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십육국춘추)] ||<-2> '''안창왕(安昌王)[br]{{{+2 劉盛 | 유성}}}''' || || '''시호''' ||없음 || || '''작위''' ||안창왕^^(安昌王)^^ || || '''성''' ||유^^(劉)^^ || || '''휘''' ||성^^(盛)^^ || || '''자''' ||불명 || || '''생몰''' ||? ~ [[310년]] [[8월 31일]] || || '''출신''' ||병주^^(幷州)^^ 신흥군^^(新興郡)^^ || || '''부친''' ||부왕 [[유표(흉노)|남흉노좌현왕]]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조(오호십육국)|전조]]의 황족. 흉노의 좌현왕 유표의 아들. 태조 광문제 [[유연(전조)|유연]]의 동생. == 생애 == 젊을 적에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효경]]》과 《[[논어]]》 이 두 경전 만큼은 여러 번 읽어 통달하였다. 그는 종종 > "이 두 책만 읽으면 충분하다. 닥치는대로 읽어봐야 실전에서 쓰지 못 하면 의미없지 않은가?" 라 말하고 다녔는데, [[서진]]의 관리인 이희(李憙)가 유성을 보고 감탄하며 평하길, > "그저 읽고 이해하기만 하는 일은 쉬우나, 그것으로 스스로를 깨우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또, 그의 엄숙함은 임금의 위엄과도 같으니 가히 군자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원희 원년(304년) 10월, 대선우 유연이 좌국성(左國城)에서 한왕(漢王)을 자칭하고 한나라를 개국하자, 유성도 형이 대업을 이룩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유성의 충성심은 두터웠기에, 유연이 그를 무척 신임하여 안창왕(西昌王)에 봉하였다. 하서 2년(310년) 7월, 중병에 걸려 드러눕게된 광문제 유연은 동생인 안창왕 유성과 안읍왕 유흠(劉銳), 서양왕 유예(劉璿)를 불러 모두 영 무위장군(領武衛將軍)으로 삼고, 영안왕 유안국(劉安國), 좌위장군 마경(馬景) 등과 함께 황궁의 금군을 통솔케 하였다. 이윽고 광문제 유연이 병사하고 태자 [[유화(전조)|유화]]가 황위를 계승하였다. 황제 유화는 아버지 유연과 달리 도량이 좁아 시기심이 강하고 은혜를 베풀 줄 몰랐다. 유화는 유연이 세워둔 고명대신들을 무시한 채, 유연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승진 대상에서 항상 배제시켰던 종정 호연유(呼延攸)와 남몰래 유연을 원망하고 있던 서창왕 유예(劉銳), 초왕 [[유총(전조)|유총]]을 미워하던 시중 유승(劉承) 등과 같은 간신배들을 가까이 하였다. 당시 한나라에는 유화의 동생들인 제왕·대사도 유유(劉裕), 노왕·상서령 유융(劉隆), 북해왕·무군대장군 유예(劉乂), 초왕·대사마 유총, 이 4명의 왕들이 각기 군대을 보유하고 평양 근교에 주둔해 있었다. 호연유, 유예, 유승은 서로 4왕의 축출을 모의하고 황제에게 이를 유세하니, 유화 또한 그들의 말에 넘어가 동생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동년 7월 20일, 황제 유화가 밤에 금군을 통솔하는 유성, 유흠, 유안국, 마경 등을 동당(東堂)으로 불러 계획을 알리자, 유성이 아뢰었다. > "선제의 관은 안장되지도 않았고 4명의 왕들 또한 반역의 뜻을 갖고 있지 아니함에도, 오늘날 갑자기 물고기와 고기를 두고 다툰다면 신(臣)은 폐하께서 훗날 먹을 것이 없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며, 대업은 정해지지 않았으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선제의 홍기(鴻基)를 뜻으로 삼으시고, 저 광간(狂簡)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십시오. 《[[시경]]》에 이르기를, '어찌 남이야 없을까마는, 나와 부모만 하리.(豈無他人,不如我同父)'라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여러 동생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누굴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호연유, 유예가 화를 내며 말했다. > "오늘의 논의에 다른 도리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대들은 폐하의 명령에 복종하고 군대를 이끌면 될 것이지, 장수가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이후 좌우에 명해 유성을 칼로 베게 하였다. 형 광문제 유연이 서거한지 고작 이틀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성이 즉석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본 유흠과 마경 등의 장수들은 두려움에 떨며 > "폐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신들은 폐하를 욕보이지 않게 죽음으로 받들겠습니다." 라 하고, 엎드려 복종하였다. 이리하여 호연유, 유예, 유승은 유흠, 마경과 함께 금군으로 4왕들을 차례로 쳐, 유유, 유융의 목을 얻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이미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마쳐두었던 유총의 군대에게 대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유흠은 제왕 유유를 공격할 때, 호연유와 유승의 의심을 사 제거당했고, 마경은 유총에게 투항해 목숨을 건졌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진서)]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흉노]][[분류:신저우시 출신 인물]][[분류:310년 사망]][[분류:중국의 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