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예산 장신리 미륵불.jpg]] [목차] == 개요 == 禮山 長信里 彌勒佛. [[조선]] [[세조(조선)|세조]] 11년(1465)에 왕명으로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長信里)의 관민들이 제작한 600년 전 한국의 석각미륵불. 현재 석불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여 소장처는 명확하지 않다. == 내용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 예당저수지 근처 하동해마을에 서 있는 [[한국]]의 고전 미륵불로, 세로 257 cm, 가로 170 cm인 [[바위]]에 음각해 만들었으며 불상의 크기는 높이 180 cm, 폭 65 cm이다. 불상에 '성화 원년(成化元年)'이라는 글귀가 있어서 조선 세조 11년(146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에 풍화되었고 [[숭유억불]] 때문에 한번 갈린 흔적도 있어서 불상과 글자의 마모가 상당히 심하다. 명문 판독에 따르면 1465년에 관의 지원 하에 마을의 [[승려]]들과 백성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으며, 마을의 수호와 안녕, 서로의 화목을 위해 조성하였다. 이 미륵바위에는 아래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먼 옛날에는 바닷물이 마을까지 들어 왔는데 마을에 살던 [[어부]]가 배를 타고 나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않자, 어부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며 서 있다가 결국 돌이 되었다. 미륵바위 머리 뒷부분이 약간 평평한데, [[아들]]을 낳기를 원하는 부인이 이곳에 돌을 세 개 얹어 놓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전한다. 600년 전에 만들어진 석각 불상으로 15세기 중반, 조선 세조 제위시기 한국의 조형사, 미술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소유권 분쟁 == || [youtube(OUgaWHAViTo)] || 이 불상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불상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과 쌍지암 승려들이 수년에 걸쳐 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물리적 마찰과 [[포크레인]] 등이 동원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05484&cid=63071&categoryId=63112|향토문화전자대전 : 장신리 미륵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42623&cid=40942&categoryId=37404|두산백과 : 예산 장신리 미륵불]] *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603251844484710|궁금한이야기Y, 예산 장신리 미륵불 쟁탈전..주지스님이 왜?]] [[분류:예산군의 문화재]][[분류:조선의 불교]][[분류:충청남도의 불상]][[분류:석조 불상]][[분류:미륵불상]][[분류:입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