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1000013438.jpg]] [목차] == 개요 == 오귀스트 앙투안 피카르(Auguste Antoine Piccard, [[1884년]] [[1월 28일]] ~ [[1962년]] [[3월 24일]])는 [[스위스]] 태생의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탐험가]]이다. == 생애 == 피카르는 [[스위스]] [[바젤]]에서 장 피카르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피카르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공부하여 [[1922년]]에 [[벨기에]] [[브뤼셀]]의 [[브뤼셀 자유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같은 해 아들 자크 피카르가 태어났다. 피카르는 [[1922년]], [[1924년]], [[1927년]], [[1930년]], [[1933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했다. === 업적 === [[1920년]]에 피카르는 [[기구]]에 관심을 가지고, 상층 대기를 기구를 이용해 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피카르는 여압복을 입지 않고 대기 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볍고 튼튼한 [[알루미늄]]을 재료로 삼아 밀폐된 구형 곤돌라를 설계했다. 피카르는 [[솔베이 회의]]에서 만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상층 대기에서 우주선을 측정하려고 했다. 피카르는 자신이 설계한 기구를 FNRS 1호라고 명명했다. [[1931년]] [[5월 27일]], 오귀스트 피카르와 파울 카이퍼(Paul Kipfer)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륙하여 성층원 고도인 15,785m까지 상승했다. 이때 피카르는 [[우주선]]을 측정할 뿐만 아니라 초고층 대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를 수집했다. [[1932년]] [[8월 18일]]에 피카르는 스위스 [[뒤벤도르프]]에서 조수 맥스 코신스(Max Cosyns)와 함께 두 번째로 이륙하여 16,200m 고도까지 상승함으로써 자신들이 세운 기록을 경신했다. [[1930년대]] 중반, 오귀스트 피카르는 자신이 고고도 기구용으로 설계한 기밀 기술이 [[심해]] 환경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1937년]]에 피카르는 엄청난 외부 압력에 견딜 수 있는 초심해 잠수정 바티스카프를 설계했으나, 얼마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실물을 제작하지는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 피카르는 바티스카프 FNRS 2호를 제작하여 여러 번 무인 잠수 실험을 했다. 이 잠수정은 [[프랑스 해군]]에 넘어갔다. 프랑스 해군으로 넘어간 FNRS 2호는 [[1954년]]에 개수되어 4,176m 깊이까지 안전하게 잠수했다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 [[1953년]], 피카르는 아들 자크 피카르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심해저로 잠수한 바티스카프 [[트리에스테]]를 설계했다. 트리에스테는 [[1959년]] 10월에 자크 피카르를 태우고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 10,911m 깊이까지 잠수했다. 이 기록은 [[2019년]]까지 깨지지 않앆다. 생애의 대부분을 파란만장한 모험과 실험에 바친 오귀스트 피카르는 [[1962년]], [[벨기에]]에서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 기타 == [[에르제]]의 만화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해바라기 박사]]가 오귀스트 피카르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분류:극지탐험가]][[분류:해양탐험가]][[분류:스위스의 탐험가]][[분류:스위스의 발명가]][[분류:스위스의 물리학자]][[분류:취리히 대학교 출신]][[분류:바젤 출신 인물]][[분류:1884년 출생]][[분류:196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