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한 황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10E0E 0%, #A11 20%, #A11 80%, #810E0E); color: #ece5b6" '''한 비정통 황제[br]{{{+1 東帝 | 동제}}}'''}}} || ||<|2> '''출생''' ||기원전 216년 || ||[[전한]] 패군 봉현 [br] (現 [[중화인민공화국]] 서주 봉현) || ||<|2> '''즉위''' ||기원전 154년 || ||[[전한]] 오국(吳國) || ||<|2> '''사망''' ||기원전 154년 || ||동월 || || '''능묘''' ||없음 || ||<|2> '''재위기간''' ||'''{{{#ece5b6 전한 비정통 황제}}}''' || ||기원전 154년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성씨''' ||[[유(성씨)|유(劉)]] || || '''휘''' ||비(濞)[* 현대 중국어: 류피(liúpì), 한대 중국어: 르우페이스(lɨu.pʰeis)] || || '''부모''' ||부왕 [[유중(전한)|유중]] || || '''형제자매''' ||덕후(德侯) 유광(劉廣) || || '''자''' ||불명 || || '''묘호''' ||없음 || || '''시호''' ||없음 || || '''존호''' ||동제(東帝) || || '''연호''' ||없음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한]]의 황족.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킨 사람으로 유명하며 당시 동제(東帝)[* [[https://ctext.org/shiji/wu-wang-pi-lie-zhuan/zh|#]]]를 자칭했으나 1년도 되지 않아 패배하였다. [[한고조]]의 조카로 [[초한쟁패기]] 당시에 공을 세워 훗날 오나라의 제후왕에 봉해졌다. 이후 소금과 구리가 생산되는 오나라 땅의 경제적 이점을 살려 당시에 가장 강력한 제후왕이자 황실의 원로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한경제]]와 [[조조(전한)|조조]]의 봉토삭감 정책에 반발하여 다른 제후왕들과 더불어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가 죽었다. == 생애 == [[한고제]] 유방의 작은형 [[유중(전한)|유중]]의 아들, 즉 유방의 조카이다. 아버지 유중은 대왕(代王)으로 봉해졌으나 [[흉노]]의 침입을 받고 낙양으로 달아나 그 벌로 합양후로 격하됐다. 유비는 아버지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하여 여러 곳에서 용맹하게 싸운 끝에 장사문왕[* 구 형산왕.] 오신의 추천을 받고 오왕에 책봉되어 약 40여 년 동안 장기 재위했다. 이때 유방이 유비에게 '네가 반란의 상이라더라?'라고 하더니, 난리가 나는건 50년 뒤라고 했으니 네가 그럴 리는 없을 거라며 등을 토닥여줬고, 유비도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하는데, [[오초칠국의 난]]의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유비가 원래 그럴 놈이었다고 몰아가기 위해 한경제가 지어낸 일화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한문제]] 때 당시 유비의 태자 유현이 장안에 입궁하여 문제의 태자였던 유계와 술을 마시고 육박을 두며 놀았다. 그런데 이때 유계가 한 수만 물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유현은 계속 거절하였고 이에 울컥한 유계는 홧김에 육박판을 내던졌는데 그게 '''하필이면 정통으로 머리에 맞으면서''' 유현이 비명횡사하고 만다. 물론 유계 역시 죽일 의도가 전혀 없었던지라 일이 이리되자 기겁하며 사과를 했고 몹시 미안해했지만 이때부터 유비는 병을 핑계대며 입궁하지 않고 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문제는 아들의 잘못이었던 만큼 화를 내거나 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사촌형 유비가 나이가 들었다며 궤장을 하사했다.[* 안석과 지팡이를 말하며 황제나 왕이 나이 많은 신하에게 내리는 최고의 예우다. 여기서 안석은 앉아서 정사를 돌볼 수 있도록 만든 편안한 의자를 말한다.] 사실 유비가 마음을 상한 결정적인 한황실의 실책이 있었는데, 사망한 유현의 시신을 장례도 안 치르고 관에 넣어서 유비한테 보내버린 것이었다. 생판 남이었다면 고향에 시신을 보내주는 것은 엄청난 예우였지만 유현은 한문제의 5촌 조카로 엄연히 황족이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사망한 장소이자, 본가가 위치한 장안에서 장례를 치러줬어도 되는 것이었다. 문제가 죽고 원수였던 태자 유계가 황제([[한경제]])로 즉위했다. 안그래도 아들의 원수였기에 평소부터 경제를 좋게 볼 리가 없었는데, 경제가 [[조조(전한)|조조]]를 앞세워 제후들로부터 땅을 빼앗으려 하자 다른 제후국들과 손을 잡고 난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오초칠국의 난]]. 그러나 휘하 장군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유리한 상황에서도 대패해 동월로 도망쳤으나, 동월은 오히려 그를 죽이고 목을 베어 한나라로 보냈고 그의 태자 유구는 민월로 도망쳤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사기)] [include(틀:한서)] ||||||||||||<:> '''[[전한|{{{#ffffff 전한의 대왕(代王)}}}]]''' || ||<:> [[유중(전한)|유중]] || {{{+1 ←}}} ||<:> '''유비''' || {{{+1 →}}} ||<:> 오왕 책봉 || ||||||||||||<:> '''[[오초칠국의 난|{{{#ffffff 전한의 오왕(吳王)}}}]]''' || ||<:> 신규 책봉 || {{{+1 ←}}} ||<:> '''유비''' || {{{+1 →}}} ||<:> 작위 폐지 ||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유비(전한), version=78)] [[분류:기원전 216년 출생]][[분류:기원전 154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분류:비정통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