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pp.seoul.go.kr/EMB000011a000b5.jpg|width=100%]]}}} || || '''이름''' ||음성직 (陰盛稷, Eum Sung-jick) || || '''출생일''' ||[[1947년]] [[6월 28일]] ([age(1947-06-28)]세) || || '''출생지''' ||[[서울특별시]] || || '''본관''' ||죽산 음씨|| || '''학력''' ||[[성동고등학교]] {{{-1 ([[졸업]])}}}[br][[연세대학교]] {{{-1 (응용통계학 / [[학사]])}}}[br][[연세대학교]] {{{-1 (응용통계학 / [[석사]])}}}[br][[노스웨스턴 대학교]] {{{-1 (도시교통계획학 / [[박사]])}}} || || '''약력''' ||[[건국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교수[br][[한국과학기술연구소]] 교통경제연구실 연구원[br][[국토개발연구원]] 교통연구실 선임연구위원[br]국토개발연구원 기획조정실장[br][[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전문위원 부국장[br]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전문위원 국장대우[br]중앙일보 편집국 수석전문위원 겸 논설위원[br]대한교통학회 부회장[br][[서울특별시청]] 교통관리실장[br]서울특별시청 교통정책보좌관[br][[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br]세계대중교통연맹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교수, 전 언론인, 전 공무원, 전 공[[기업인]]. == 생애 == [[1947년]] [[6월 28일]]생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하였으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출생했다는 설도 있는 등 출생지가 정확하지가 않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경기도]] [[이천시|이천]]에서 태어났다고 포스팅된 곳도 있다. 그래도 [[성동고등학교]] 출신이라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은 맞다. [[연세대학교]] 상경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마친 뒤 [[미국]]으로 유학 가서 [[노스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 및 교통계획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교통경제연구실 연구원, [[국토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1994년]]부터 [[중앙일보]]의 교통전문위원으로 다수의 기사와 칼럼을 작성했다. 이 시절 글들이 [[개념]]찬 것들이 많다. [[2002년]]부터 서울특별시청 교통관리실장과 교통정책보좌관을 맡으면서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의 대중교통 개편 실무를 담당했다. [[2005년]] [[제타룡]] 사장의 후임으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취임하여 [[2011년]] [[3월 2일]]까지 사장직을 맡았었다. == 비판 == 재임 기간중 워낙 화려한 삽질과 망발로 인해 유명한데 당장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까이고 까여서 가루가 된 분이기라서(...).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냐하면, [[철도 동호인]]에게는 이름보다도 음사장, 음막장, [[강마에|음마에]], [[모짜르트|음짜르트]], [[할렐루야|음렐루야]], [[염라대왕|음라대왕]], [[절대신 움마|절대신 음마]], [[피카츄|음카츄]] 등등 수많은 [[별명]]으로 치를 떨고 있다고 한다. 이름 때문에 뭔가 '''음성적'''(陰性的)이라고 까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자체제작 전동차 시승식에서 [[오세훈]] 시장이 음사장에게 열차 안 터치스크린(행복터치)에 이름을 검색해 보라고 하자 "자기 이름을 검색하면 욕만 나온다"며 거부했다고... 이런데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연임"되었으며, 세계대중교통연맹(UITP)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장으로 "연임"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2567331|#]] 대체 뭘 잘했길래 연임한 것인지 싶겠지만 사실 이용객의 편의를 줄이고 긴축운영을 했으니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자가 줄었다고 마음에 들어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youtube(zUTJv6QtD1s)]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에서 제작한 영상이며, 실제로도 현 [[서울교통공사]]의 5~8호선쪽 직원들에게 음성직 얘기를 꺼내면 '''벌컥 화내는 케이스가 상당할 정도로''' 음성직 시절은 서울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에게 있어 [[흑역사]]나 다름이 없다. 이렇듯 음사장이 철도 동호인들에게 대차게 까이는 이유는,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의 사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저지른 짓들 때문. 사장에 취임한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구두쇠]] 영감'''이었던 것이다. 지하철역 [[노선도]]에 스티커질을 해서 노선도를 걸레로 만들었고, 심지어는 [[서울 지하철 9호선]]이 새로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역 대합실 내의 [[수도권 전철]] 전체 노선도를 새로 바꾸지 않고 스티커질로 땜빵했다. 그래도 차내 노선도는 [[2009년]] 전후로 새로 바뀐 모양. 땜질의 전설이라 한다면 [[국유철도|국철]] 구간이 [[수도권 전철 중앙선]]으로 바뀌면서 옥색 노선색을 취할 때 '''노선색'''마저도 땜질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음사장의 정점은 바로 '''전기요금 절약 정책'''. 