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후한의 인물]] 劉基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지방관. [목차] == 개요 == 요서태수로 공손찬의 장인 후임으로 요서에 부임한 것으로 보이며, 비리에 연좌되어 낙양에 소환되자 공손찬이 벼슬을 버리고 병사로 사칭해 유기를 수행했다. 유기는 일남으로 유배되었고 이 당시 일남으로 유배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는데, 공손찬이 가기 전에 북망산으로 가서 조상들의 묘에 이별을 고하면서 자신에 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떠났다. 유기는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사면되어 돌아갈 수 있었으며, 이 일로 그를 수행한 공손찬은 고향으로 돌아와 효렴으로 천거되었다. 공손찬의 장인인 후태수(侯太守) 또는 고태수(故太守)와는 별개의 인물이지만, 동일인물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어서 삼국지연의의 판본에 따라서 공손찬을 소개할 때 공손찬의 장인과 동일인물로 나온다. == 미디어 믹스 == 소설 삼국지 속으로에서는 공손찬과 공손월의 대화에서 공손찬이 직접 장인이 자신을 관리로 뽑았고 비리에 연좌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장인과 동일인물로 나오는 유기를 따라 일남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을 알아준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경한 삼국지]]에서는 유기 때문에 공손찬이 '''살아있는 채로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는''' 진풍경을 경험했다. 그러고 나서 유기와 그를 수발하는 공손찬이 일남으로 향했는데 가던 도중 죄가 풀려 다시 요동으로 되돌아갔다. [[삼국지톡]]에서는 눈길에서 공손찬에게 업혀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자신을 따라온 공손찬에게 미안하다면서 자기 때문에 고생한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공손찬이 먼 길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유기(삼국지), version=98, paragraph=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