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사마진 황후)] ||<-2> '''{{{#ece5b6 동진의 황후[br]{{{+1 明穆皇后 | 명목황후}}}}}}''' || || '''[[시호|{{{#fff 시호}}}]]''' ||명목황후(明穆皇后) || || '''{{{#fff 출생}}}''' ||307년 || || '''{{{#fff 사망}}}''' ||328년 || ||<|4> '''{{{#fff 재위}}}''' || '''{{{#fff 동진의 황후}}}''' || || 323년 ~ 325년 || || '''{{{#fff 동진의 황태후}}}''' || || 325년 ~ 328년 || ||<^|1><-2><:>{{{#!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fff 성}}}''' ||유(庾) || || '''[[휘|{{{#fff 휘}}}]]''' ||문군(文君) || || '''{{{#fff 부모}}}''' ||부친 유침(庾琛) || || '''{{{#fff 부군}}}''' ||[[명제(동진)|{{{#000,#fff 숙조(肅祖) 명황제(明皇帝) 사마소(司馬紹)}}}]] || || '''{{{#fff 자녀}}}''' ||[[성제(동진)|{{{#000,#fff 현종(顯宗) 성황제(成皇帝) 사마연(司馬衍)}}}]][br][[강제(동진)|{{{#000,#fff 강황제(康皇帝) 사마악(司馬岳)}}}]] ||}}}}}}}}} || [목차] [clearfix] == 개요 == [[동진]]의 황후로, 동진의 제2대 황제인 [[명제(동진)|명제]] 사마소의 황후이다. 시호는 명목황후(明穆皇后)로 이름은 문군(文君)이다. == 생애 == 유문군은 영천군(潁川郡) 언릉현(鄢陵縣) 출신으로 307년 유침(庾琛)의 딸로 태어났다. 유문군은 성품이 인자하였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유문군의 아버지인 유침은 영가의 난을 피해 강남으로 피난하여 회계 태수를 지냈는데, 유문군도 이때 아버지를 따라 강남으로 피난한다. 유문군은 용모가 수려하였고 인자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당시 황제였던 [[원제(동진)|원제]] 사마예가 그 소문을 듣고 태자인 사마소의 태자비로 들였다. 322년, 사마예가 세상을 떠나고, 사마예의 태자인 사마소가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동진의 제2대 황제인 [[명제(동진)|명제]]이다. 유문군은 323년에 사마소의 황후로 책봉되어 사마연과 사마악을 낳았다. 325년, 사마소가 세상을 떠나고, 사마소의 태자인 사마연이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동진의 제3대 황제인 [[성제(동진)|성제]]가 된다. 사마연이 즉위하자 유문군은 황태후가 되었다. 당시 사마연은 4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에 즉위한지라, 신하들은 [[후한]]의 황후였던 [[화희황후 등씨]]의 고사에 따라 유문군에게 섭정을 주청하였다. 결국 유문군은 황태후의 신분으로 사마연의 섭정을 맡는다. 327년, 역양 태수인 [[소준(동진)|소준]]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소준의 반란은 수도인 건강성이 함락될 정도였는데, 유문군은 소준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유문군은 이때 받은 핍박이 원인이 되어 결국 328년에 세상을 떠났다. 유문군은 사후 명목황후로 추시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진서)]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황후]][[분류:307년 출생]][[분류:328년 사망]][[분류:영천 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