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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000, #2b2a2a, #2b2a2a, #000000)" '''{{{#!html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1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역대 폴라음악상 수상자)] [include(틀:역대 그래미 공로상 수상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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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 음악]]의 '''거장'''[* [[빠삐용]]을 비롯하여 [[그렘린]], [[오멘]], [[원초적 본능]], ~~[[오! 인천]]~~ 같이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제리 골드스미스]](1929~2004), [[007 시리즈]], [[늑대와 춤을]], [[아웃 오브 아프리카]] ,[[사랑의 은하수]] 같은 음악으로 유명한 [[존 배리]](1933~2011), [[닥터 지바고]], [[콰이 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모리스 자르(1924~2009) 같은 거장들도 유명했지만 이젠 모두 세상에 없기에... 사실상 생존한 인물 중에서 이 분에게 비벼볼만한 작곡가는 [[존 윌리엄스]] 말고는 없을 듯 하다.]이다. 굉장한 다작으로 유명한데, 지금까지 무려 '''500여 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들을 작곡했다.''' == 삶 == === 이력 === 1928년 [[11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로베르토 모리코네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해서 어릴 적부터 트럼펫과 음악 이론을 배울 수 있었다. 아홉 살 때 이미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개인적으로 트럼펫 레슨을 받을 정도였고, 열두 살 때 공식적으로 같은 음악원에 등록해 일종의 예비 과정인 하모니 프로그램과 트럼펫 전공 본과정을 차례로 이수했다. 이 기간 동안 트럼펫 외에 작곡과 지휘도 배웠고, 특히 작곡 지도 교수였던 전위파 성향의 작곡가 고프레도 페트라시(Goffredo Petrassi)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와 전쟁의 공포를 겪으며 매우 힘들게 공부해야 했고, 이때의 [[현시창]] 경험은 이후 영화음악가로서 작곡한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1946년에 트럼펫 전공으로 학위를 따서 졸업했지만, 작곡을 제대로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체칠리아 음악원 작곡과에 재입학해 페트라시에게 계속 배웠고, 이 기간 동안 가곡을 비롯한 소위 '순수음악'에 속하는 곡들을 작곡했다. 동시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방송음악 작/편곡으로 전후의 생활고를 타개하려고 했으며, 1954년에 작곡 학위를 따서 두 번째로 음악원을 졸업했다. 졸업 이듬해인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다만 이 [[뉴비]] 시절에는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본명을 쓰지 않고 이런저런 가명을 썼다. 동시에 이탈리아 국영 방송(RAI)의 경음악단에서 트럼페터와 작/편곡가로 활동하면서 대중음악 분야의 경험도 쌓았다. 하지만 순수음악에 대한 흥미도 잃지 않았고, 당시 이탈리아 전위음악의 선두 주자 중 한 사람이었던 프랑코 에반젤리스티가 주축이 되어 1964년에 결성한 '새로운 어울림음의 즉흥연주 그룹(Gruppo di Improvvisazione di Nuova Consonanza)'이라는 연주단의 일원으로도 활동하며 영화음악 분야의 통속성과는 판이하게 다른 현대음악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60년대 후반 [[북부독일방송]]에 의해 제작된 [[http://www.youtube.com/watch?v=L3IuNV3dCWY|이 그룹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평소 영화음악가로만 언급되는 이 아저씨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2분 15초부터 트럼펫으로 괴상하게 즉흥 연주를 하는 모리코네와 여타 그룹 멤버들의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모리코네는 세기를 넘긴 현재까지도 영화음악 외에 [[협주곡]]이나 오라토리오, 관현악곡, 실내악 등도 계속 작곡하고 있으며, 영화음악의 후광에 가려있던 이들 작품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뜨다 === 1964년에 동향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화 감독 [[세르조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황야의 무법자]]》의 음악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영화음악가를 푸대접하는, 그리고 지금도 왠지 모르게 남아있는 인식 때문에 댄 새비오라는 이탈리아계 성씨이긴 하지만 영어권 거주자 느낌을 주는 가명을 써야했다. 이후에도 리오 니컬스 같은 여러 가명을 쓰기도 했다. 하여튼 이 영화음악으로 알려진 명성으로 레오네와 맺은 인연은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석양의 갱들]]》 과 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이어졌다. [youtube(nOr0na6mKJQ)] 석양의 무법자의 클라이맥스에 사용된 'The ecstacy of gold', 시대를 타지 않는 걸작 OST이다. 마카로니 웨스턴 전성시대였던 1960년대 동안에는 레오네의 영화 외에도 여타 비슷한 계열의 영화들에서도 음악을 맡았고, 그 외에 전쟁 영화나 멜로 영화, 느와르풍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 물론 엘리오 페트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처럼 이탈리아 영화계 거장을 위한 곡들도 써줬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들에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엘리오 페트리랑 죽이 잘 맞았는지, 페트리가 감독하고 그가 음악을 맡은 '노동 계급은 천국에 간다'이나 '완전 범죄' 사운드트랙은 지금도 모리코네 단골 레퍼토리기도 하다.] 