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신라의 왕비]][[분류:몰년 미상]] [include(틀:역대 신라 왕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신라 혁거세 거서간의 왕비[br]{{{+1 알영부인 | 閼英夫人}}}'''}}}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gyeongjuimage.or.kr/w_%EC%98%A4%EB%A6%8903(%EC%A0%84%EA%B2%BD)_%EB%8F%84%EB%A1%9D148P.jpg|width=100%]]}}} || ||<-2> {{{-2 사릉 전경}}} || ||<|2> '''출생[br]{{{-3 (음력)}}}''' ||[[기원전 53년]] || ||[[진한]] [[사로국]] [[서라벌]][br](現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 ||<|2> '''사망[br]{{{-3 (음력)}}}''' ||[[4년]] 이후 || ||[[사로국]] [[서라벌]][br](現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 || '''능묘''' ||[[오릉|사릉]](蛇陵) || ||<|2> '''재임기간''' ||'''{{{#fbe673 사로국 왕비}}}''' || ||[[기원전 57년]] [[4월 28일]] ~ [[4년]] [[3월]] {{{-3 (60년 11개월)}}}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밀양 박씨]] || || '''휘''' ||알영(閼英) / 아리영(娥利英) / 아이영(娥伊英) / 아영(娥英) || || '''부군''' ||[[혁거세 거서간]] || || '''자녀''' ||{{{#!folding 슬하 1남 1녀 [ 펼치기 · 접기 ] 아들 - '''[[남해 차차웅]]'''[br]딸 - [[아로공주]]}}} || || '''호칭''' ||이성(二聖) || || '''시호''' ||'''알영부인(閼英夫人)'''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제 [[혁거세|천자(天子)]]께선 강림하셨으니, '''배필이 될 덕을 지닌 여군(女君)을 찾자!'''" >今天子已降 '''宜覓有德 女君配之!''' >---- > - 《[[삼국유사]]》 中, [[혁거세 거서간|혁거세]]의 강림에 고무된 사람들의 외침. [[신라]]의 초대 국왕 [[혁거세 거서간]]의 부인이자 '''[[신라]] 최초의 왕비'''. == 탄생 설화 == [[삼국사기]]에서는 [[용]]([[계룡]])이 알영정 [[우물]]에 나타났고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후대에 [[불교]]가 전래된 후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발견했는데 태어났을 때 아기의 [[입술]]이 [[닭]]의 [[부리]] 모양이었는데[* [[편두]]한 외모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편두를 해서 두상을 변화시키면 입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오고 대신 이마는 들어가기 때문.] [[목욕]]을 시키니 부리가 빠졌고 알영정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알영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알영정 우물은 지금은 경주 오릉 숭덕전 구석의 외진 곳에 있는데 커다란 덮개돌 3개로 덮였고 우물물은 돌 사이로 약간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물인지 뭔지 눈에 잘 안 띈다. 알영정(閼英井)이라고 [[한자]]로 쓴 커다란 [[바위]]가 큰 [[연못]](알영지) 옆에 설치되어서 이 못을 알영정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한자로 우물 정(井) 자를 쓴 지명인데도... [[구글]]에 알영정이라고 치면 우물 말고 연못의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후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췄다고 하고 13세가 되었을 때 혁거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알영도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남해 차차웅을 비롯한 3남 2녀를 낳았다. 이후 행실이 어질고 보필을 잘해서 당시 사람들은 혁거세와 알영을 두 성인(二聖)이라 불렀다고 한다. 알영부인 탄강 설화는 [[단군신화]]를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다만 이 해석은 1980년대 이후로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 [[닭]] [[토템]]을 섬기는 부족이 등장했고 외부 이주 세력인 [[박(성씨)|박씨]]와 결합했음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후대의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 아니라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울주 천전리 각석]]에도 알영 탄생 설화를 묘사한 것 같은 그림이 있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로 보이는 그림(말과 아이) 왼쪽 아래에 있는 두 용과 알 속에 있는 듯한 사람이 알영.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가 승하한 직후 알영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이들을 합장하려 하니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해서 결국 따로 묻어서 [[오릉]]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