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4>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연미정.jpg|width=100%]]}}} || == 개요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에 있는 [[정자(건축물)|정자]]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강화8경 중에 하나다. == 역사 ==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1244년 고려 [[고종(고려)|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510년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하며, 현재도 연미정과 주변땅이 후손인 [[황씨|창원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있다. 후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손된 것을 1744년 유수(留守) 김시혁이 중건하였고, 1891년 조동면이 중수하였으며, 1931년 유군성의 특지로 보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6.25전쟁 때도 파손되어 전후에 중수하였고,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연미정 앞에 배가 머물던 곳이였고, 성곽과 성문을 복원한 것으로 보아 앞 쪽으로 나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강화로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였음을 짐작케 하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년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 특징 ==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정자에는 수령이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본래 느티나무가 두 그루였는데, 이 중 한 그루가 2019년 [[링링(2019년 태풍)|태풍 링링]] 때 부러져 버려서 한 그루만 남게 됐다. 그래도 밑둥에서 새 가지가 돋아나는 중이다.] 연미정은 월곶돈대의 내부에 있고 돈대의 남쪽으로 쌓은지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돌들로 축성을 하였고, 성문이 세워져 있는데 '''문루에는 현판이 없다.'''[* [[6.25전쟁]]때 사라졌다고 한다] 여러모로 참 파란만장하다. == 여담 == 연미정 앞에는 유도(留島)라는 섬이 있다. 남북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섬은 뱀으로 유명하다고. 무인도다 보니 철새와 야생동물의 천국인데 특히 뱀이 많기 때문. 1997년 북한에 발생한 홍수로 황소 한 마리가 떠내려왔고 이를 인지한 우리 당국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구출하였다. 이 황소를 ‘평화의 소’로 이름을 지었고, 제주도 우도 출신 암컷 소를 ‘통일 염원의 소’로 이름을 지어 결혼시켰다. 그 결과 1998년 11월 ‘평화통일의 소’를 낳았고 그 후로 많은 자손이 번성하여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고. == 관련 문서 == * [[삼포왜란]] * [[정묘호란]] * [[황형]] [[분류:강화군의 문화재]][[분류: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