음악을 잘쓰기로 유명한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영화 음악으로 실제로 모리코네의 음악을 여러번 썼으며 여러번의 간청 끝에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됐지만 모리코네는 이후에 타란티노가 자신의 음악을 쓰는 방법과 그의 영화의 폭력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는 그와 작업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 후 타란티노 감독의 후속작 [[헤이트풀 8]]에서 다시 작업을 하게 되었다. 타란티노와 같이 작업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깬 데에는 사모님의 역할이 컸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모리코네에게 보낸 시나리오를 쳐다보지도 않자, 대신에 그의 부인에게 대본을 전달한 것. 후에 모리코네는 그 일을 회술하며, "타란티노는 매우 영악한 친구다. 그는 누가 우리 집에서 보스인지 알고 있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헤이트풀 8]]을 위한 테마곡도 만들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드디어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 [[아카데미 시상식]]의 불운, 그리고... === [[스파게티 웨스턴]]이 쇠퇴한 뒤에도 영화음악가로서의 명성을 발판으로 여타 [[할리우드]] 작품의 음악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엑소시스트]] 2》, 《[[햄릿]]》 같은 작품을 맡았다. 할리우드 진출 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천국의 나날들]]》(1978)으로 시작하여, 《[[미션]]》(1986),[* 이 영화 OST에 있는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란 곡이 바로 〈[[Nella Fantasia]]〉라는 유명한 곡의 원곡이다. 90년초반 라디오 영화음악실 방송을 진행하던 [[성우]] [[이선영(성우)|이선영]]의 영화음악실에서도 미션 음악이 아카데미상을 놓친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나올 정도였다.] 《[[언터처블(미국 영화)|언터처블]]》(1987), 《[[시]]》(1991), 《[[말레나]]》(2000)를 후보에 올렸지만 수상에 실패하였다. 《[[시네마 천국]]》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아예 음악상 후보에도 들지 못하였다. 결국 2007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그는 수상소감을 [[이탈리아어]]로 말했는데, 통역을 준비하지 못해 다들 뭐라는건지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시상자로 나왔던 오랜 동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급히 통역을 해주었다.] 이 점을 두고 그가 이탈리아계라서 차별한다는 소문이 계속 돌고 있다. 밑에 언급한 영화음악 거장들에서 고인인 3명 모두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받았으며(그것도 이들은 이미 1960~1970년대에 받았다.) 5번이나 받은 [[존 윌리엄스]]는 물론 모리코네의 아들 또래인 [[한스 짐머]]도 이미 30대 나이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받았기에 이런 말이 나올만 했다. 항간에는 이러한 수상 불운이 그의 음악이 영화음악의 기능을 뛰어넘어 영화 자체보다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다가 2016년 2월 28일(미국 현지시각),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헤이트풀8]]의 음악감독으로 드디어 88년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모리코네가 늦은 나이로 받으면서 이젠 랄로 시프린이 남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로 수많은 TV, 영화 음악을 작곡하여 그래미 상을 4번 수상한 거장[* [[더티 해리]] 시리즈나 [[용쟁호투]] 등으로 후보에 올랐다. 아무래도 액션물을 많이 맡아서인지 [[미션 임파서블]]의 그 테마도 작곡했다!]이지만 아카데미 상은 6번 후보에 오르고 받지 못했기 때문. 시프린도 모리코네보다 어리지만 1932년생으로 이제 87세가 넘은만큼, 살아서 아카데미 상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 기타 == 2007년 10월에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개최하였으며, 2011년 5월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한 번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모스틀리 오케스트라는 형편없는 연주로 거장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 2007 [[부산국제영화제]] 때 주최 측이 [[높으신 분]]들에게만 신경 쓰다보니 시간 없다고 폭우 속에서 우산도 없이 모리코네 부부를 끌고가다시피 하며 홀대하는 [[흑역사]]가 있었다.[[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6eIMrokDnxc$|#]] 다행히 반응이 좋았던 내한 공연과 홀대를 만회하는 듯한 예우로 [[한국]]에 인상이 좋은 것 같다. 내한 공연에 추억이 있으신지 다시 내한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2010년 LG전자의 의뢰를 받고 [[LG]] 제품 벨소리를 작곡해 주었지만, 벨소리만으로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고... KBS 연예대상, 연기대상에서 대상 수상 음악으로, [[미션 투 마스]]의 사운드트랙 "Mission To Mars"을 틀어준다. 우리가 많이 아는 "Nella Fantasia"의 작곡가다. 정확히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가브리엘의 오보에"에 가사를 붙인 게 넬라 판타지아며 영화 미션에 나온다. 