전기요금을 절약한답시고 모든 [[무빙워크]]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idrain&logNo=220665930866|일부 조명을 꺼 버렸고]]. 평일 비첨두시간, 주말/공휴일 열차도 감편시켜버렸다. [[열차자동운전장치|ATO]]가 타행운전을 지원하지 않아서 전기를 많이 쓴다고 수동운전을 늘린 건 덤. 이 때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역이 '''던전'''으로 통했다. 그리고 '''[[스크린도어]]''' 공사도 질질 끌었다. 이로 인해 '''프라다도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였다. 게다가 2009년 말 남은 예산을 가지고 '''모바일 오피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이유로 전 직원에게 [[삼성 옴니아|쇼옴니아]]폰을 공짜로 뿌리기도 했다. 이건 그 때까지 음사장의 행보와 정 반대였다. 이 이후로 스크린도어, 무빙워크, 에스컬레이터 등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으니까. 이게 문제인 것이, 이 놈의 옴니아가 회사 비품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맘대로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사에서 요금까지 내주는 것은 또 아니라 [[iPhone 3GS|아이폰 3GS]]나 [[갤럭시 S]] 같은 신종 스마트폰들이 줄줄이 나오는 와중에도 상당수의 도철 직원들은 옴니아를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심만 뽑아서 다른 폰에 꽂아 쓰거나 옴니아를 정지시키고 다른 폰을 개통하면 되긴 하는데 어느 쪽이건 그냥 자기 폰 사는 것보단 손해다. 물론 의도야 좋았겠지만 하필 이를 주도한게 이전부터 욕을 배부르게 먹던 음성직이었고 뿌린게 옴니아였으니 더 까인 셈. 그러다 2010년에는 [[오세훈]]의 '''[[서울시 디자인 정책]]'''에 굴복, 결국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스크린도어/무빙워크/에스컬레이터/조명을 다시 풀가동하고 말었다. 그런데 요즘은 슬금슬금 조명을 끄기 시작하고 무빙워크/에스컬레이터를 가동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5, 7호선보다 수요가 적은 6, 8호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의 사장 '연임'은 물론, 세계대중교통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 의장을 '연임'하는 것으로 봐서 능력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자기 회사]] 직원들에게조차 꼴통소리 들으며 씹히고 있다. 그나마 [[2010년]] [[3월]] 이후로는 앞서 언급된 것 중에 가장 큰 문제인 역내 절전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고, 2009년 말에는 [[서울 지하철 8호선|8호선]] 스크린도어 건설 및 시스템 구축을 직접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여러 부서가 참여하면서 안정화시키는 등의 좋은 정책으로 덜 까이게 되었다. 하지만 [[수도권 전철 7호선 7000호대 전동차#s-4.3|야심차게 개발한 전동차]]가 결국 [[흑역사]]화되고 냉방은 여전히 절전 정책에서 못 벗어나면서 완전히 이미지가 좋아지는 건 다 틀렸다. 게다가 [[2010년]] [[8월]]에는 그 동안 해 왔던 업적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화공간 조성, 자체차량 제작 등. 이런 특혜 때문에 [[서울특별시]] 의회에서는 자체 차량 제작 금지 조례까지 추진 중이다. 참여연대가 고발함으로써 음사장은 다시 한 번 까임의 중심에 섰다.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017868|최근 고발이 각하되었지만]] [[2011년]] [[3월 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2420246|자진 사퇴]]하였다. == 여담 == * [[철도 동호인]]에게 음사장 다음으로 '''까였던''' 사람은 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 [[정창영(1954)|정창영]]. 원래 [[감사원]] 출신으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으로 부임한 후 "현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은 잘못" 이라며 [[KTX]] 수서평택선 민영화에 찬성하고 나서는 바람에 철도 동호인들에게 [[평생까임권]] 획득하는 줄 알았는데.... [[철도 동호인]]을 위한 행사도 자주 연 데다가 동호인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했다. 결정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필사적으로 막다가 사장에서 해임되다시피 나갔으니 그야말로 인식 급변화의 주된 예. 자세한 것은 [[정창영(1954)|정창영]] 문서 참조. 오히려 정창영보다는 정창영의 전임 사장이자 [[경찰청장]] 출신인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이 음성직처럼 철도동호인에게 상당히 많이 까였다. 왜냐하면 허준영 전 사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무산되면서 코레일의 적자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 [[철도 갤러리]]에는 [[토마스와 친구들]]과의 합성 짤방이 있다. [[싱크로율]]이 [[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in&no=150954|대단하다.(...)]] [[분류:1947년 출생]][[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상경계 교수]][[분류:성동고등학교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출신]] [[분류: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분류:건국대학교 재직]][[분류:희귀성씨인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