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그레이트브리튼 여왕]][[분류:아일랜드 여왕]][[분류:덴마크의 왕자비]][[분류:스튜어트 가문]][[분류:1665년 출생]][[분류:1714년 사망]][[분류:웨스트민스터 출신 인물]][[분류:뇌혈관질환으로 죽은 인물]][[분류: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장자]][[분류:프랑스 왕위 요구자]][[분류:창업군주]] [include(틀:역대 영국 국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1F7E 0%, #1353B4 30%, #1353B4 70%, #001F7E);" {{{#fff '''앤 여왕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역대 잉글랜드 국왕)] ---- [include(틀:역대 아일랜드 국왕)] ---- [include(틀:역대 스코틀랜드 국왕)] ---- [include(틀:역대 앤티가 바부다 국왕)] ---- [include(틀:역대 자메이카 국왕)]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1F7E 0%, #1353B4 30%, #1353B4 70%, #001F7E);" '''{{{#fff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스튜어트 왕조 초대 국왕}}}[br]{{{#fff {{{+1 앤}}}[br]Anne}}}'''}}}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재위초앤여왕.jpg|width=100%]]}}} || ||<|2> '''출생''' ||[[1665년]] [[2월 6일]] ||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제임스 궁전]][br](現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제임스 궁전]]) || ||<|2> '''사망''' ||[[1714년]] [[8월 1일]] (향년 49세)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켄싱턴 궁전]][br](現 [[영국]]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 궁전]]) || || '''묘소''' ||[[웨스트민스터 사원]] || ||<|4> '''재위기간''' ||[[잉글랜드 왕국|잉글랜드 여왕]][*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 여왕 겸임.] || ||[[1702년]] [[3월 8일]] ~ [[1707년]] [[5월 1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왕국|아일랜드 여왕]]|| ||[[1707년]] [[5월 1일]] ~ [[1714년]] [[8월 1일]] || || '''서명''' ||[[파일:앤 여왕 서명.svg|width=100&bgcolor=#FFFFFF]]||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가문''' ||스튜어트 가문 || || '''이름''' ||앤 스튜어트 [br]Anne Stuart || || '''아버지''' ||[[제임스 2세|제임스 2세 & 7세]] || || '''어머니''' ||[[앤 하이드]] || || '''형제자매''' ||찰스, [[메리 2세]], 제임스, 찰스, 에드거 || || '''배우자''' ||[[덴마크의 조지]] ,,(1683년 결혼 / 1708년 사망),, || || '''자녀''' ||윌리엄 || || '''종교''' ||[[성공회]] {{{-2 ([[잉글랜드 국교회]])}}} ||}}}}}}}}} || [목차] [clearfix] == 개요 == 마지막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이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초대 국왕이며, 동시에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다. 언니 부부인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도 자녀를 모두 일찍 잃었고, 앤도 마찬가지라 결국 스튜어트 왕조는 앤의 대에서 단절되며, 영국 왕위는 방계 친척의 후손인 [[하노버 왕조]]로 넘어간다. == 생애 == [[제임스 2세]]의 차녀이자 [[메리 2세]]의 동생. [[명예혁명]] 이후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공동국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군주로서의 인지도는 다른 왕들만큼 높지 못하지만,[* 2018년 개봉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이후로는 그나마 인지도가 조금 늘어났다. 그러나 영화 내용과는 달리 앤은 레즈비언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위 당시 잉글랜드에는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사라 처칠이 궁정에서 쫓겨난 후 악의를 가지고 쓴 회고록 때문에 저평가받던 왕이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부터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현대에는 성실했고[* 앤은 아픈 몸을 이끌고도 전임자인 윌리엄 3세와 후임인 조지 1세보다 훨씬 많은 회의에 참석했다.] 예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녀의 통치기간에 예술, 문학, 과학, 건축 분야는 크게 발전했다.] 양당 세력을 어느 한쪽이 커지지 않게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었던 여왕으로 평가받는다. 앤의 치세에 영국은 육지의 군사 강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 번성했으며 [[알렉산더 포프]], [[조너선 스위프트]] 등의 작가들이 이름을 날렸다.[* 앤은 [[조너선 스위프트]]와 편지를 주고받는 등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도 했다.] 