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역사)] [목차] == 소개 == 虞 [[중국]]의 [[주나라#s-1|서주]] 시대와 [[춘추시대]]에 존재했던 나라. == 역사 == [[무왕(주)]]은 할아버지([[주문왕]]의 아버지 계력)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 큰할아버지 태백(太伯)과 작은할아버지 중옹(仲雍)의 자손을 찾아다녔다. 마침 당시 [[오(춘추시대)|오]](吳)나라 군주였던 [[주장(오나라)|주장]](周章)을 찾아내서 그의 동생 우중(虞仲)을 봉해 우나라가 되었다. 작위는 [[공작(작위)|공작]]이었는데 지금의 [[산서성]] 평륙현에 있었다. 주나라 초기에 [[예#s-11|예]](芮)나라와 영토를 두고 싸우기도 했다. [[춘추시대]]에는 [[진(춘추오패)|진]](晉)과 괵(虢)[* [[괵#s-3|서괵]](西虢)을 말함.] 사이에 위치한 소국이었는데, 인접한 소국 괵(虢)과 가까웠지만, 기원전 655년 진(晉)의 [[가도멸괵]] 작전으로 멸망했다. 진나라가 우나라에 사자를 보내 단지 괵나라만 칠 뿐이니 길을 열어달라며 재물을 가득 보낸 것이다. 우나라 공은 재물에 눈이 멀어 기꺼이 길을 열어주려고 했는데, 궁지기(宮之奇)라는 신하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간언을 하며 결사반대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우공은 결국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주었고 궁지기는 식솔을 데리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그리고 궁지기의 예측대로,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면서 우나라를 통과하던 진나라 군은 갑자기 우나라마저 공격하여 이 나라를 멸망시켰다. 재물에 눈이 멀었던 우나라 공은 포로가 되어 거지 꼴로 진나라로 압송되어 머나먼 한지로 유배됐고 거기에서 비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 여담 == 당시 우나라에서 진(晉)의 속셈을 알아챈 신하는 궁지기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그 신하는 자기가 간해도 임금이 듣지 않을 줄 알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우나라가 멸망한 뒤 우여곡절 끝에 진(秦)에 들어가 벼슬을 했는데, 그가 바로 [[진목공]]을 도와 패업을 달성하고 그 이후부터 진나라는 확고한 강국으로 자리잡게 한 오고대부 [[백리해]](百里奚)다. 결국 우나라가 멸망한 덕택에 진(晉)이 가장 이익을 본 듯하지만, 사실은 [[진(통일왕조)|진]](秦)이었던 셈.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우, version=68)] [[분류:주나라의 제후국]][[분류:공국(공작)]][[분류:기원전 7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