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fffff '''역임한 직위'''}}}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역대 법무연수원장)] ---- [include(틀:역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include(틀:역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include(틀:역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 [[파일:안영욱 前 지검장.jpg]] 安永昱 [[1955년]] [[3월 15일]] ~ ([age(1955-03-15)]세)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본관은 [[광주 안씨|광주]](廣州)[* 중랑장후(中郞將后)-불언재공파(不言齋公派) 42세 '''영(永)''' 태(泰) 한(漢) 항렬.]. == 생애 == 1955년 3월 15일 [[경상남도]] [[밀양군]](現 [[밀양시]]) [[산내면(밀양)|산내면]] 임고리[* [[광주 안씨]] 중랑장후(中郞將后)-불언재공파(不言齋公派) 집성촌이다.]에서 아버지 안길현(安吉鉉, 1933. 9. 17 ~ )[* 1983년 4월 15일부터 1984년 12월 10일까지 제16대 관선 진해시장을 역임했다.]과 어머니 [[평산 신씨]](1931. 2. 30 ~ )[* 신한철(申漢澈)의 딸이다.]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장남으로 [[http://miryang.newsk.com/front/news/view.do?articleId=3579|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79년 [[사법연수원]]을 9기로 수료했다. 1979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이후 1981년에는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로 발령났다가 1983년에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검찰국]] 검찰2과 검사로 영전했고 1985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고등검찰관)로 영전하였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서울지검 검사 자리를 지키다가 1991년에 법무부 검찰국 검사로 영전하였고 이후 부장검사로 승진하여 1991년 8월 1일부터 1992년 8월 1일까지 [[https://www.spo.go.kr/site/gimcheon/ex/general/General_List.do|제29대]]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장이 되었다. 1992년에는 [[울산지방검찰청|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부장검사로 옮겼다. 이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 사전선거운동을 수사하였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영전하였으며 연이어 대검찰청 공안3과장으로 옮겼다가 1994년에는 대검찰청 공안2과장으로 옮겼고 1995년에는 법무부 검찰3과장 등을 하면서 공안통으로 승승장구 하였다. 1997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1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는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이 되면서 차장검사로 승진했으며 1999년에는 [[울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옮겼다가 2000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로 영전하였고 2001년에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으로 계속 영전을 거듭했다. 2002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로 영전하였다. 이후 2002년 8월 26일부터 2003년 3월 12일까지 [[https://www.spo.go.kr/site/uijeongbu/ex/general/General_List.do|제34대]] [[의정부지방검찰청|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겨 재직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2003년 3월 13일부터 2004년 5월 31일까지 [[https://www.spo.go.kr/site/ulsan/ex/general/General_List.do|제7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되어 검사장 반열에 올랐고 2004년에는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영전하였다. 2005년 4월 8일부터 2006년 2월 5일까지는 [[https://www.spo.go.kr/site/gwangju/ex/general/General_List.do|제48대]]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했으며 2006년 2월 6일부터 2007년 3월 4일까지 [[https://www.spo.go.kr/site/busan/ex/general/General_List.do|제51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해 영전을 거듭했다. 2007년 3월 5일부터 2007년 11월 25일까지 [[https://www.spo.go.kr/site/seoul/ex/general/General_List.do|제49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하면서 [[고등검찰청]]장 반열에 올랐고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도 떠올랐다. 그러나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법무연수원]]생 생활을 겸직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고배를 마셨고, 2007년 11월 24일 제31대 법무연수원장으로 있던 [[임채진]]이 [[https://www.spo.go.kr/site/spo/ex/general/General_List.do|제36대]] 검찰총장에 취임하자 [[http://www.ioj.go.kr/homepage/institute/DirectorAction.do?method=list&top=1&sub=7|제32대]] 법무연수원장으로 이동했다. 그 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08년 3월 10일 사의를 표했다. 이후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 가족관계 == 아내 [[영산 신씨|영월 신씨]] 신숙정(1954. 3. 26 ~ )[* 판서공파(判書公派) 신준오(辛俊五)의 딸이다.] 여사와 아들 안준식(安晙植, 1982. 8. 26 ~ ) 등 1남 1녀가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1955년 출생]][[분류:광주 안씨]][[분류:밀양시 출신 인물]][[분류:부산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국민의 정부/인사]][[분류:참여정부/인사]][[분류:검사장]][[분류:인물 템플릿 미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