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劉夏 ==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 행적 === 대방태수로 238년에 야마타이국에서 [[나시메]], [[츠시고리]] 등을 대방군으로 보내 [[조예]]에게 조공하기를 청하자 유하는 사자를 보내 그들을 데리고 수도까지 호송하게 했다. 조예가 히미코에게 조서를 보내면서 유하가 사자를 보내 나시메, 츠시고리를 호송한 것으로 잠깐 언급된다. 그런데 삼국지집해에서 심가본이 야마타이국에서 사자를 보내 유하가 이 사자들을 호송한 시기에 대한 기록을 지적했는데, [[공손연]]이 죽은 것은 238년 8월의 일로 공손연이 죽고 왜국의 사자가 처음으로 통한 것은 239년의 일로 만약 238년 6월의 일이라면 그 때 요동이 위나라와 맞서던 때라 위나라의 대방태수는 아직 없고 왜국의 사자 또한 통할 수 없다고 했다. [[정사 삼국지]]보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이 더 마땅하면서 공손연이 238년에 죽었지만 태평어람에서 239년에 죽은 것으로 서술한 것은 아마도 왜의 사자가 통하게 된 까닭을 분명히 하기 위해 추서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또 239년 12월에 조서를 내려 히미코에게 답했다면서 240년에 궁준, 제준 등을 왜국에 보낸 것을 보면 239년 12월에 조서를 내려 240년에 대방에 도착한 것으로 그 연월이 분명하며, 238년의 일이라면 조서가 이미 내렸는데도 1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대방에 도착했을 리 없다면서 이 점 때문에 238년이 아닌 239년이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고고학자인 모리 고이치는 1985년에 유하가 전임인 [[유흔]]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 창작물에서 === 소설 패왕 삼국지 : 초갑질 역사물에서는 이몽과 고구려가 낙랑군이 패하자 방통이 사신으로 와서 항복을 요구하며, 전황에 대해 듣고 공손무에게 탄식하다가 이몽군에서 노후를 보장하기로 하자 항복하기로 하며, 이몽군의 제안에 따라 궁준을 설득하고 항복시킨다. == 劉何 ==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 행적 === [[여포]] 휘하의 장수로 [[조조]]가 [[여포]]를 공격하면서 [[조인#s-1]]이 별도로 구양을 공격해 함락시키자 사로잡혔다. === 창작물에서 === 소설 삼국지 서영전에서는 여포군의 수군 도독으로 조조가 여포를 공격하기 위해 연주를 다시 공격할 때 예상 외로 막히자 [[하후돈]]과 [[유엽]]이 함선을 미끼로 세워두고 적에게 들키지 않게 저수 인근에서 상륙해서 공격하기로 하는데, [[진궁]]이 이를 뒤늦게 눈치채고 설명하자 적의 허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에 자책하려다가 진궁이 서둘러 가면 방비할 수 있다고 하자 병력을 이끌고 갔다. 하후돈이 네 개의 성을 순식간에 함락했고 진궁이 불러서 다독이면서 이추를 시켜 소수의 적을 치라고 하자 알겠다고 하면서 병력을 이끌고 갔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54, 무용 60, 지모 26, 정무 31, 인사 28, 외교 24의 능력치로 161년생으로 나온다. [[분류:동명이인]][[분류:후한의 인물]][[분류:조위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