수많은 건물들이 앤의 이름을 따서 건축되었는데, 이 시기 지어진 건물 양식을 앤 여왕 양식 (Queen anne style architecture) 이라고 부르며, 화사한 색깔과 부드러운 마감, 그늘이 드리우는 입구 등 르네상스 양식을 본딴 아름다운 건축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더글라스 하우스, 블루코트 챔버스 등의 건물들] 재위 중 [[자코바이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복남동생인 제임스가 성공회로 개종한다면 왕위계승을 보장하겠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고, 이복여동생인 루이사 마리아와 당시 차차기 왕위계승자였던 [[조지 1세|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당시 부인인 [[조피 도로테아(첼레)|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와 이혼한 상태였다.]와의 혼담을 주선했지만 이는 1712년 루이사 마리아가 천연두로 요절하면서 무산되었다. 앤은 재위 기간 내내 선왕이자 형부이며, 사촌오빠[* 윌리엄 3세의 모친인 [[프린세스 로열 메리(1631)|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남동생이 제임스 2세로, 프린세스 로열 메리는 앤 여왕에게는 고모가 되는 셈.]였던 [[윌리엄 3세]]에 의해 사실상 개입하게 되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의 결과 위흐레흐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 등을 확보하면서 잉글랜드는 해군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잉글랜드의 유명한 '''세력 균형책'''이 시작되었다. 또한 즉위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반란을 진압했고, 1707년 통합법에 의해 [[동군연합]]이었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였다. 한편 앤이 즉위하면서 윌리엄 3세 때 결성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동군연합은 1대 만에 해체되었다. 네덜란드의 왕위 자리는 '''침묵공''' [[빌럼 1세(오라녀)|빌럼 1세]]의 동생의 후손이 이어받았다. 재위 기간 동안 앤은 토리당과 휘그당의 불화를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하였으며, 토리당과 휘그당을 번갈아 중용한 후에 한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조선후기의 [[숙종(조선)|숙종]]의 [[환국]] 정치와 유사한 면이 있다. 이런 방식은 왕권이 좀 강한 국가에서 권력 강화 방법이긴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의 정권교체는 절대로 하면 안 되고, 왕은 당색을 숨기고 양 당의 심판 역할에 충실하며 왕 자신이 한 당파의 일원으로 다른 당파의 정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앤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사라 제닝스|말버러 공작부인 사라 처칠]][* 결혼 전 성은 제닝스(Jennings)였다. [[존 처칠]]과 결혼했는데, 사라를 총애하던 앤이 즉위 이후 존 처칠에게 말버러 공작위를 주어 사라도 공작부인이 되었다.][* 앤의 언니 [[메리 2세]]는 사라를 싫어했다. 메리가 재위 중 사라를 궁정에서 추방하여 앤이 반발한 일도 있었다.]을 가까이 했었다. 사라는 휘그당 편에 서서 국정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했었는데, 토리당 소속 귀족들을 실각시키려다가 정치적 균형을 추구하던 앤과 사이가 멀어졌다. 이후 앤은 사라에 대한 총애를 거두고 대신 자신의 시녀 애비게일 힐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고, 이에 분노한 사라는 앤과 애비게일이 [[레즈비언]]이라는 루머를 퍼뜨려 여왕의 평판을 떨어뜨렸다.[* 이 세 사람의 갈등 관계를 다룬 작품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다. 해당 영화에서는 사라와 앤이 애증 가득한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묘사한다. 실제 앤 여왕은 독실한 기독교도였으며 보수적인 여성관의 소유자였다고 하여, 사라하고든 애비게일하고든 동성 연애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1708년에 남편인 덴마크의 조지가 사망한 후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으며, 사망 1년 전인 1713년부터는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국정을 돌보다가[* 이런 때는 보통 후계자나 왕실의 종친이 섭정을 하지만 마땅하게 섭정을 세울 인물이 없었다. 부군 덴마크의 조지는 이미 사망했고, 스튜어트 왕조는 씨가 말라 앤 여왕이 유일한 왕족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후계자인 [[팔츠의 조피]]는 바다 건너 독일 하노버에 살고 있는데다가 여왕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80대의 노인이었다.] 1714년 8월 1일에 사흘동안 이어진 어전 회의를 버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해 여왕이 동생인 [[자코바이트|제임스 2세의 아들]]과 접촉하여 그를 복권시키려 하자 주위의 반대파들이 두려워해 여왕을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황상 암살의 가능성은 없다. 스튜어트 왕조의 직계가 제임스 2세 이후로 끊어졌기 때문에, 영국에는 그녀의 즉위 이전부터 왕조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앤의 사후 왕위계승법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외손녀 소피아 공주의 아들, 즉 앤의 육촌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조지 1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앤 여왕과 메리 2세의 이복남동생인 제임스는 제임스 3세를 자칭하며 계속 영국 왕위를 주장했고,[* 그가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된 건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앤 여왕 시기에도 토리당에서는 제임스의 왕위 승계를 주장했으나 영국 국교회로의 개종이 조건이었다. 