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 温恢 (179 ~ 223)[* 온회는 양주자사에 임명되었다가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전임 양주자사인 [[장기(삼국지)|장기]]가 223년에 재임 중 사망한 것으로 보면 온회가 죽은 해 역시 이 해일 것이다. 참고로 『위서』의 「문제기」에는 온회의 사망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목차] == 개요 == [[후한]] 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위(삼국시대)|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만기(曼基)로 병주 태원군 기현 사람이다. == 생애 == 아버지 온서는 탁군태수를 지내다가 온회가 열다섯 때 죽었는데 갑자기 온회가 "세상이 어지러운데 어째서 우리집은 부유한 것이오!"라고 외치고는 모든 재산을 분할하여 종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진정한 기부천사~~[* [[손례]]와 마이와의 일화에서도 그렇고 인간적이었다.] 그런 그의 행위로 인해 고결하다고 유명해지고 순월에 비견되기도 하였으며 조정에 발탁되어 승상주부가 되었고 밖으로 나와서는 양주자사가 되었는데 거기서 조조는 [[장료]]와 [[악진]]에게 "양주자사는 군사적인 일에는 통달하였으니, 모두 그와 함께 상의하여 행동하시오."라고 말한다. 219년 [[손권]]이 합비를 공격하자 온회는 >이 시기는 비록 적이 있지만 걱정할 가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남방을 정벌하는 군사에게 변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강물은 불어나고 [[조인|조자효]]는 적지 깊숙이 들어가 고립되어 장래의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우]]는 용맹하여 전쟁을 잘 하므로, 승기를 잡아 진군해 오면 반드시 근심이 될 것입니다. >---- >온회전, 자치통감 한 마디로 손권 저놈은 걱정거리도 아니지만 조인한테는 지원군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는 무사태평하게 있는 [[배잠]]과 [[여공(조위)|여공]] 등을 불러 말한다. >이것은 분명 양양에서 위급한 상황이 나타난 것이니 달려가야만 합니다. 급히 회합을 하지 않은 이유는 먼 곳에 있는 백성들을 놀라게 하여 동요시키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루 이틀 동안에 반드시 밀서가 있어서 그대에게 서둘러 오게 할 것이고, 장료 등도 소집될 것입니다. [[장료]] 등은 평소 [[조조|군왕]]의 마음을 알고 있으므로, 후에 불릴지라도 먼저 도착할 것입니다. 그대는 죄를 받을 것입니다! 온회는 이처럼 장료의 생각을 미리 파악하여 장료는 명령을 받기 전에 출발할 것이니 그보다 명령을 먼저 받은 우리라 하더라도 장료보다 늦게 도착해 벌을 받을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한다고 한다. 배잠은 그 말을 듣고 군용물자를 남겨놓고 가벼운 복장으로 바꾸고 빨리 출발하였는데 재촉하는 말을 듣고 겨우겨우 도착하여 벌을 면하게 된다. [[조비]]가 즉위하자 시중이 되었고 밖으로 나가 위군태수가 되었고 승진하여 양주[* 위에 나온 양주는 揚州, 이 양주는 凉州이다. 즉, 흔히 서량이라고 부르는 그 곳이다.]자사, 지절, 영호강교위가 된다. 그러나 도중에 병들어 죽는데 그 때가 45살이었다. 그가 죽을 때 내린 조서가 남아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온회는 국가의 중임을 맡을 능력이 있어서 선제를 위해 복무했고, 공로와 수고는 탁월했다. 짐을 위해 일을 맡았을 때, 왕실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만리 밖의 임무를 주어 그로 하여금 한쪽의 정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무엇 때문에 중도에서 죽었나? 나는 이 점이 매우 비통하다. == 후사 == 온회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육룡(六龍)'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 중 오늘날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온생(溫生)과 온공(溫恭) 뿐으로, 온생은 관내후로 작위를 이었으나 요절했으며, 온공은 제남태수를 지냈다. 온공의 아들 [[온선]](溫羨), 그 조카인 온교(溫嶠)는 각각 서진과 동진에서 고관을 역임했다. == 미디어 믹스 == || [[파일:external/kongming.net/248-Wen-Hui.jpg]] || || 삼국지 10, 11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062.jpg|width=400]] ||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10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대체로 준수한 내정요원. 남아 있는 기록의 양에 비해 고평가를 받은 인물로, 매우 뛰어난 치적을 세운 목민관인 [[유복#s-2]], [[두기(삼국지)|두기]]에 버금가는 능력치의 내정관으로 등장한다. 또한 조조가 온회를 군사에 통달했다고 평가한 일화 및 배잠과 여공에게 해 준 조언이 정확했다는 점이 반영되어 통솔도 문관 중에서는 높다. 물론 한 지역의 장이었고 그 짧은 기록이 모조리 좋은 기록 뿐이라 근거없는 편애성 고평가라고 하긴 힘들다. [[삼국지 10]]에선 통솔력 42/무력 40/지력 78/정치력 85/매력 73의 능력치에 명사 특기도 있고, 상업, 기술 특기는 준수한 지력, 정치를 살릴 수 있는 특기. 후방에서 내정셔틀로 써도 좋고 태수로 위임시키면 든든한 보급처가 된다. 하지만 조조가 군사면에서 통달했다고 말한 부분에 비해 통솔 부분이 심히 박하게 나온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상업, 기술, 보수, 치안, 고무, 저지, 지리, 항변, 명사. 총 9개다. [[삼국지 11]]에서도 전작과 달리 통솔이 20 더해진 통솔력 62/무력 36/지력 73/정치력 86/매력 76의 능력치로 나온다. 특기는 [[능리]]이며, 합비에서 물량이 딸려 고생한 것과는 달리 게임 상에서는 물량빨로 손제리를 찍어누를 수가 있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매력이 삭제된 것을 빼면 11과 동일하며, 전방어강화라는 꽤 좋은 전법을 가지고 나와서 전장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일러스트는 오른쪽 손가락을 위로 올리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2/36/74/86. 특기는 농업 3, 문화 3, 설파 4, 교섭 5. 전수특기는 교섭으로 전법은 공격명령.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2, 무력 36, 지력 73, 정치 86, 매력 73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진흥, 능리, 부호, 주의는 왕도, 정책은 호적정비 Lv 4, 진형은 학익, 정란, 투석, 전법은 저지, 정란, 투석, 구축, 친애무장은 [[맹건]], [[장제(조위 태위)|장제]], 혐오무장은 없다. [[창천항로]]에서는 키 작은 대두로 나온다. 심각하게 큰 대두로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합비 공방전에서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장료]]가 오군을 공격하며 오나라 공포의 대상으로 격상되자 [[이전(삼국지)|이전]]과 함께 장료로 분장해 적진을 돌파하면서 료라이라이를 외치나 체형이 체형인지라 아무도 속지 않자 [[여몽]]을 도발한다.[* 단순히 도발만 하는게 아니라 분노한 여몽의 공격을 권법으로 흘려보내 버린다.] [[분류:한나라 주자사]][[분류:조위의 인물]][[분류:179년 출생]][[분류:22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