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유 퀴즈 온 더 블럭)] [include(틀:유 퀴즈 온 더 블럭)] [목차] == 개요 ==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03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 첫 번째 참가자: 조명신 == {{{#!wiki style="border:2px dashed #07A37B;border-radius:0px;background-color:#F2F2F2;padding:12px"{{{}}}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체 부위인 ‘이것’의 색상으로 신분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왕족들은 ‘이것’에 진한 적색을 칠했으며, 신분이 낮을수록 색이 점점 옅어졌다고 하는데요. 예로부터 ‘이것’만 보고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 하여 우리 몸의 작은 거울로 비유되기도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 {{{#!folding [ 보기 · 닫기 ] || 손톱 || }}} }}} * 유퀴즈 곁청자다. 아내는 애청자지만 본인은 곁으로만 시청을 한다고.. * 1988년에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1999년부터 타투이스트를 시작했다. 겸업 생활한지 22년이 되었다고 * 타투이스트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1999년도 조폭들의 문신을 제거해주던 의사 자기님은 우연히 본 장미 타투에 반했고 손님에게 물어 봐서 직접 찾아가서 6개월 동안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실력이 없어서 돈을 안받았고 미국에서 6개원간 공부했다고... * 타투도 의료 행위인데, 의사가 해야한거 아닌가 생각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의사가 타투를 할 수 있음에도 하는 이가 없어서 본인이 처음으로 시도를 했다고.. * 가장 죄송했던 사연으로 초창기 호랑이 문신을 해야 하는데 고양이 문신을 했고 결국 미안해서 돈을 안받았다고 한다. * 90년대에는 주로 무서운 분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 의사와 타투이스트를 병행하는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가장 보람있는 에피소드로 백반증에 있는 제빵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당시 제빵사는 피부병으로 인해, 손님들에게 '제가 만든 빵이에요. 먹어보세요'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조명신 자기는 피부색과 같은 살색 문신도 해드렸다고 한다. * 조명신 자기는 남의 상처들을 보면 제발 못 본 척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나친 관심은 도리어 피해를 준다고... 이에 큰 자기도 왜 이렇게 말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나다면서 이야기에 공감간다고 한다. * 타투를 많이 받은 직업군은 위협을 받은 직업(군인이나 선원, 소방관)들이 주로 받는다고 한다. * [[9·11 테러]] 당시 순직한 소방관들의 이름을 새긴 분을 보고 소방관들에게 무료 타투를 봉사한다고 한다. * 소방관들은 화상이나 상처들을 가리는 다투를 한다고 한다. 이에 관한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를 전했다. * [[치매]] 노인 실종 방지 타투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며, 주로 이름과 자식들의 전화번호, 주민등록 번호를 세긴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가족들에게 타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에게 발목 문신을 했지만 싸우고 난 후 지워졌다고 한다. 또한 현장에 아내가 왔다. * 조명신 자기는 겸업이 도움이 많이 된고 원동력은 재미와 의미라고 한다. 성형수술은 쌍꺼풀은 3만건 이상 했고 아내 쌍꺼풀도 내가 해줬는데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내가 해드린 분들의 타투는 20년 동안 다 기억난다고 밝혔다. * 상품으로 받은 에어컨은 기부했다. == 두 번째 참가자: 핲기 == {{{#!wiki style="border:2px dashed #07A37B;border-radius:0px;background-color:#F2F2F2;padding:12px"{{{}}} ||흔히 다재다능하거나 다양한 매력으로 이미지 변신하는 사람을 이것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숲의 요정’이라 불리는 새로, 무지개와 같이 여러 가지 색의 깃털을 가진 것이 특징인데요. 천연기념물 204호로 지정된 이 새는 무엇일까요? || {{{#!folding [ 보기 · 닫기 ] || 팔색조 || }}} }}} * [[래퍼]], [[배우]], 법률사무소 사무장 3중 생활을 하고 있다. * 드라마에서의 사무장하고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큰 자기의 말에 그는 "사무장을 찾아간 느낌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법률 [[변호사]] 사무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변 상황을 전해 듣고 법리적인 대처가 가능한지 알아보거나 변호사님이 굳이 하기 싫은 일들을 도와주는 것이 사무장의 역할이라고 한다. * 원래 꿈은 음악을 한 거였지만 미국 방송을 보면서 미국 방송을 보고 처음 힙합을 접했는데 래퍼들의 생김새가 왠지 나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한국의 ‘[[투팍]]’이 되고자 래퍼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기획사에 데모를 돌렸고 한 대형 기획사에 갔지만 선호하는 외모가 아니라서 거절 당했다고 한다. 