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한나라의 임금인 유수(劉秀), rd1=광무제, other2=후한 말의 현령, rd2=유수(후한 현령))] 劉脩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의 형주자사인 [[유표]]의 아들로 자는 계서(季緒).[* [[백중숙계]]의 원리에 따르면 유기의 자는 백서(伯緖), 유종의 자는 중서(仲緖)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사서에 언급된 건 아니기에 진위 여부는 불확실. 게다가 백중숙계를 따르더라도 나머지 글자를 통일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정짓기는 근거가 부족하다.] == 생애 == 행적은 알 수 없고 [[조식(삼국지)|조식]]과 [[양수(삼국지)|양수]]가 주고 받은 편지에서 부정적으로 언급되는데, 유수가 자신의 재주가 글을 지은 사람에 미치지 못함에도 남의 글을 매도하거나 단점을 들춰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전파와 [[노중련]]에 대해 이야기와 함께 유수는 말재주가 과거의 전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오늘날의 노중련은 구하기 어렵지 않다면서 유수의 입을 닫게 할 정도의 재주가 있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많다고 말했으며, 유수의 제멋대로의 행동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겠냐고 했다. 유표의 아들들인 [[유기(삼국지)|유기]], [[유종(삼국지)|유종]]과는 달리 후계자 논의에서도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유비가 지지했던 유기, 채씨 일족과 연줄이 있던 유종과는 달리 어떤 파벌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한 듯. 또한 [[태평어람]]에 의하면 유표 부자는 술을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수도 아버지처럼 음주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 기타 창작물 == [[화봉요원]]에서 등장하고 유표의 장례식에서 [[채모]]가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을 주장하자 형주의 신하들 중에서는 채모의 결정에 반발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이 때 조조군의 장수 [[하후돈]]과 함께 형주의 한수를 지키던 왕고(王故)가 나타났다. 하후돈이 한수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것, 왕고는 한수가 범람해 방어선이 무너진 사실을 알리는데, 왕고가 하후돈이 형주로 발을 들이게 놔뒀다는 것에 분노한 형주의 한 신하가 [[하후은]]의 칼에 맞아 죽었고 유수는 유종과 함께 이 상황을 지켜보고 놀랬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식(삼국지)|조식]]의 빈객으로 의랑을 지내고 어중간한 문장 실력을 지녔으면서 걸핏하면 다른 사람의 문장을 비평하기 일쑤라서 연신 별로라고 말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황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