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王歡 (? ~ 384) [[전연]]의 인물. 자는 군후(君厚). 기주 낙릉군(樂陵郡) 출신. . == 생애 == 왕환은 안빈낙도하면서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학문에만 심취해 있었는데, 그 때문에 항상 먹을 것을 구걸하면서도 《시경》을 외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왕환의 처는 이런 남편을 한심하게 여겨 당장 책을 불태워버리지 않는다면 개가하겠다 말하니, 왕환이 웃으며 > "당신은 [[복수불반분#s-3|주매신(朱買臣)의 처]]에 대해 듣지 못 한 것이오?" 라 말하였다. 이후로도 왕환은 공부를 계속하여 유학에 통달하게 되었다. 광수 4년(360년) 정월, 전연의 태자 [[모용위]]가 황위를 계승했으나 나이가 어려 대사마, 태원왕 [[모용각]]의 보정을 받았다. 이때 왕환은 국자박사에 임명되어 친히 황제인 모용위를 만나 경전을 가르쳤고, 이후 국자좨주로 승진하였다. 건희 11년(370년) 11월, 전연이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의 선소제 [[부견]]이 보낸 군대에 패망하고, 유제 모용위는 업(鄴)에서 나와 전연의 문무관원들과 함께 전진에 항복하였다. 부견은 전연의 관리들 중 쓸만한 이들을 선발해 그대로 전진의 관리로 등용하면서 왕환은 국자좨주 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건원 20년(384년) 12월, 선소제 부견이 100만 대군을 일으켜 [[동진]]을 정벌했다가 [[비수대전]]에서 대패하였다. 이 패전으로 동진의 명재상 [[사안(동진)|사안]]은 북벌을 실시하고, 전국 각지에서 적들이 들고 일어나자, 모용위는 장안(長安)에서 반란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내 부견에게 발각되었고, 여기에 왕환도 연루되어 모용위와 같이 살해당했다.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384년 사망]][[분류:중국의 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