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가야의 왕]] [목차] == 개요 == 安羅王 [[가야]]의 국가 중 하나인 [[안라국]](아라가야)의 왕들. 아쉽게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가실왕]]이 대가야가 아닌 안라국의 국왕이라는 설이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안야국(아라가야)의 지도자는 축지(踧支)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 [[일본서기]] 계체기의 안라왕 == [[529년]] [[안라회의]]를 개최한 안라국의 왕. 당시 [[반파국]]이 신라와의 혼인동맹 이후 가야 제국(諸國)로부터 불신을 사면서 안라국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안라국왕은 [[백제]], [[신라]], [[일본]]을 초청해 안라회의를 열어 백제, 신라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신라에게 멸망당한 [[탁기탄국]]을 재건국시키려고 했는데, 신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가야제국 내 안라국 영향력 확대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안라국은 531년 백제에게 걸탁성을 뺏겨서 백제의 영향력으로 편입되었다. == [[일본서기 ]] 흠명기의 안라왕 == 541년과 544년에 개최된 1차, 2차 [[사비회의]]에서 차한기 [[이탄해]], [[대불손]], [[구취유리]]를 백제에 파견시킨 왕. 역시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으며, 계체기에 기록된 안라왕과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544년 2차 사비회의에서 이탄해는 참석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2차 사비회의 당시 국왕이 이탄해가 아니었냐는 설도 있다.[* 이탄해가 차한기, 안라국의 2인자로 기록된 인물인데 그가 회의에 참석하지않았다는 점은 그가 안라국왕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참여햐지 못했다는 것. 다만 544년 2차 사비회의 이전에 사망해서 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552년 백제, 가라([[반파국]])과 함께 일본에 사신을 파견해 고구려 - 신라 간 동맹을 맺었다면서 구원병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 신찬성씨록의 안라왕(아라라국주) == * 아라라국주(阿羅羅國主) 9세기 초반(815) 편찬된 일본 씨족지 [[신찬성씨록]]에는 [[이하도군]]의 형. 원문에는 신라의 아라라국주로 기록했는데, 아라라(阿羅羅)는 안라국의 다른 이름이라 신찬성씨록의 오류로 보인다. == 기타 == * 신찬성씨록에 기록된 ‘임나국(任那国) 풍귀왕(豊貴王)’이 안라국의 왕이 아니였나는 설이 존재한다. [[가야/왕사]] 항목 참조.