제임스가 이를 거부하자 토리당에서도 미련을 버렸다.] 그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자코바이트]] 항목 참조. '''[[영국]] 역사상 국왕의 [[거부권]]을 행사한 마지막 군주'''이다. [[1708년]] [[영국 의회]]를 통과한 Scottish Militia Bill 1708라는 법안에 대해 앤 여왕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법안은 스코틀랜드 민병대[* 구([[舊]]) 스코틀랜드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707년]]에 한 나라가 되었는데 이때 마침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한테 잉글랜드와 한 나라가 된 이후 "잉글랜드의 뒤통수를 치자"고 제안한 사실을 잉글랜드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내각 [[신하]]들은 여왕한테 해당 법안을 승인(Royal Assent)하면서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 민병대를 무장해제시킬 경우,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영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앤 여왕은 해당 법안을 거부하고 프랑스가 영국을 침공할 명분을 없앴다. 스코틀랜드의 민병대(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 가서 성사된다. [[1708년]]에 행사된 이 거부권 이후 [[2021년]] 지금까지 영국 국왕은 내각과 의회를 통해 입법된 법안들에 대해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조지 5세]]가 [[1912년]] [[아일랜드]] 자치 법안에 대해 승인을 보류(Postpone)한 적은 있다. == 기타 == || [[파일:mw00147.jpg|width=100%]] || [[파일:살찐앤여왕.jpg|width=100%]] || || 공주 시절 (20대) || 여왕 시절 (30대) || 젊어서부터 심각한 [[비만]]이 되어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영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군주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알현실에서 왕의 방을 잇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왕의 방바닥을 뚫어 알현실과 오가는 승강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임신]]을 18번이나 했지만 [[항인지질항체증후군]][* 항인지질 항체가 태반의 인지질 항원과 결합하여 태반 성장을 억제하고 태아와 임부를 연결하는 태반 혈관에 혈전증이 생겨 임부로부터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유산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쉽다.]으로 인해 대부분 [[유산(의학)|유산]]/[[사산]]했고, 그나마 무사히 태어났던 자녀들도 모두 어렸을 때 사망했으며, 금슬이 좋았던 남편 [[덴마크의 조지]]도 앤 여왕보다 먼저 사망하고 말았다. 세계 과학사를 빛낸 대학자 [[아이작 뉴턴]]에게 귀족 작위[* 최하위 훈작사인 Knight Bachelor였다. 그녀의 재위 4년째인 [[1705년]]의 일이었다.]를 수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영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앤이라는 이름을 쓴 왕이라 그냥 '앤 여왕'이라고만 불린다.[* [[빅토리아 여왕]]을 '빅토리아 1세'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훗날 앤이라는 이름을 쓰는 왕이 또 나온다면 그때는 '앤 1세'라고 불리겠지만, 21세기 초 현재는 현 국왕 [[찰스 3세]]의 손자 대까지 왕위를 이을 첫째가 모두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앤 2세가 탄생할 날은 요원해 보인다. 20세기부터 각 유럽의 왕실에 남녀평등 상속법이 자리잡기 전까지 기록된, 유럽 역사상 유일하게 확정상속인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한 [[여왕]]이었다. [[메리 2세]] 사후에 [[윌리엄 3세]]가 재혼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계승 순위가 앤의 다음으로 정해졌기 때문. 원래 윌리엄 3세가 앤 여왕보다 계승 순위가 후순위였기 때문에 생긴 특례다.[* 메리 2세에게 앤 여왕은 여동생이지만 윌리엄 3세에게는 사촌동생이고, 제임스 2세에게 앤 여왕은 차녀지만 윌리엄 3세는 외조카이다.] [youtube(6D_hXkJS-LA)] [[조지 프레드릭 헨델|헨델]]은 1713년 앤 여왕의 48세 생일을 기념하여 축가를 작곡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은 300여 년 후,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사용되었다. == 매체에서 ==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웃는 남자]]》에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임드 캐릭터 중 유일한 실존인물. 제임스 2세의 딸임이 언급되며 뚱뚱함, 덴마크 출신 남편 등의 요소가 잘 고증되어 있다. 작중 배경도 재위 시기인 1705년. 아버지의 [[사생아]]인 [[이복자매|배다른 여동생]] 조시아나 여공작과 사이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국 여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분했으며 폭군, 나약한 인간, 아이같은 모습 등을 모두 능숙하게 연기하면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