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슬람의 종파)] [목차] == 개요 == [[이슬람]]의 소수 종파이며, 아라비아 반도 동남부 [[오만]]에서 다수를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4/Madhhab_Map3.png|차지한다]]. [[카와리즈파]]에서 유래되었다. == 이바디의 어원 == 이바디즘은 우세한 무다르[* 가장 강력한 북부 아랍 부족 집단 중 하나였다.]의 한 부족 출신인 '''압둘라 이븐 이바드 알 무리 알 타미미'''의 부친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그는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주요 지도자들 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들의 통치가 《[[쿠란]]》과 [[https://ko.m.wikipedia.org/wiki/순나|순나]]에 위배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그룹을 이끌어갈 강력한 지도자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이븐 주바이르]]와 같은 당시 중요한 인물들로부터 거절되었다. 이로 인해 이븐 이바드는 이 저항 운동을 직접 이끌게 되었고, 실질적인 기반과 명확한 경계, 그리고 지도력을 바탕으로 이바디 학파가 등장하게 되었다.[* 출처 [[http://islam-in-oman.com/kr/ibadhiyah-ko/ibadhiyah-islam-history-sunni-shiite-ko/islamic-democracy-election-imam-ko.html]]] 이맘 제도는 1959년까지 지속되다가 술탄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해체되었다. == 이바디파의 역사 == 수니파에 반기를 든 [[카와리즈파]]라는 이슬람 과격파가 있었다. 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 초대 정통 [[칼리파]]인 [[아부 바크르]], 제2대 정통 칼리파인 [[우마르]] 시대에 있었던 순수한 [[이슬람 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내세웠다. 또한 카와리즈파는 칼리파가 반드시 예언자 가문 출신일 필요가 없으며, 당대의 사람들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이 칼리파로 선택되어야 한다는 혁신적인 사상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우마이야 칼리파조로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고, [[이란]], [[이라크]],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지방([[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아라비아 반도]], [[잔지바르]] 등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7세기 무렵 여러 지역에 흩어진 카와리즈 분파 가운데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바스라]] 지역에 정착한 분파가 바로 이바디파였다. 이바디파는 과격한 행동주의를 없애고, 온건적으로 흘러가면서 수니파와 절충적인 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 같은 이유에서 일부 학자들은 이바디파가 비록 카와리즈파로부터 유래했고, 교리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두 파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바디파는 684년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압둘라 빈 이바드 알 무리 알 타미미'''(Abdullah bin Ibad al-Murri al-Tamimi)에 의해 창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바디파에 속한 학자들은 [[수니파]] 무슬림들도 학생으로 받아들일만큼 개방적이었으며, 우마이야 칼리파조나 [[아바스 왕조|아바스 칼리파조]]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바디파 역시 정권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안식처를 찾기 시작했다. 압둘라 빈 이바드의 제자였던 '''자비르 이븐 자이드 알 아즈디'''(Jabir ibn Zaid al-Azdi, 642~714)는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바스라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 동남부의 [[오만]]으로 향했다. 그는 오만에서의 이바디파 창시자가 되어 《하디스》를 편찬하고 교리를 정립했다. 이때부터 이바디파는 오만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749년 오만의 이바디파는 '''알 줄란다 이븐 마스우드'''(al-Julanda ibn Mas'ud)를 이맘으로 선출하고 내륙에 위치한 니즈와(Nizwa)를 수도로 하는 최초의 이맘국을 건설했다. 이 최초의 이맘국은 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https://m.blog.daum.net/world-history/104|출처]]] == 여담 == 이바디는 꽤 관용적인 종파이다. 오만의 식민지였던 [[잔지바르]]에 기독교 선교사가 성당을 세우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현대 오만에도 다른 걸프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인도인]] 노동자에 대한 배려의 일환으로 [[힌두교]] 사원을 세워주는 것을 비롯해 가톨릭, 아랍 정교회, 불교 등등 다양한 종교 시설들을 국가가 나서서 지어주고 지원해주고 있다. 다만 다른 종파와 마찬가지로 배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이바디파의 입장으로는 《[[쿠란]]》에 명시된 바와 같이 '''종교는 강요될 수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하기 위함이기도 하거니와, "'''불신자들이 알아서 지옥에 가겠다는데 우리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이들은 수니파와는 달리 《[[쿠란]]》이 '''창조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며,[* 중세 수니파 [[무타질라 학파]]의 견해와 맥을 같이 한다.] 문자 그대로의 《쿠란》 해석을 경계한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D&nNewsNumb=201701100038&page=1|#]] 이는 곧 극단주의로 빠지는 구멍을 미연에 차단한다는 것이다.[* 많은 원리주의가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데에서 싹이 트고 기승을 부린다.] 이에 따라 오만은 '''중동의 [[스위스]]'''라고 불리며, 이슬람 종파 간 갈등으로 헬게이트가 된 이웃 국가 예멘과 시리아, 이라크, 심한 양극화와 이슬람 원리주의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리 정세가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오만의 외교도 이에 영향을 많이 받아 중동에서 사이가 매우 안 좋은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간의 외교 중재를 주로 도맡아서 하고 있다. [[분류:오만의 문화]][[분류:카와리즈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