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순양함]][[분류:해상 병기/세계 대전]][[분류:그리스군/군함]][[분류:1912년 출시]][[분류:이탈리아-그리스 관계]] [[파일:1912_Elli.png]] [목차] == 개요 == 엘리는 [[그리스 왕국]]이 [[제1차 발칸전쟁]] 당시 그리스가 승리했던 해전인 '''엘리 전투'''[* 또는 다르다넬스 전투]의 이름을 딴 [[방호순양함]]이다. == 제원 == || 운용 국가 || [[그리스 왕국]] || || 전장 || 98m || || 전폭 || 12m || || 높이 || 4.3m || || 표준배수량 || 2,149t || || 만재배수량 || 2,642t || || 최대속력 || 18kt(1940년까지), 26kt || || 무장 || 152mm 단장포 3기[br] 76mm 함포 2기[br] 40mm 대공포 3기[br] 기뢰 100개 수용 가능[br] 483mm 어뢰발사관 2기 || || 승원 || 238명 || || 기공 || 1911년 6월 14일 || || 진수 || 1912년 5월 9일 || || 준공 || 1913년 11월 || == 상세 == 엘리는 1913년에 완성되어, [[청나라]]가 미국에 주문한 [[자오허급 방호순양함]]중 3번함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으로 인해 구매를 취소한다. 완성함을 폐기시키고 싶지 않았던 [[뉴욕조선공사]]는 발칸 전쟁 이후 해군 확장 계획을 하던 그리스에 판매를 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겪는다. 이때 그리스는 총리였던 [[베니젤로스]]는 협상국을 옹호했고 국왕이던 [[콘스탄티노스 1세]]는 중립을 옹호하면서 국가 분열을 초래했다. 1916년 11월에 프랑스가 그리스를 압박하기 위해 그리스 함선들을 압수한다. 압수된 함선들은 1917년 6월 그리스가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기 전까지 [[에게해]]에서 호송 및 순찰임무를 수행했다. 그후 그리스 해군은 에게해에서의 협상국의 작전을 돕는다. 1920년에 [[요르요스 아베로프]] [[장갑순양함]]과 함께 프랑스에서 개장을 받았다. 이때 기뢰 부설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 침몰과 [[그리스 침공]] == 1940년 8월 15일 오전 8시 25분, [[성모 승천 대축일]] 행사를 위해 에게 해의 티노스 섬에 정박해 있던 엘리는 [[이탈리아 왕국]]의 [[스쿠알로급 잠수함]] "델피노[* 1930년 4월 27일 취역하었으며, 엘리를 격침시킨 이후 여객선 2척을 뇌격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항구 부두에 손상을 주는 것으로 끝났다. 1943년 3월 23일 호위선과 충돌하여 침수했다.]" 가 발사한 세 발의 어뢰 중 한 발을 보일러실에 맞고 화재가 난 후 침몰했고 이로 인해 수병과 하사관 9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다. 사건 후 그리스군이 어뢰의 파편을 조사한 결과 이탈리아군의 어뢰로 확인되었으나, 그리스 정부는 이탈리아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를 은폐했다. 문제는 1939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왕국]] 합병과 1940년 추축군의 [[프랑스 침공]]으로 [[이탈리아-그리스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황이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를 영국의 동맹국이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리스에서는 이탈리아가 엘리를 격침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는 그리스인을 단결시켜 [[그리스 침공]]에서의 강렬한 저항의 계기가 된다. == 함명의 계승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는 그리스 왕국에게 [[콘도티에리급 경순양함#s-2.4|두카 다오스타급 경순양함]]의 2번함 에우제니오 디 사보이아를 엘리의 침몰에 대한 배상함으로 넘겼고 1950년 6월 그리스 해군사령부겸 함대 총기함[* 해군사령부와 기함이 된 것으로 볼때 그리스가 엘리의 침몰과 그 이름에 얼마나 의미를 두는지 알 수 있다.] "엘리"로 취역한다. 그 후 1981년 [[그리스 해군]]은 네덜란드로부터 [[코르테나르급 호위함]]의 6번함 "피터 플로리스"와 7번함 "위트 드 위트"를 구매하고[* 추후 8척을 더 구매한다.] 6번함을 엘리급 호위함 1번함 "엘리"로 명명, 현재까지도 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