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 헌제의 어머니, rd1=영회황후 왕씨)] [목차] == 개요 == 王營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청주 동래군 동모현 사람으로 무리 3천여 명을 이끌고 창양현을 협박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하기(삼국지)|하기]]가 사람을 보내 계책을 주면서 흩어지게 만들어 10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 창작물에서 ==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 천하가 [[헌제]]를 따르는 세력과 헌제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데, [[진궁]]이 일찍이 청주에 진군할 것을 대비해 그 곳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한다. [[원소(삼국지)|원소]]가 유주의 [[공손찬]]을 공격하기 위해 청주를 쥐어짜자 종전과 함께 언급되는데, 왕영은 3천이 넘는 장정을 이끌고 [[원술]]군에 가담하겠다고 [[왕수(삼국지)|왕수]]에게 알렸다. 왕영이 내응하기로 한 동모현은 종전이 있는 모평현과 함께 동래군에 속한 현으로 동래군이 [[태사자]]의 고향이라 태사자를 보고 원술군에게 가담하겠다는 백성이 많았다고 언급된다. 이를 듣고 역사에 대해 아는 이준경은 어쩌면 이리도 역사와 연계되냐면서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승리하고 원소의 옛 땅을 차지하는 과정이 무려 칠 년을 소요했다면서 원소와 조조의 행정력이 교체되는 공백을 노려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왕영은 [[종전(삼국지)|종전]]과 함께 그 중 한 무리라고 생각으로 언급했다. [[분류:몰년 미상]][[분류:후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