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루마니아의 행정구역)] ||||<#000000><:>{{{#white {{{+3 알바이울리아 (루마니아)}}}}}}|| ||<-3><:> [include(틀:지도, 장소=Alba Iulia)] || [목차] == 개요 == [[루마니아]] 알바 주(Judeţul Alba)의 [[주도(행정구역)|주도]]. [[헝가리/역사|헝가리 역사]]와 [[루마니아/역사|루마니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진다. == 언어별 표기 == || [[루마니아어]] || Alba Iulia || || [[헝가리어]] || Gyulafehérvár(줄러페헤르바르) || || [[독일어]] || Weißenburg(바이센부르크)[* 나중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의 이름을 따 카를스부르크(Karlsburg)로 불렸다.] || || [[튀르키예어]] || Erdel Belgradı(에르델 벨그라드) || == 역사 == [[로마 제국]]의 아풀룸(Apulum) 유적이 있던 곳으로 10세기 경 [[이슈트반 1세]]에 의해 [[헝가리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슈트반 1세는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이곳에 [[트란실바니아|에르데이]] 지역의 대주[[교구]]를 설치했다. 헝가리 왕국의 장군 [[후녀디 야노시]]는 이곳에 대규모 성채를 짓고 이를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에 맞서 항전할 준비를 했고 죽어서도 이곳의 대성당에 묻혔다. 1542년 헝가리 왕국이 [[합스부르크 제국|삼]][[오스만 헝가리|분]][[동헝가리 왕국|할]]되면서 [[동헝가리 왕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헝가리인]]의 자치공국으로 들어선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베틀렌 가보르]] 치하에서 여러 학교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제2차 빈 공방전]]이 실패하고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패권다툼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1690년 [[황제군|오스트리아군]]에게 함락당했고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며 합스부르크 제국 산하 헝가리 왕국으로 재합병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레오폴트 1세]]는 헝가리인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자 독일 색채가 강한 [[시비우|헤르만슈타트]]로 공국의 [[천도|수도를 옮겼고]], 이후 오스트리아군의 병영으로 사용되며 몰락했다. [[요제프 2세]] 시기에 [[루마니아인]] 농민 봉기가 벌어져 주모자 중 하나였던 클로슈카(Cloșca)는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1868년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재편되어 [[성 이슈트반 왕관령|헝가리가 부활]]하면서 얼쇼페헤르 주(Alsó-Fehér vármegye)의 주도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직후인 1918년 12월 1일 트란실바니아 전역의 루마니아인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 만장일치로 루마니아와의 통합을 선언했다. [[트리아농 조약]]이 체결되며 [[루마니아 왕국]]으로 귀속되었고 루마니아 국왕 [[페르디난드 1세]]는 1922년 이곳에 행차하여 [[왈라키아]], [[몰다비아]], 트란실바니아를 통합한 통일 루마니아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하는 한편 루마니아 왕국의 [[태자|왕위 계승자]] 작위를 알바이울리아 대공(Mare Voievod de Alba-Iulia)으로 명명했다.[* 사실상 헝가리를 상대로 한 광역 도발이었는데 알바이울리아가 과거 헝가리인의 문화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해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였던 점도 있고 트란실바니아에서 [[루마니아인]]은 오랫동안 [[헝가리인]]에게 사람 취급도 못받은 채 핍박당했기 때문.]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헝가리 왕국(1920~1946)|헝가리]]가 북부 트란실바니아를 빼앗았을 때 이곳은 루마니아 왕국에 그대로 잔존했다. 2012년 [[미하이 1세]]의 딸 마르가레타 왕세녀가 트란실바니아 병합 9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기도 했다. == 인구와 사회 == 인구는 2011년 기준 약 6만 3천 여 명. 95.3%가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루마니아인]]으로 [[헝가리인]]은 [[집시]]보다도 적은 1.9%에 불과했다. 1910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인구조사에서는 약 11,000여 명의 인구 중 헝가리인이 45%, 루마니아인이 44.51%, 6.82%가 트란실바니아 [[독일인]]이었다. == 명소 == 요새 내부에 대부분의 볼거리가 몰려있으며 [[후녀디 야노시]], [[베틀렌 가보르]] 등을 비롯한 대다수의 트란실바니아 공국 공작들이 안장된 대성당이 볼만하다. [[분류:루마니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