한국어 특유의 자음동화 때문에 이름을 엔리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엔니오가 맞다. [[존 윌리엄스]]하고 절친 사이다. 작곡을 할때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한다. 컴퓨터로 작곡을 하는 것보다 연필로 그리면서 작곡하는 게 더 낫다고. == 주요 작품 == ||<:>'''연도''' ||<:>'''제목''' ||<:>'''비고''' || ||<:>1961년 || [[파시스트(영화)|파시스트]] || || ||<:>1962년 || 미친 욕망 || || ||<:>1964년 || [[황야의 무법자]] ||[[세르조 레오네]]와의 협업|| ||<:>1965년 || [[석양의 건맨]] ||[[세르조 레오네]]와의 협업 || ||<:>1965년 || 호주머니 속의 손 || || ||<:>1966년 || [[석양의 무법자]] ||[[세르조 레오네]]와의 협업 || ||<:>1966년 || 알제리 전투 || || ||<:>1966년 || 매와 참새 || || ||<:>1967년 || 나바호 조 || || ||<:>1968년 || [[옛날 옛적 서부에서]] ||[[세르조 레오네]]와의 협업 || ||<:>1968년 || 데인저: 디아볼릭 || || ||<:>1969년 || 시실리안 || || ||<:>1970년 || 호건과 사라 || || ||<:>1970년 || 칼리파 부인 || || ||<:>1970년 || [[석양의 갱들]] ||[[세르조 레오네]]와의 협업 || ||<:>1970년 || 수정 깃털의 새 ||[[다리오 아르젠토]]와의 협업|| ||<:>1971년 || 레드 텐트 || || ||<:>1971년 || 천국으로 가는 노동계급 || || ||<:>1971년 || 아홉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 ||[[다리오 아르젠토]]와의 협업 || ||<:>1972년 || 켄터베리 이야기 || || ||<:>1973년 || [[무숙자]] ||[[세르조 레오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 || ||<:>1974년 || [[아라비안 나이트]] || || ||<:>1975년 || 모세 ||300여분에 달하는 TV영화|| ||<:>1975년 || [[살로 소돔의 120일]] || || ||<:>1976년 || [[1900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 ||<:>1976년 || [[엑소시스트 2]] || || ||<:>1977년 || [[오르카#s-2|올카]] || || ||<:>1978년 || 그대 머무는 곳에 || || ||<:>1978년 || [[천국의 나날들]] || || ||<:>1979년 || 혈선 || || ||<:>1979년 || 루나 || || ||<:>1981년 || 프로페셔널 || || ||<:>1982년 || [[더 씽#s-2.2|더 씽]] ||[[존 카펜터]]의 영화 || ||<:>1983년 || [[사하라]] || || ||<:>1983년 || 열쇠 || || ||<:>1983년 || 황금 열쇠를 찾아서 || || ||<:>1984년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세르조 레오네]]와의 마지막 협업|| ||<:>1985년 || [[레드 소냐]] || || ||<:>1986년 || [[미션]] ||롤랑 조페와의 협업 || ||<:>1987년 || 사하라의 비밀 || || ||<:>1987년 || [[언터처블(미국 영화)|언터처블]] ||[[브라이언 드 팔마]]와의 협업 || ||<:>1988년 || [[시네마 천국]]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1988년 || 실종자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 ||<:>1989년 || [[전쟁의 사상자들]] ||[[브라이언 드 팔마]]와의 협업|| ||<:>1989년 || 멸망의 창조 || || ||<:>1989년 || 욕망의 낮과 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 ||<:>1990년 ||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1992년 || 시티 오브 조이[* [[https://youtu.be/_4i8STyGglU|Ennio Morricone - City of Joy (OST from 'City of Joy')]]와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964|네이버 영화 - 시티 오브 조이 (City of Joy, 1992)]]] ||롤랑 조페와의 협업|| ||<:>1992년 || [[사선에서(영화)|사선에서]] || || ||<:>1994년 || [[러브 어페어]] || || ||<:>1994년 || 단순한 형식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 ||<:>1996년 || 스탕달 신드롬 ||[[다리오 아르젠토]]와의 협업 || ||<:>1997년 || [[로리타]] || || ||<:>1997년 || 유턴 ||[[올리버 스톤]]의 영화 || ||<:>1998년 || [[피아니스트의 전설]]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 ||<:>2000년 || [[미션 투 마스]] ||[[브라이언 드 팔마]]와의 협업 || ||<:>2000년 || [[말레나]]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 ||<:>2000년 || 캐논 인버스 || || ||<:>2002년 || 리플리스 게임 || || ||<:>2005년 || 페이트리스 || || ||<:>2006년 || 언노운 우먼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 ||<:>2009년 || 바라아 || || ||<:>2013년 ||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 ||<:>2015년 || [[헤이트풀 8]] ||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수상작 || ||<:>2015년 || 5월은, 하고싶은 대로 해라 || || ||<:>2016년 || 코러스 폰더스 || || ||<:>2016년 || 시크릿 레터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협업 || ||<:>2017년 || 로즈 인 윈터 || || [[분류:이탈리아의 작곡가]] [[분류:영화 음악가]] [[분류:1928년 출생]] [[분류:로마 출신 인물]] [[분류:라치오 주 출신 인물]] [[분류:202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