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목차] [clearfix] == 개요 == 應貞 (? ~ 269)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관리이자 문학가. 자는 길보(吉甫). 예주 여남군(汝南郡) 남돈현(南頓縣) 출신. 위나라에서 시중을 지낸 [[응거]]의 아들. == 생애 == 응정은 담론을 잘했고 학식과 재능으로 명성을 얻어, 일찍이 [[하후현]]과 오언시를 나누면서 교류하였다. 이후 고제로 천거되어 여러 현직을 두루 역임했고, [[사마소]]가 무군대장군에 임명되자 응정은 그의 참군으로 배속되었다. 경원 4년(263년), [[등애]], [[종회]]가 촉을 평정한 후, 오등작을 부활시키기 위해 [[순의]]가 그 예를 정하게 되었는데, 응정은 [[양호(삼국지)|양호]], [[임개]], 경준, 공호 등과 함께 옛 글을 고쳐서 진례(晉禮)를 지었다. 태시 원년(265년) 12월, 원제 [[조환]]이 폐위되고 진왕 [[사마염]]이 황제에 올라 진나라가 세워지자, 응정은 급사중에 제수받았다. 무제 사마염이 화림원(華林園)에서 잔치를 열 때, 대신들은 부시(賦詩)를 지어 건국을 축하했는데 그 중 응정이 지은 것이 최고로 아름다웠다. 얼마 뒤, 호군장사 공순(孔恂)과 함께 태자중서자에 임명되었다가 산기상시로 승진했으며, 태위 순의와 더불어 유학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예법을 정했으나 이를 시행하진 못 했다. 태시 5년(269년), 사망하였고 문집을 세상에 알렸다. [[분류:조위의 인물]][[분류:서진의 인물]][[분류:26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