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모자)] || [[파일:external/kongming.net/ZhugeLiangYounger.jpg]] || [[파일:external/kongming.net/ZhugeLiangOlder.jpg]] || ||<-2> 삼국지 시리즈 11편에 등장한 제갈량. 제갈량이 쓴 모자가 와룡관이다. || [목차] == 설명 == 臥龍冠. [[동아시아]]의 전통 모자 중 하나로, 중심이 높으면서 세로로 골이 진 형태를 띄고 있다. 본래는 실을 엮어 만들었다 하여 '벼리[* 그물 코를 꿴 굵은 줄.] 윤(綸)' 을 써 '윤건(綸巾)'이라 했는데, [[중국]] [[삼국시대]]에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주로 쓰고 다녔다 하여 그의 별호 '와룡(臥龍)'에서 따와 와룡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간혹 그의 성을 따 '제갈건(諸葛巾)'으로도 부른다. 한국에는 조선시대에 들어왔는데, 이 때 전해진 와룡관은 대나무로 만든 실로 짜거나 혹은 말총을 엮어 바나나 다발 같이 만든 검은색 관이었다. 주로 [[사대부]]들이 평상시 집에서 일상을 보낼 때 쓰던 관으로 거의 도포와 세조대[* 조선시대 남자들이 겉옷을 여미는데 사용했던 실 띠 중 하나. '세조아', '사대'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를 [[세트]]로 착용한다. || [[파일:와룡관을 쓴 신임.jpg|width=300]] || [[파일:attachment/f0043889_4f9e9681869af.jpg|width=240]] || || 와룡관을 쓴 조선 후기 문신 신임. || 와룡관과 [[심의#s-2|학창의]]를 착용한 [[흥선대원군|흥선대원군 이하응]]. || 간혹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착용되었는데 [[조선]] [[영조]] 시대의 문신인 홍계희(洪啓禧)가 집필한 ≪해행총재≫에 통신사로 일본에 간 사신 중 부사(副使)가 학창의에 와룡관을 쓴 기록이 보인다. 또한 와룡관의 본 고장이던 중국은 청나라 이후 한족 전통 복식문화가 단절되다시피 하여 와룡관 역시 거의 착용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실학자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와룡관을 쓴 채 한 청나라 관리의 집을 찾아가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옷과 모자를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출처: 고종 21년 남원부 유생 이흥우(李興宇)의 상소문.]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제갈량(삼국지 시리즈), version=162, paragraph=1, title2=흥선대원군/생애, version2=35, paragraph2=1, title3=명나라, version3=449, paragraph3=5.1)] [[분류:한복]][[분류: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