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미얀마의 역사)] [include(틀:대영제국의 식민지)] ||<#c8102e><-4><:>{{{#ffffff {{{+1 '''버마 식민지'''}}}[br] '''Colony of Burma'''[br]'''မြန်မာကိုလိုနီ'''}}} || ||<-3> {{{-2 {{{#000,#fff [[대영제국|{{{#000,#fff 대영제국}}}]]의 [[식민지|{{{#000,#fff 식민지}}}]]}}}}}} || ||||<:><-2> [[파일:영국령 버마 기.svg|width=150]] ||||<:> [[파일:영국령 버마 국장.svg|width=120]] || ||<-2><:><#c8102e> {{{#ffffff '''국기'''}}} ||||<-2><:><#c8102e> {{{#ffffff '''문장'''}}} || ||<-4><:> [[파일:영국령 버마 위치.png|width=250]] || ||<#c8102e><-4><:> {{{#ffffff '''1824년 ~ 1948년'''}}} || ||<#012169><-2> '''{{{#fff 분리 이전}}}''' ||<#012169> '''{{{#fff 멸망 이후}}}''' || ||<-2><#c8102e> '''[[인도 제국|{{{#ffffff 영국령 인도}}}]]''' || '''[[버마 연방|{{{#2042a1 버마 연방}}}]]''' || ||<#012169><:> {{{#ffffff '''국가'''}}} ||||[[God Save the King]] || ||<#012169><:> {{{#ffffff '''위치'''}}} ||||[[미얀마]] || ||<#012169><:> [[수도(행정구역)|{{{#ffffff '''수도'''}}}]] ||||[[양곤|랑군]]|| ||<#012169><:> {{{#ffffff '''정치체제'''}}} ||||군주제 || ||<#012169><:> {{{#ffffff '''국가원수'''}}} ||||명목상: 황제[br]사실상: 부왕 겸 총독 || ||<#012169><:> [[언어|{{{#ffffff '''언어'''}}}]] ||||[[영어]], [[버마어]] 등 || ||<#012169><:> [[민족|{{{#ffffff '''민족'''}}}]] ||||[[영국인]], [[인도인]], [[버마족]], [[샨족]], [[카렌족]], [[싱할라족]], [[네팔인]] 등 || ||<#012169><:> [[종교|{{{#ffffff '''종교'''}}}]] ||||[[힌두교]], [[이슬람]], [[시크교]], [[불교]] 등 || ||<#012169><:> {{{#ffffff '''주요사건'''}}} ||||1826년 성립[br]1937년 [[인도 제국]]에서 분리[br]1948년 [[미얀마]]로 독립 || ||<#012169><:> {{{#ffffff '''통화'''}}} ||||영국령 버마 루피 || [목차] [clearfix] == 개요 == 1937년 [[버마인]]들이 영국으로부터 자치를 허용해달라고 하여 만들어진 [[대영제국]]의 [[식민지]]이자, 영국 식민지 시대 전반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 역사 == [[꼰바웅 왕조]] 시절 [[미얀마]]는 18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강력한 국가 중에 하나였으나, 지배층은 외국과의 교류를 많이 하지 않다 보니 서방의 식민침략 야욕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당시 대영제국은 청나라 침략을 위해 미얀마를 전략 요충지로 봤는데, 마침 1820년대 초에 버마군이 국경 근처의 반란을 진압하자 그 지역 사람들이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영국령 식민지인 [[인도 제국]]으로 탈출하자, 이들은 인도를 침략하게 된다. 이에 영국군은 버마에 [[영국-버마 전쟁|선전포고]]를 내려 1824년부터 2년간 [[제1차 영국-버마 전쟁|첫 전쟁]]을 벌여 물메인 지방을 뺏었고, 1852~1853년 [[제2차 영국-버마 전쟁|2차 전쟁]] 때는 저지대 삼각주를, 1885년에는 [[제3차 영국-버마 전쟁|고지대를 점령]]하면서 미얀마를 병합하여 인도 제국의 한 주로 편입했다가, 1937년부터 [[신인도통치법|인도 제국에서 분할]]되어 별도로 통치했다. 식민지배 시절부터 영국은 먼저 왕정제와 신분제를 없앤 후, 옥좌를 인도 제국 콜카타박물관으로 뺏어갔다. 종족 간 생활권을 무시한 채 멋대로 국경선을 난자하는 한편 소수민족들에겐 자치권을 부여했고, 경찰과 군인 자리까지 줬다. 반면 주류민족인 [[버마족]]에겐 직접통치를 시행해 차별정책을 펴서 민족 간 갈등을 부추겼다. 또 인도인들을 대거 받아들여 경제까지 인도인이 장악하게 만들어서 랭군 전체 인구 중 2/3를 외지인이 장악했고, 이 중 53%가 인도인이며 국토 전체로 보자면 1931년 기준 전체 인구의 7%였다. 영국은 미얀마를 산업화하지 않고 버마족과 꺼인족을 시켜 삼각주 지역을 최대의 곡창 지대로 만들어 1930년대에 세계 쌀 수출국 1위로 만들었는데, 이는 여타 식민지가 그렇듯 이익은 영국 식민당국이 가져가는 전형적인 수탈경제의 구조였다. 이때 사야 산(Saya San)이란 사나이가 나타나 1930년 10월 28일 랑군 근처 인세인에서 스스로 왕이라 일컫고 12월 22일 밤 반영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는 착취와 민생고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이라와디강]] 삼각주 일대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거의 농민으로 이뤄진 반란군은 칼과 창으로 무장했으며, [[의화단 사건]]처럼 부적과 문신이 영국군의 총탄을 막아주리라 생각했으나 그럴 리 없어서 1만 명이 넘는 반군이 사망했다. 샨 지방으로 도피한 사야 산 또한 1931년 10월 2일 체포되어 바 마우의 변호에도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16일 처형당했다. ||<:>[[파일:external/asiancorrespondent.com/AungSan.jpg|width=300]]||<:>[[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_Nu_portrait.jpg|width=200]]||<:>[[파일:General_Ne_Win_PM_of_Burma_1959.jpg|width=200]]|| ||<:>[[아웅 산]] (1915~1947)||<:>우 누 (1907~1995)||<:>[[네 윈]] (1911~2002). 중국계 [[화교]] 출신.|| 1930년대 들어 전 국토에 민족주의가 성행해 독립운동의 기운이 불타올랐는데, 독립운동의 주축이 버마족들이라 소수민족들과 독립 방향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버마족들은 불교와 사회주의, 반외세주의 3개 사상으로 무장한 특이한 구조를 만들어냈으며, 이들 중엔 일본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온 아웅산과 우누, 네 윈 3인방을 중심으로 한 '30인의 동지(Thirty Comrades)'가 가장 유명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영국은 일본에게 [[버마국|미얀마를 빼앗겼으나]], 1945년 5월 결국 일본군이 미얀마에서 완전 철수하면서 영국군이 돌아왔고, 영국 정부는 자신이 승전국이라는 이유로 독립을 시켜주지 않았다. 이에 반파시스트 인민민주동맹(AFPFL)과 미얀마 공산당, 소수민족 연합 등이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향후 주도권 장악 문제로 싸웠고, 이에 아웅 산이 영국 런던을 찾아가 영국 정부랑 협상을 벌여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1948년 1월에 [[미얀마|버마 연방]]으로 독립했다. == 출처 ==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17권: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37~41. [[분류:영국의 식민지]][[분류:미얀마의 역사]][[분류:20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