결국 좌절과 다짐을 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하다 군대에 가게 됐다고 한다. 제대 후 헬스 트레이너로 돈 벌었으나 교통사고가 나게 되었다. 어차피 다시 사는 인생 원하는 거 하자고 해서 32살 나이에 앨범을 냈다고 한다. * 독립영화를 포함해서 20여편이나 출연했다.[* 아버지가 이상해, 리멤버, 우리 갑순이, 투깝스 등 출연했다.] 배우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 따라 연예인 축구단 구경을 갔다가 영화관계자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 독립영화를 찍고 ‘26년’으로 상업영화 데뷔도 했다고 한다. 다만 이미지가 험악해서 조폭 역할이나 비스무리한 전문 배우로 활동한다.[* 심지어 분장도 안했다고 한다.] 배우로서 하고 싶은 역할로는 정육점 아저씨나 순정남을 맡고 싶다고 한다. * 2017년 [[백상 예술 대상]]에서 한 공연이 화제가 된 바 있다. * 현재 8년차 사무장인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곡 작업 중 트로트 앨범을 준비하던 변호사 형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사무실을 개업한다면서 사무장을 제안하더라. 다행히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8년차까지 근무를 하게 됐다고 한다.] 법률 사무장이 되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 변호사 겸 트로트 가수인 한승훈이 직접 왔고 하게 된 일과 업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같은 래퍼지만 이해가 안가는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 모범 납세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 세 번째 참가자: [[신계숙]] == {{{#!wiki style="border:2px dashed #07A37B;border-radius:0px;background-color:#F2F2F2;padding:12px"{{{}}} ||19세기 [[유럽]]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자 향신료인 이것을 소독약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악취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 여겨져 향이 강한 이것으로 소독한 것인데요. 과거 실크로드와 중국을 통해 전해져서 호국의 산초라 불렸던 이 향신료는 무엇일까요? || {{{#!folding [ 보기 · 닫기 ] || [[후추]] || }}} }}} * ‘N중생활의 끝판왕’인 신계숙 자기님은 [[단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식품학을 전공했으며, 하루 14시간씩 뜨거운 불 앞에서 조리하는 [[중국 요리|중식]] 요리사이자 [[배화여자대학교]] 조리학과 대학교수로 활약 중이다. 뿐만 아니라 색소폰, 기타, 드론 등의 취미 생활은 물론, 최근에는 모터사이클의 매력에 푹 빠져 바이커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으며, EBS에서 프로를 진행중이다. * EBS 세계 테마 여행 중국편에 출연한 바있다. * [[오토바이]]를 타게 된 계기에 이야기했다. '타던 것도 관둬야 하는 나이'라며 모두가 만류할 때, 오히려 신계숙 자기는 "앞으로 못 하는 일이 더 많아지겠구나. 그러면 오늘 당장 하자"라며 과감하게 뛰어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할리가 아니라 125cc 오토바이를 탔으나 바람 부니까 스쿠더가 넘아질려고 해서 1200cc로 바꿨다고 한다.[* 참고로 바이크 가격이 2,200만원이라 가격을 밝혔다.] * 스쿠더 탈때의 원칙이 있는데, 시장 갈 때는 스쿠터를 탄다. 사람 만날 때는 할리를 탄다고 한다. 이유는 멋있다는 이야기를 3번은 듣는다고... * 오토바이를 탈 때 기분을 묻자 “하늘을 나는 느낌이다.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다. 이걸 타고 내리면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라며 말했다. * 현재 EBS에서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에 출연 중인데, 5060대의 여성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얻으며 꽃중년 아이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 중문학과에 가게 된 계기는 "여자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교육 지침에 따라 한자 교육을 받았고 14살때 서울로 유학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자리를 못잡았지만, "내가 대학교 때부터는 인생을 달리 살아봐야겠다, 내가 잘하는 걸 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3수를 한 끝에 중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 중식 요리사가 된 계기는 교수님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내가 [[중국 요리]]를 하기엔 적합한 사람이라고 보인 게 아닐까"고 생각했다고 한다. * 이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향방 선생님의 가게를 소개를 받아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요리를 안 배우고 닭발 발톱을 자르는 일만 했고, 배우겠다고 하자 "여자들이 주방에 들어가기엔 매우 힘든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는 주방에서 8년간 견뎌서 [[튀김]] 2만 접시를 튀겼다고 한다. * 주방일을 하다가 몸에 데여서 오빠와 갈등으로 군인 담요 하나만 가지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이후 식당에서 숙식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 신계숙 자기가 가장 잘하는 [[중국 요리]]로는 [[동파육]]이라고 꼽았다. * 대학 교수가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방송에 입문한 계기는 5년 전 한 프로덕션에서 중국 음식계통 한 사람을 찾는다고 연락을 받았고 황석정, 김풍과 사천 지역 여행을 1주일 다녀왔다고 하는데, 이게 방송활동의 시작이 됐다. 