7 || '''111'''[br](2위) || '''.699'''[br](2위) || '''.428'''[br](3위) || '''1.127'''[br](2위)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ffffff OPS}}} || || 2004 ||<|2> [[치바 롯데 마린즈|치바 롯데]] || 100 || 333 || .240 || 80 || 20 || 4 || 14 || 50 || 50 || 1 || 45 || .450 || .328 || .778 || || 2005 || 117 || 408 || .260 || 106 || 25 || 2 || 30 || 82 || 64 || 5 || 34 || .551 || .315 || .866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ffffff OPS}}} || || 2006 ||<|5>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 143 || 524 || '''.323'''[br](2위) || 169 || '''30'''[br](4위) || 0 || '''41'''[br](2위) || '''108'''[br](4위) || '''101'''[br](4위) || 5 || 61 || '''.615'''[br](3위) || .389 || 1.004 || || 2007 || 137 || 541 || .274 || 148 || 29 || 2 || 30 || 74 || 84 || 4 || 39 || .501 || .322 || .823 || || 2008 || 45 || 153 || .248 || 38 || 4 || 0 || 8 || 27 || 21 || 1 || 17 || .431 || .324 || .755 || || 2009 || 77 || 223 || .229 || 51 || 9 || 0 || 16 || 36 || 33 || 1 || 33 || .484 || .327 || .811 || || 2010 || 56 || 92 || .163 || 15 || 1 || 0 || 5 || 11 || 13 || 1 || 15 || .337 || .280 || .617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ffffff OPS}}} || || 2011 ||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 122 || 394 || .201 || 79 || 20 || 0 || 15 || 51 || 28 || 0 || 32 || .365 || .257 || .622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 || {{{#ffffff 경기}}} || {{{#ffffff 타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4사구}}} || {{{#ffffff 장타율}}} || {{{#ffffff 출루율}}} || {{{#ffffff OPS}}} || || 2012 ||<|6> [[삼성 라이온즈|삼성]] || 126 || '''488'''[br](5위) || .307 || '''150'''[br](4위) || 28 || 2 || '''21'''[br](5위) || '''85'''[br](5위) || '''84'''[br](3위) || 6 || 63 || .502 || .384 || .886 || || 2013 || 111 || 443 || .253 || 112 || 43 || 0 || 13 || 69 || 62 || 3 || 32 || .395 || .298 || .693 || || 2014 || 127 || '''506'''[br](2위) || .308 || 156 || 33 || 0 || '''32'''[br](4위) || '''101'''[br](5위) || 83 || 5 || 40 || .557 || .358 || .915 || || 2015 || 122 || 470 || .332 || 156 || 44 || 1 || 26 || 90 || 87 || 2 || 46 || .562 || .387 || .948 || || 2016 || 142 || 542 || .303 || 164 || 32 || 2 || 27 || 118 || 91 || 5 || 73 || .518 || .380 || .898 || || 2017 || 135 || 472 || .280 || 132 || 35 || 5 || 24 || 87 || 65 || 1 || 53 || .517 || .347 || .863 || ||<-2> '''[[KBO 리그|KBO]] 통산'''[br](15시즌) || 1906 || 7132 || .302 || 2156 || '''464'''[br](2위) || 28 || '''{{{#blue 467}}}'''[br](1위) || '''1498'''[br](2위) || '''1355'''[br](2위) || 57 || 1055 || '''{{{#blue .572}}}'''[br](1위) || .389 || .961 || ||<-2> '''[[일본프로야구|NPB]] 통산'''[br](8시즌) || 797 || 2668 || .257 || 686 || 138 || 8 || 159 || 439 || 394 || 18 || 276 || .494 || .324 || .818 || ||<-2> '''개인 통산'''[br](23시즌) || 2703 || 9800 || .290 || 2842 || 602 || 36 || 626 || 1937 || 1749 || 75 || 1331 || .550 || .372 || .921 ||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승엽, version=3341, paragraph=9, title2=이승엽, version2=3967, paragraph2=2.1, title3=이승엽, version3=3967, paragraph3=2.2)] [[분류:이승엽/선수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