신계숙 자기는 "방송이 어떻냐"는 말에 “할수록 어렵더라. 늘 멘트를 생각해야 하고.”라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 프로에선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 서울에 오면서 인생에 대한 중대 결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울다가 인생에 대해 평생 혼자 있겠다며 마음 속에 선언했다고 한다 * 이중생활을 하게 된 원동력으로 호기심을 꼽았으며, “인생 1막은 요리, 2막은 학문, 3막은 오토바이”라고 정리했다. == 마지막 참가자: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 == {{{#!wiki style="border:2px dashed #07A37B;border-radius:0px;background-color:#F2F2F2;padding:12px"{{{}}} ||매년 [[영국]]의 [[버킹엄 궁전]]에서는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여하는 ‘이 상’의 시상식이 열립니다. ‘이 상’은 [[노벨상]]에 종교 부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영국의 사업가가 만든 상으로 1973년 1회 수상자는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 수녀였는데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은 무엇일까요? || {{{#!folding [ 보기 · 닫기 ] || 템플턴상 || }}} }}} * [[가톨릭]] [[http://www.claret.or.kr|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수도자|수도사제]] 겸 ‘어쩌다’ [[김치찌개]] 밥집 사장 * 식당에 대해 "청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 식당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서울]] [[대학로(서울)|대학로]] [[고시원]]에서 생활하시던 청년이 생활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일이었다. 그 뉴스를 본 수녀님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 식당에 설립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가격 선정에 대해서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라고 하면, 청년들이 무료 식당에 가는 순간 자기가 어떻다는 걸 드러내 부담돼서 못 올 수가 있어, 부담없이 올 수 있도록 무료 대신 저렴한 가격을 택했다"고 한다. *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만 있고 가격은 1인분에 3,000원, 공깃밥은 무료, 추가 사리는 천원씩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 "너무 가격이 싸서 운영이 되냐"는 질문에 매해 "적자가 왔지만[* 처음 계산 할때 매달 30만원씩 오면 적자없이 일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적자라고 한다.] 그래도 주변의 손길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식당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했는데, 거기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 기억에 남는 손님은 식당의 취지를 알게 된 대학생이 무료 봉사를 해준 일이라고 한다.[* 그 학생은 2020년 9월 달까지 봉사하다가 졸업했다. 이후 좋은 곳으로 취직했다고 한다.] * [[가톨릭]] [[신부(성직자)|신부]]가 된 계기를 설명했다. 본래는 3수를 했고 명문대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피정에 갔다온 후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전부 성당에 다니지만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다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서 2년간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지만 2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결국 아들의 [[성품성사|사제서품식]]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 직업병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는데,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면 3천원에 팔까 생각한다고 한다. 신부로서는 별다른 점은 없으나, 뜬끔없이 경건한 말을 한다고 한다. * 받은 상금 100만원은 청년들을 위해 100만원 만큼 제공한다고 했고 제작진과 ppl 업체의 회의 결과 특별히 자기백에서 상품을 뽑아 4도어 [[냉장고]]를 받았다.[* 본래는 [[김치냉장고]]를 원했다.] == 기타 == * 은밀한 이중생활 특집. * 지난 주 PPL 이후 남은 상품을 큰 캡슐에 담았다. * 교촌치킨 CF가 들어와 오랫만에 점심 식사를 찍었다. [[분류:유 퀴즈 온 더 블럭/시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